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식욕억제제도 ‘마약’이라고?… 식욕억제제 중독 주의보
식욕억제제 중독성도 가지고 있어
약물관리와 증상관리 제대로 안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죠. 듣기만 해도 슬픈데요. 살을 빼기 위해선 밥을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거예요.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이어서 다들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겠죠. 좀 더 쉽고 빠르게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다이어트 약’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라노의 주변에서도 다이어트 약을 구매해 복용하는 친구들을 찾아볼 수 있었어요. 라노도 가끔 혹 할 때도 있고요.
하지만 라노의 간호사 친구는 다이어트 약을 먹을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경고했어요. 친구는 응급실에서 일하는 간호사인데요. 다이어트 약을 아주 많이 복용하고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들을 몇 번이나 봤다고 말해줬어요. 대부분 20·30대 여성으로, 보통 체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아 오랜 기간 동안 먹고 있던 환자들이었죠. 라노의 친구는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약을 복용한 뒤 잠을 자지 못했고, 예민해진 상태에서 순간적인 충동을 조절하지 못해 약을 과다 복용했다”며 “한 번에 30, 40정씩 먹고 간과 신장이 망가지거나, 심혈관계가 안 좋아진 상태로 실려온다”고 말해줬어요.
우리가 흔히 다이어트 약으로 부르는 ‘식욕억제제’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마약류에 속합니다. 보통 마약류로 분류되는 약들이 식욕 억제의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식욕억제제로 쓰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식욕억제제는 마약류로 분류되는 약이기 때문에 중독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식욕억제제는 중독성에 대한 인식이 낮고, 살을 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남용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식욕억제제라고 불리기 때문에 ‘살을 뺄 수 있게 도와주는 보조제’ 정도로 취급하고, 약 처방이 비교적 쉬운 편이기 때문에 마약류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위험성과 중독성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약물 오·남용 진료 환자는 2019년 10대 1308명, 20대 2532명에서 2021년에는 10대 1678명, 20대 3398명으로 급증했습니다.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성분으로 흔히 쓰이는 암페타민류의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등은 몸을 각성 상태로 만들어 식욕을 떨어트립니다. 라노가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을 떠올려 볼게요. 라노는 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칠 텐데요. 그러면 라노의 몸은 자연스럽게 각성 상태로 들어갑니다. 피를 근육으로 보내기 위해 심장은 빨리 뛰고, 온몸의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허기를 느낄 리가 없죠. 입맛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몸의 세포가 계속 깨어있는 이 상태가 신체에 좋은 영향을 끼칠 리 없죠. 심혈관계에 무리를 주고 사람에 따라 정신질환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욕억제제 처방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는 환자 130만7193명이 2억5054만 정의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습니다. 2020년에는 환자 132만4653명이 2억5370만6272정, 2021년은 환자 128만2203명이 2억4495만2097정을 처방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처방 환자와 처방 건수 모두 증가하다가 2021년에는 소폭 감소했지만 한 번에 처방받는 식욕억제제 양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처방 1건당 평균 처방량은 2019년 40.0정, 2020년 40.9정, 2021년 41.7정으로 매년 증가했습니다.
처방량만 봤을 때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처방이 쉽고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식욕억제제 처방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명확합니다. 체질량지수(BMI지수)가 30 이상인 경우 혹은 체질량지수가 다소 낮지만(BMI 27 이상) 비만으로 인한 여러 가지 대사성 혹은 심혈관계의 합병증이 있을 때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많이 처방되는 성분인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마진돌 등은 4주 이내로 단기 처방하고, 연속 사용할 때도 총 처방기간을 최대 3개월을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식욕억제제는 처방받기도 쉬운 편에 속하고 제대로 된 약물관리나 증상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식욕억제제는 비만 정도에 맞게, 처방기간을 잘 지켜 환자가 단기 복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환자가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약을 대량으로 처방받는 것, 오랜 기간 약을 복용하는 것을 강력하게 제지하지 않고 있죠. 약물 오·남용에 관한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편이라 환자들이 약을 처방과 다르게 복용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약 복용에 따른 증상관리도 적절하게 관리하지 않습니다.
을지대 김영호(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식욕억제제 오·남용을 막기 위해선 신체 이미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개선돼야 하고, 본인 신체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처방 내용을 지키지 않고 식욕억제제를 오랜 기간 복용하거나 한꺼번에 많은 양을 복용하는 건 ‘치료가 필요한 병’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김 교수는 “병원을 돌며 많은 약을 처방받거나, 약을 모아서 한꺼번에 먹는 등 식욕억제제 복용을 스스로 절제할 수 없는 환자는 비만 치료가 아니고 정신과 진료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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