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윤석열 대통령의 말, 행동도 달라질까?
의대 정원 확대 등 긍정적 신호 보이지만 ‘진짜’ 태도 바꿀지는 미지수
“국민 소통과 현장 소통, 당정 소통을 더 강화하라.”
(2023년 10월16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2023년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달라진 말’이 관심을 끌고 있다. 세 가지 열쇳말은 반성, 소통, 민생이었다. 달라진 말은 닷새 뒤인 10월16일 처음 나왔다. 국민과 삶의 현장에서 소통하고, 여당-정부-대통령실 간 소통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국민의힘도 이날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등 임명직 고위 당직자 7명을 대거 교체했다.
이날 김기현 국힘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당-정-대통령실 관계에서 당이 민심을 전달해 반영하는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겠다. (…) 민심과 동떨어진 사안이 생기면 그 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관철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달라진 말 ‘반성·소통·민생’
그러나 바로 이날 이준석 전 대표는 즉각 비판했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이후 지난 17개월 동안 있었던 오류를 인정해달라”고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국힘에 대해서도 “민심의 분노를 접하고 나서도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당은 더는 대통령에게 종속된 조직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도 두려운가”라고 화살을 날렸다.
김수민 정치평론가는 “선거 패배 뒤에도 임명직 당직자 인사나 혁신위 구성 등 모두 당의 변화만 보인다. 정말 집권세력이 변화하려면 대통령이 스스로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통합위원회의 활동과 정책 제언들은 저한테도 많은, 어떤 통찰을 줬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정책 집행으로 이어졌는지는 저와 우리 내각에서 좀 많이 돌이켜보고 반성도 좀 많이 하겠습니다.”(2023년 10월17일 국민통합위원회 만찬 윤석열 대통령)
다음날인 10월17일엔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통합위원회(위원장 김한길)와의 만찬이 열렸다. 이날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취임 뒤 들어보기 어려웠던 ‘반성’이란 표현을 썼다. 이번 선거 결과나 그동안 자신의 정치에 대한 직접적 반성은 아니었으나, 국민통합위와의 만찬이어서 간접적 반성이라고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민생 현장으로 더 들어가서 챙겨야 한다. 이념 논쟁을 통해 자유와 연대를 바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삶이다.”(2023년 10월18일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윤 대통령의 달라진 말은 10월18일에도 나왔다. 이날 발언에서 “국민이 옳다” “변명해선 안 된다”는 표현은 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로 해석됐다. 다만 “이념보다 국민의 삶이 중요하다”는 말에 대해선, 그동안 민생보단 이념을 앞세운 윤 대통령 자신의 잘못을 빼놓은 ‘유체이탈’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이번 선거 결과도 그렇고 자신의 생각, 스타일, 리더십이 가장 큰 문제인데 남 말 하듯 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대통령이 민생 현장으로 가라는데, 민생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3대 개혁으로 내세웠던 교육, 복지, 노동 정책은 다 어디 갔나. 또 소상공인이나 청년층, 저소득층에 대한 새 정책은 뭐가 있나”라고 말했다.
이전의 ‘말’에 대한 반성은 빠져
“저보고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도 많이 반성하고 더 소통을 하려고 합니다.”(2023년 10월19일 충북대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윤 대통령의 달라진 말은 10월19일에도 계속 나왔다. 이날은 부족한 소통을 반성하고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김수민 평론가는 “대통령이 소통하겠다면 기자들과의 정기적 만남을 복원해야 한다. 그게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매일 출근길 문답은 무리였지만, 1~2주에 한 번 정도는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대통령이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을 통해 말하지 말고, 기자회견 등 국민 앞에 직접 나서야 한다. 스스로 뭐가 잘못됐고, 뭘 바꿀지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산의 비서실장부터 수석, 비서관 그리고 행정관까지 모든 참모도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국민의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 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어라. 나부터 어려운 국민들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2023년 10월19일 참모들에게 윤석열 대통령)
10월19일의 두 발언은 16일부터 계속된 발언의 결정판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발언 속에 반성과 소통과 민생 챙기기의 주체로서 윤 대통령 자신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날 매체들도 윤 대통령이 ‘이념’에서 ‘민생’으로 국정 기조를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기사를 쏟아냈다.
과연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윤 대통령은 지난 1년5개월 동안의 ‘일방적인 정치’에서 벗어나 ‘소통하는 정치’로 전환할 수 있을까? 일단 긍정적 신호는 있다. 대표 사례는 10월19일 충북대에서 본격 제시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진됐으나, 대한의사협회와 의대생들의 강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의대 정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좋다. 그러나 이 정책을 추진하려면 의대 정원을 얼마나, 어느 지역에서 늘릴지,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등이 나와야 한다. 그 내용이 없다면 총선 이후로 넘어갈 것이다. 그것은 추진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연구개발 예산 재검토는 긍정적
또 정부가 16%나 일방적으로 축소해 비판이 쏟아진 연구개발 예산을 회복하려는 움직임도 여당 안에서 나타났다. 10월24일 국힘의 윤재옥 원내대표는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편성한 취지를 고려하되, 국회 예산심사에서 보완할 부분이 있거나 고칠 부분이 있으면 여야 간에 협의해서 정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만권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는 “2024년 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은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다. 한국은 연구개발에 많이 투자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정적 신호도 유지된다.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등 흉상 철거 논란이 대표적이다. 10월24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은 “공산주의 참여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놓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육사는 10월 중순부터 흉상 외에 교내에 있는 홍범도 장군 등 7명을 기리는 ‘독립전쟁 영웅실’을 철거 중이다.
김만권 교수는 “대통령은 이념보다 민생을 중시하겠다는데, 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대응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민생을 중시하겠다는 말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만남도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22년 8월 대표가 된 뒤부터 모두 8차례 대통령과의 회담을 요구했으나, 윤 대통령은 모두 거부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10월31일 국회 시정 연설 때 야당 대표들을 만나는 자리가 주목된다. 2022년엔 이재명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선 여야 간에 의견이 갈린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이제 윤 대통령이 먼저 이 대표에게 만나자고 해야 한다. 이 대표가 만남을 구걸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힘의 송석준 의원은 “여전히 이 대표는 범죄 혐의자이므로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으로서는 만나기 어렵다. 굳이 만날 이유가 있다면 김기현 대표와 만나면 된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 뒤 여론조사는 윤 대통령에게 부정적으로 나오고 있다. 10월20일 한국갤럽 조사에선 윤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긍정 평가는 30%로 전주보다 3%포인트 떨어져 6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부정 평가는 61%로 3%포인트 올랐다. 10월24일 미디어토마토 조사에선 윤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긍정 평가가 28.3%로 전주보다 0.9%포인트 떨어졌고, 부정 평가는 66.8%로 1.0%포인트 올랐다.
태도를 바꿀까
윤 대통령은 무엇을 바꿔야 할까.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이제 이념 이야기는 그만해야 한다. 민생을 잘 살피면 굳이 이념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수민 평론가는 “국회의 도이치모터스 특검(일명 김건희 특검)을 받아들이고, 대통령실 특별감찰관을 임명해야 한다. 그런 결정을 해야 국민이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이 여당에서 손을 떼야 한다. 그래야 여야의 정치가 정상화한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처럼 야당 의원들과 만나고 통화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이나 예산이 잘 처리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힘의 다른 의원도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이 아니라, 당과 국회를 통해 국민을 만나야 한다. 당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국민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남은 3년 반의 임기 동안 윤 대통령이 태도를 바꿀까?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민생 챙기라고 하더니 외국으로 나가버렸다. 진심인지 일회성인지 의심이 든다. 혁신위로 대통령실이나 당이 바뀔지, 민생을 어떻게 나아지게 할지 모르겠다. 윤 대통령이 자기 말을 지키는지 좀더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돈 전 의원(중앙대 명예교수)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임기 중에 태도를 바꾼 사람이 있었나. 불가능하다. 이제 한국 사회도 대통령제를 버리고 의회제로 가야 하다. 그래야 정치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