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지방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
퀴즈 하나. 울산대 의대는 지방대일까. 이 대학은 울산광역시에 있지만 입시생들 사이에선 사실상 인서울 대학으로 인식돼 왔다. 그간 의대 6년 과정 중 예과 1년 만을 울산에서 공부하면 남은 기간은 협력병원인 서울 아산병원에서 수업을 받고 전공의 수련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런 이유로 울산의대는 전국 26개 의대 중 입시 합격선이 서울의 웬만한 의대보다 높았다. 이처럼 의대 인가는 지방에서 받았지만 사실상 서울 및 수도권의 부속병원 내지 협력병원에서 교육하는 ‘무늬만 지방 의대’들이 여럿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서동용 국회의원은 2020년 국감에서 울산대를 비롯해 순천향대·동국대·한림대 등 몇몇 지방 의대들이 해당 지역이 아닌 서울 소재 병원을 중심으로 의대 교육을 편법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교육부는 2021년 실태조사를 거쳐 관련 의대 6곳에 시정 조치를 내렸고, 지난해부터 모든 이론 수업 과목을 의대 인가를 받은 시설에서 운영하도록 했다. 울산대의 경우 올해 신입생부터 지역에서 4년 이상 교육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대학이 교육부 조치에 따라 지역 수업을 확대하자 2023학년도 정시 수능 합격 점수가 크게 하락했다고 한다. 과거 입학생들의 상당수가 수도권 학생들이었음을 방증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의대가 여전히 편법으로 수도권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9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몇몇 지방 의대들이 임상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수도권 협력병원에서 이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계속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배경에는 그동안 수도권 병원에 투자 등을 집중한 탓에 지역에서 당장 실습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 사안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의대정원 확대 계획과 맞물려 지역에서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전국 지자체들은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는 원칙적으론 환영하지만 이 같은 방식의 의대 운영은 지역 의료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관련해 김영환 충북지사는 국립대인 충북대와 달리 건국대의 경우 정부에 의대 정원 확대를 건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의사 출신인 그는 “(건국대 의대는) 서울병원을 위한 대학이 아니라는 점을 해명해야 한다” “무늬만 충북 티오(TO)라면 우리가 회수해야 한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해당 대학과 충주시는 반발하고 있지만 그의 발언은 ‘지방은 수도권을 위해 존재하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방 홀대론을 재점화시켰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도권 병원과의 연계 및 의존도가 큰 상황에선 지방 의대 정원을 늘려도 수도권 학생들이 그 자리를 채울 가능성이 높고, 이들은 졸업 후 수도권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2020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울산의대 졸업생 중 단 7% 만이 울산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정원 확대를 찬성하는 의료인들조차 증원되는 의대생들이 지역에 남을 수 있도록 정교한 정책 설계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전체적인 공급이 늘면서 필수 의료 인력난도 해결되는 이른바 ‘낙수효과’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경고일 터다. 지역 의료에 기여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현재 40%인 지역인재전형 확대, 졸업 후 일정 기간 지역에서 근무하는 지역의사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지역의사제의 경우 의사단체들이 직업 선택 및 거주의 자유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지만 이미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들을 볼 때 마냥 손놓고 있을 일도 아니다. 지방에서 의사로 일하는 한 지인은 “공공의대를 만약 졸업 후 공공병원에서만 일하는 ‘공무원 의사’처럼 만들어 정년·연금 등을 보장하고, 기존 민간 의료시장과 겹치지 않게 운영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전북 순창은 고추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1980대 말 대기업이 진출해 고추장 공장을 설립했을 당시 지역 주민들은 일자리가 크게 늘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5년 후 대기업 매출은 100배가 증가했지만 공장의 자동화 등으로 지역 일자리는 거의 늘지 않았다. 지방을 기반으로 얻은 이익이 지역에 돌아가지 않는 ‘순창 고추장의 역설’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가 지역 의료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한 묘수가 필요하다.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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