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러운 지방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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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축제'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축제의 계절을 맞아 문득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지방 축제는 주민 화합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그 지방의 자원을 홍보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기에 축제 컨셉과 상관없어도 흥미를 끌 수 있는 온갖 요소가 동원되고, 그 과정에서 정체성을 잃게 된다.
다양한 지방축제를 경험한 저자들이 '케이(K)스러움'에 당황하거나 수긍하기도 하고, 때로는 응원하는 모습에 내 문제의식이 지나치게 모난 건 아니구나 싶어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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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지방축제’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축제의 계절을 맞아 문득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축제라기보다 잔치였다. 경상도식 빨간 소고기뭇국으로 기억되는, 술 마시며 웃고 떠드는 어른들이 많던 동네잔치. 학창 시절에는 강제동원되는 관제 행사였다. 교복을 입고 대오를 맞춰 행진해야 했고, 조악한 응원 도구를 들고 매스게임을 해야 했다. 양양살이 5년 차가 된 지금은 늘 어딘가 아쉬운 우리 지역 축제를 지켜보며 또 한번 이주민으로서의 내 자리를 확인한다.
양양의 송이축제와 연어축제가 올해부터 통합되어 송이연어축제로 치러진다. 한글날 연휴에 맞춰 열린 이번 축제는 5일간 19만명이 찾으며 성공리에 끝마쳤다고 한다. 그런데 이주 첫해부터 해마다 찾은 이 축제가 나는 여전히 이상하다. 물론 양양만의 문제라기보다 지방축제 자체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지방 축제는 주민 화합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그 지방의 자원을 홍보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기에 축제 컨셉과 상관없어도 흥미를 끌 수 있는 온갖 요소가 동원되고, 그 과정에서 정체성을 잃게 된다. 그러다 보니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이주민인 나와 축제를 운영하는 쪽이나 여러 특산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원주민의 답이 다르고, 마찬가지로 ‘이것이 최선인가?’라는 물음에도 답은 달라진다.
편협한 선입견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시각을 참고하기 위해 김혼비, 박태하 작가의 ‘전국축제자랑’을 읽어보았다. 다양한 지방축제를 경험한 저자들이 ‘케이(K)스러움’에 당황하거나 수긍하기도 하고, 때로는 응원하는 모습에 내 문제의식이 지나치게 모난 건 아니구나 싶어 안도했다. 책에서 양양연어축제를 다루며 서술한 대부분의 문장에 동의했다. 특히, ‘연어 맨손잡기 체험’과 ‘연어 탁본뜨기’ 부분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양을 가로지르는 남대천은 국내에 회귀하는 태평양 연어(우리가 주로 식용하는 대서양 연어와 다른 종)의 70%가 거슬러 올라가는 국내 최대 연어 회귀 모천(母川)이다. 그래서 처음 들으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양양연어축제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했다. 그런데 연어를 축제에서 다루는 방식을 보면 또 한번 ‘이것이 최선인가?’라고 묻게 된다.
저자들이 “동물을 대상화하는, 그들을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방위적으로 송출하는 이 행사”라고 표현했듯이, 잡으려는 사람을 피해 도망다니는 연어나 예쁜 탁본을 위해 계속 새롭게 교체되는 연어를 보면서 어떤 즐거움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연어와 축제가 나란히 있는 이름이 오히려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더 당황스러운 건 올해 초 ‘아기연어 보내기 체험 축제’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연어 치어를 남대천에 방류하는 행사를 했다는 점이다. 같은 연어가 같은 지역에서 때로는 ‘생태교육’의 대상으로 때로는 ‘재미를 위한 체험’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 이 혼란스러움이야말로 ‘K스러움’의 정수일까.
물론 송이연어축제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고, 침체한 지역경기에 일시적이나마 숨통을 틔워 주었을 것이며, 축제를 즐기고 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열리고 어딜 가나 거기서 거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만큼 독자적인 의미를 획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지방축제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경제적 자원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지방소멸을 가속하는 예산낭비라고 한다. 정주 인구가 줄다 보니 방문객을 통한 지역 활성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지방축제가 적절한 대안일지 의구심이 든다. 게다가 ‘그래도 우리 지역 축제인데’라는 마음만으로 응원하기에는 아직 내 애향심이 부족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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