우주 노병 보이저 2호, 백신 맞고 ‘기력 보전’

이정호 기자 2023. 10. 2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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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한 지 46년, 200억㎞ 먼 우주서 비행 중…연료 잔여물 축적 우려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2년여 남은 생애 막바지 임무 ‘건강하게’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동체 내부에 실린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한 ‘보이저 2호’의 비행 상상도. NASA 제공

# “3,2,1, 이륙!”

고요하던 로켓 발사장에서 돌연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동시에 꽁무니에서 노란 화염을 뿜으며 아파트 16층 높이에 이르는 길이 48m짜리 타이탄3E 로켓이 솟구친다.

이는 1977년 8월20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촬영된 장면이다. 로켓은 ‘특별한’ 화물을 싣고 있었다. 보이저 2호다. 보이저 2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초장거리 우주 탐사선이다. 현재 지구에서 200억㎞(지구와 태양 거리의 133배) 떨어진 우주를 날고 있다. 지구에서 2번째로 멀리 떨어진 인공 물체다.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인공 물체는 보이저 2호와 기계적 측면에서 똑같이 만들어진 ‘보이저 1호’다. 이름에 붙은 숫자와 달리 보이저 1호는 기술 문제로 보이저 2호보다 보름가량 늦은 1977년 9월5일 발사됐다.

하지만 보이저 1호의 이동 경로는 보이저 2호보다 태양계 바깥을 향해 곧장 뻗어 있었다. 비행 속도도 더 빨랐다. 보이저 1호는 현재 지구에서 240억㎞(지구와 태양 거리의 160배) 떨어진 우주를 날고 있다.

보이저 1호와 2호 동체에는 금색을 띤 지름 30㎝짜리 원형 기록장치인 ‘골든 레코드’가 붙어 있다. 천둥, 바람, 동물 등에서 나오는 자연의 소리는 물론 각국의 인사말 등이 녹음돼 있다. 보이저호는 인류를 외계에 알리는 첨병이다.

그런데 이런 보이저호에 NASA가 최근 특별한 조치를 했다. 영하 200도의 추위가 지배하는 우주를 반세기 가까이 진군한 쇠약한 ‘노병’에게 최대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예방주사’를 놓은 것이다.

■‘연료 잔여물 축적’ 치명적

최근 NASA는 공식 자료를 통해 보이저 2호에 탑재한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지난 20일 지구 관제소에서 원격 업데이트했다고 밝혔다. 업데이트를 담은 전파는 18시간이 걸려 보이저 2호에 도착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스마트폰 같은 개인 전자기기에서도 흔한 일이다. 업데이트 뒤에는 화면 색상이 바뀌거나 전에 없던 편리한 기능이 생긴다.

하지만 보이저 2호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는 좀 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수명 유지다. NASA는 “동체에 달린 추진기 내부에 쌓이는 연료 잔여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했다”고 밝혔다. 보이저 2호에서 추진기는 동체 자세를 바꾼다. 자세를 바꾸는 것은 동체에 달린 고성능 안테나 방향을 지구로 조준하기 위해서다. 안테나를 지구 방향으로 잘 맞춰야 보이저 2호는 관측 자료를 지구로 보내고, 지구에서 날아온 명령을 수신할 수 있다.

추진기는 ‘하이드라진’이라는 액체 연료를 물총처럼 내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이드라진은 질소와 수소의 화합물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보면 추진기 안에서 동체 외부로 하이드라진을 내보내는 부품인 발사관에 조금씩 하이드라진 잔여물이 쌓인다. 현재 보이저 2호도 그런 상황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으로 따지면 혈관에 노폐물이 끼는 격이다.

잔여물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발사관이 막히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러면 보이저 2호는 자세를 바꿀 수가 없고, 당연히 안테나도 지구 방향으로 조정할 수 없다. 지구와 통신이 끊길 수 있다는 뜻이다. 우주 탐사선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완전 작동 정지’ 전 최선책

NASA는 하이드라진을 한 번 분사할 때마다 원래 필요한 각도보다 1도 더 보이저 2호 동체가 틀어지도록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했다. 하이드라진을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길게 분사하되 분사 횟수 자체는 줄인 것이다. 이러면 전체 잔여물 발생량은 감소한다.

NASA는 이 조치로 향후 보이저 2호와 통신이 드문드문 끊길 수 있다고 봤다. 안테나가 지구를 살짝 비뚤게 겨냥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이드라진 발사관이 완전히 막히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NASA는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보이저 1호 대신 이보다 가까이 있는 보이저 2호에 업데이트를 먼저 실행했다. 문제가 나타나지 않으면 보이저 1호에 같은 업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보이저 1호와 2호의 생은 길게 남지 않았다. 이르면 2년 뒤 모든 관측 장비가 정지할 수도 있다. 보이저호는 장비를 돌릴 전력을 동체에 실린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 발전기(RTG)’에서 얻는데, RTG 성능이 매년 떨어지고 있어서다. RTG는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을 전기로 바꾸는 장치인데, 태양광 발전이 불가능한 먼 우주를 비행하는 탐사선에 제격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보이저호가 전력 고갈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건강을 최대한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지병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추가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예방접종’에 가깝다.

NASA는 공식 자료를 통해 “보이저 1호와 2호는 태양계 밖 ‘성간 우주’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우주선”이라며 “이번 업데이트로 가능한 오랫동안 탐사를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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