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방통위·방심위 규제 모델 실패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수명이 다한 듯하다. 방송통신 독립성을 강조하며 만든 것들이지만 최근 양 기구의 언론통제 역할이 두드러진다. 사실, 이 두 기구는 원래부터 독립성을 지키기엔 불안한 조직이었다.
방통위는 옛 방송위원회와 옛 정보통신부의 기능을 2008년에 합친 것이다. 당시 방송통신 융합 현상을 놓고 방송계와 통신계가 주도권을 경쟁하는 과정에서 나온 합의의 산물이다. 이후 2013년 ‘창조경제’라는 화두에 꽂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방통위를 없애, 신설할 미래창조과학부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방송의 공익성을 경제부서가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여론에 밀려 규제기능만 남겨 존속시키고 진흥 업무 등은 모두 미래부로 넘겼다.
그런데 정부 기구가 담당 산업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로, 즉 행위를 막는 방식으로 정권에 성과를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방통위는 과거의 공보처처럼 언론통제의 정치적 성과를 내야 하는 부서가 된 것 같다. 문재인 정권 당시 언론학자 출신 이효성 위원장은 ‘가짜뉴스’를 규제하라는 정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다가 임기 중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에는 이명박 정권 홍보를 담당하던 이동관씨가 위원장이 되어 ‘가짜뉴스 잡기’ 등 언론통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방심위는 국가 검열 문제를 피하고자 민간·독립기구라는 취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민간·독립’은 관련법 제정 당시 의안에만 나타날 뿐 실제 법에는 없다. 방심위는 방통위가 내려준 국가 돈을 쓴다. 방심위가 심의·의결한 제재는 정부기구 방통위가 처분한다. 그 제재 결과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에도 반영된다. 헌법재판소도 이미 방심위를 ‘국가행정기관’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런데 행정법원은 최근 정연주 전 위원장의 해촉 취소 가처분 신청을 각하하면서, 해촉은 대통령이 위원과 “대등한 지위에서 행한 계약 해지의 의사표시”라고 밝혔다. 민간기구라며 임명이 아닌 위촉의 방식으로 일하게 한 게 도리어 부당한 해임을 구제하기 어렵게 한 것이다. 정권 교체 후 대통령이 방심위 위원 모두를 해촉하고 새로 구성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민간기구를 표방한 국가기구라서 외려 더 독립적이지 못하게 된 셈이다. 심석태 세명대 교수가 관련 논문에서 표현했듯 민간·독립은 “신화”일 뿐이다.
원칙상, 국가기관의 미디어 내용 심의와 제재는 반헌법적이다. 게다가 여권 다수인 회의체에서 현 정권에 불리한 내용을 불공정하다고 다수결로 정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한, 아니 우스운 일이다. ‘김만배 녹취록’ 보도에 관련해 최근 KBS, MBC, JTBC, 뉴스타파 등에 내린 결정이 극단적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의 ‘가짜뉴스’ 언급에 방통위가 호응하고, 방심위가 방통위와 협의 후 인터넷 언론까지 심의하겠다고 나섰다. 인터넷상의 뉴스라면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언론이 해당한다. 한국만의 독특하지만 나름 잘 유지되고 있는 언론중재위원회나 국가 검열 시비를 피할 수 있는 다른 자율규제 방식들마저 무력화할 수 있는 무모한 일이다. 이례적으로 방심위 팀장 11명이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생래적으로 정당성이 취약한 조직의 독립성 유지를 위해 노력해 온 직원들의 절박함에 공감한다.
많은 민주국가는 독립성을 위해 방송통신 규제조직 구성에 정부만이 아닌 국회 등의 지분을 확대해 왔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방통위 모델 자체는 이례적이지 않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것이 한국의 정치문화와 맞지 않는 게 드러났다. 또한 국가가 미디어 내용 심의를 하는 방심위는 그 자체로 이례적이고 이미 실패했다. 후일 대통령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권이라도 이 두 기구를 접수해 도구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공론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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