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사형 선고’ 한국인 이철수 구한 일본인 친구
1973년 6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한 중국인이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곧바로 한국인 이민자 이철수(당시 21세)가 용의자로 체포됐다. 백인 목격자들이 “동양인 남성이 총 쏘는 걸 봤다”고 했다. 이철수의 총기와 살인에 쓰인 총기가 달랐다는 사실, 목격자들이 묘사한 살인범의 체구와 이철수의 체구가 크게 차이 났다는 사실 등은 경찰에 의해 은폐됐다. 미심쩍은 증언을 바탕으로 재판은 일사천리.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명 높은 교도소에 수감된 이철수는 수감자와 싸움이 붙어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다. 가중 처벌로 사형을 선고받은 그를 한인 사회는 치욕으로 여기고 침묵했다.
묻히는 듯했던 이철수 사건을 한 기자가 파헤쳤다. 한국인 최초로 미 주류 언론사인 ‘새크라멘토 유니언’에서 일하던 이경원 기자였다. 차이나타운 취재 중 정황을 전해 들은 그는 6개월간 사건을 파고들었다. 1978년 1월 기사가 보도되자 아시안 커뮤니티가 들끓기 시작했다. “백인 경찰과 사법부의 불의(不義)에 맞서려면 소수 민족이 뭉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일본계, 중국계, 필리핀계, 흑인계, 라틴계, 심지어 인디언과 에스키모계까지 들고일어났다. 후원금 모집과 가두시위에 나선 이들은 이철수구명운동위원회를 조직하고 사설 탐정을 고용해 사건 현장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상황을 목격한 또 다른 증인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재심 판결은 무죄. 그가 실제로 저지른 살인은 10년간의 복역으로 갈음하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을 통해 1983년 3월 이철수는 석방됐다.
이 사건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철수 리’(감독 하줄리·이성민, 18일 개봉)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US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고 토론토 릴 아시안 영화제에서 베스트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당시 ‘이철수 구명 운동의 잔다르크’로 불렸던 랑코 야마다(72) 변호사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 아시아가 뭉쳐야 발전한다는 사실은 50년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국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인 3세로 캘리포니아주립 샌타크루즈대학에 다니던 1972년 여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언니 가게 일을 돕다 이철수를 알게 됐다. 야마다 변호사는 “가게를 닫고 나면 철수와 어울려 국수를 먹으며 친해졌다”며 “철수는 사교적이고 낙천적인 청년이었고, 거리 한가운데서 살인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다. 야마다 변호사는 이듬해 철수 사건을 신문을 보고 알게 됐다. 경악한 그는 수감된 이철수에게 “너는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는다”고 편지부터 썼다. 이철수를 위해 싸워줄 의욕 있는 변호사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 악몽, 그건 철수만의 문제나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죠. 변호사가 되기 위해 UC헤이스팅스 로스쿨에 진학했고 나중에 변호인단에 합류했어요.” 이철수는 후에 “랑코의 우정은 내 어두워진 세상에 순수한 빛이었다”고 술회했다. 지난해 작고한 유재건 전 국회의원(15~17대)도 당시 미국 변호사로 구명에 참여했다. 유 전 의원은 7년간 무보수로 이철수를 도우며 후원회 결성을 주도했다. 또 법원에 자신의 유일한 집을 담보로 잡히고 이철수 석방 보석금을 마련했다. 그가 모금한 후원금 중 일부는 이후 미 전역의 한인과 소수 민족의 권리를 보호하는 한미연합회 창설기금으로 쓰였다.
야마다 변호사는 이철수 석방 운동을 하다 남편도 만났다. 기금 모금을 위해 코미디 이벤트를 하던 일본인 3세였다. “그때는 동양인이면 하나였죠. 철수가 풀려나던 날의 흥분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이철수 석방은 미국 소수계가 연합해 일군 최초의 인권 승리였다. 타 민족에게 배타적이었던 한인 사회였으나 이 사건 이후 화합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다큐멘터리는 이철수를 영웅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그가 출소 후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약에 빠져든 일까지 그대로 담았다. 야마다 변호사는 “제 사비로 마약 재활 프로그램에도 넣어줬는데, 현실의 삶은 그에게 너무 큰 짐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철수는 갱단의 방화에 가담했다가 증인 보호프로그램에 들어가 은둔하던 중 지병이 악화돼 2014년 숨졌다.
야마다 변호사는 “철수가 숨지기 몇 년 전 안부 전화가 마지막이었다”며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동지애를 통해 함께 많은 걸 이뤄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철수에게 못다 한 말도 잊지 않았다. “철수야. 이 놀랍고 대단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람들이 영화로 만들었어. 너와 내가 이 안에 같이 있다. 너무 고마운 일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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