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사망 뒤 심상찮은 중국…인기 검색 사라지고 “추모 말라”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숨진 지 사흘째인 29일 베이징 하늘은 온종일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지난해 11월 말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숨졌을 때 대대적인 추모 분위기가 조성됐던 것과 달리, 중국 관영 매체들은 리 전 총리의 사망 관련 보도를 짤막하게 전하는 등 추모 분위기가 커지는 것을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와 대표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 목록에 리 전 총리의 사망 관련 소식이 등장하지 않았다. 전날까진 중국 당국이 발표한 리 전 총리 부고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 1~2위에 올랐지만, 하루 만에 관련 뉴스가 사라진 것이다. 이날 오전 중국 웨이보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는 미국 인기 시트콤 프렌즈에서 챈들러 역을 맡았던 배우 매슈 페리의 사망 소식이었다.
미지근해 보이는 온라인 분위기와 달리, 리 전 총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옛 주택 앞에는 28일 밤 많은 주민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참배했다. 지금 살던 집 앞에 국화를 놓고 눈물을 흘리는 참배객들의 모습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올라오고 있다.
리 전 총리의 죽음을 둘러싼 이런 미묘한 분위기와 관련해 중국 당국이 추모 분위기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속한 태자당과 다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파벌로 ‘비운의 2인자’라는 이미지로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발군의 기억력을 가진 경제학 박사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이끌었으며, 시 주석의 3연임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하늘에도 눈이 있다”(人在幹, 天在看. 蒼天有眼)와 같은 아슬아슬한 말도 남겼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28일 중국 당국이 일부 대학에 학생들이 별도의 추모 행사를 준비하지 말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상하이자오퉁(교통)대의 한 강사는 이 신문에 “학교의 공산당 위원회가 모든 학과에 캠퍼스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라는 통지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당국이 학생들이 추모 행사를 준비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천다오인 전 상하이정법대 교수는 리 전 총리의 사망 이후 “베이징이 보안 강화 기간에 돌입할 것”이라며 “(중국 당국은) 어려운 시기에 어떤 사고도 원치 않는다. 안정성 유지가 중요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현대사의 비극인 천안문(톈안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유혈 진압은 1989년 4월 후야오방(1915~1989) 총서기의 갑작스러운 사망 직후 그를 추도하기 위해 수십만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광장에 몰려들면서 시작됐다.
중국 매체들이 리 전 총리의 사망 관련 보도를 자제하는 가운데, 홍콩 매체들이 나서 리 전 총리의 사망 경위 등을 전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리 전 총리가 상하이 한 호텔(둥자오)에서 26일 수영하는 도중 심장마비가 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고 전했다. 해당 호텔은 영업이 잠시 중단된 것으로 전해진다. 리 전 총리는 이전에 관상동맥 우회 수술을 받는 등 심장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난 8월 소셜미디어로 전해진 리 전 총리의 둔황석굴 방문 당시 영상을 보면 그는 매우 건강한 모습이었다.
리 전 총리가 갑작스레 숨지면서, 중국 당국의 공식 부고도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27일 아침 8시16분께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 사망과 관련한 첫 보도가 나왔고, 당 중앙위원회 등의 공식 부고는 사망 17시간 만인 오후 6시 반께 신화통신을 통해 공개됐다. 2500여자의 공식 부고는 그의 경력 등을 소개하면서 “전염병 예방·통제와 경제·사회 발전을 통해 중대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태원 1년 지났지만, 참사 때도 지금도 정부는 곁에 없다” [영상]
- 홍준표 “영남 안방 4선으로 총선 지휘하겠나”…김기현 맹비난
- [단독] 검찰, 경향 기자 압수수색 영장에 “배임수재” 운운…또 ‘꼼수’
- 리커창 사망 뒤 심상찮은 중국…인기 검색 사라지고 “추모 말라”
- 이선균 “진술 거부할 생각 없다”…경찰, 휴대폰·차량 압수수색
- R&D 예산 삭감에…국회예산정책처도 “불명확 기준 근거” 비판
- “영남 중진 서울 출마”에 국힘 술렁…김기현·주호영 결단할까
- 예금 이자 4%, 적금은 13%까지…대출금리는 얼마나 오르려고
- “개 식용 금지 집회 3살부터 다녔는데, 더는 안 오게 해주세요”
- 300g 미숙아 곁에…탯줄 잘라 관 넣는 의사에게 ‘고통’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