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국내 데뷔 '투란도트' vs 3500개 십자가 웅장 '노르마'[강진아의 이 공연Pick]

강진아 기자 2023. 10. 2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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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사진. 칼라프 왕자 역의 테너 이용훈. (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2023.10.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얼음 같은 공주와 사랑에 배신 당하지만 결국 용서하는 여사제…가을에 색채가 짙은 '사랑'을 주제로 한 오페라 두 편이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

세계적인 테너 이용훈의 국내 데뷔로 화제를 모은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와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가 제작한 작품을 그대로 가져온 예술의전당 오페라 '노르마'다. 지난 26일부터 29일까지 공연한 두 작품은 세계 무대를 활보하는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아리아와 개성 있는 무대 연출로 풍성한 오페라 잔치를 펼쳤다.

세계적 테너 이용훈, 국내 첫 데뷔…서울시오페라단 '투란도트'

[서울=뉴시스]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사진. 칼라프 왕자 역의 테너 이용훈과 투란도트 역의 이윤정. (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2023.10.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아무도 잠들 수 없다! 밤이 지나 별들이 지고 새벽이 찾아오면 나는 승리하리라!"

칼라프 왕자로 무대에 오른 세계 최정상급 테너 이용훈은 다가오는 새벽녘 사랑의 승리를 확신하며 노래한다.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대표곡으로 손꼽히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넬슨 도르마)' 장면이다. 투란도트가 낸 세 가지 수수께끼를 모두 맞춘 칼라프 왕자는 좌절하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목숨을 기꺼이 내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로 국내 데뷔 무대를 가진 이용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 주요 극장을 누벼온 기량을 뽐냈다. 감미로우면서 힘 있는 목소리로 2000석이 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가득 채웠다.

'투란도트'는 그가 세계 무대에서 이미 100회 이상 공연한 작품으로, 부드럽지만 강인한 칼라프 왕자를 표현해냈다. 서정적이면서 흔들림 없는 명료한 목소리는 순수한 청년과 같았다. 투란도트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그녀의 이름을 애절하게 부르며 목숨을 내건 수수께끼에 도전하고, 시녀 류의 희생에 슬퍼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서울=뉴시스]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2023.10.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용훈는 첫 공연 후 "20년 동안 기다렸던 데뷔 무대였다. 그 어떤 외국 무대보다 긴장되고 떨렸다"며 "해외 일정으로 아직 시차 적응이 안돼 부족한 점도 많고 힘이 들었지만 사랑으로 맞아주고 반겨줘서 감격했다. 사랑하는 한국 팬들을 직접 만나니 너무 기쁘고 가슴 설레고 뿌듯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공연은 연극계 거장인 손진책 연출의 첫 오페라 연출작이다. 투란도트의 냉정함과 잔인함을 보여주며 검은 옷에 눈을 검게 칠한 군중들로 가득찬 도시는 차갑고 어둡게 꾸며졌다. 이는 류의 희생적인 사랑과 투란도트의 죽음을 통해 마지막에 새하얀 배경에 흰 옷의 출연진들로 대비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결말과 달리 투란도트의 죽음과 함께 '죽음의 도시'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은 듯한 끝장면은 손 연출이 택한 연출이다.

3500여개 십자가로 둘러싸인 무대 웅장…예술의전당 '노르마'

[서울=뉴시스]오페라 '노르마' 공연 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23.10.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막이 열리면 3500여개의 십자가로 사방이 둘러싸인 무대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2016년 시즌 개막작으로 초연된 프로덕션이 이번에 예술의전당 기획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벨칸토 오페라 대가인 빈첸초 벨리니의 '노르마'로, 국내에서 보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드루이드족 여사제 노르마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다. 점령군 수장 폴리오네와 한때 사랑하며 비밀리에 두 아이도 낳은 노르마는 다른 여사제 아달지사와 사랑에 빠진 그에게 배신 당한다. 노르마는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히지만, 결국 용서와 희생에 이른다.

극은 노르마의 감정선을 따라 흐른다. 민족을 이끄는 종교적·정치적 리더로 감정을 억제하는 동시에 내면에 여성으로서 사랑에 배신 당한 슬픔과 분노를 끌어내며 고난도 기교를 펼친다.

특히 여성들의 아름다운 이중창이 돋보인다.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는 아달지사와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며 공감해주다가 그 연인이 폴리오네라는 사실을 알게 된 노르마의 소용돌이 같은 감정이 뒤섞이는 장면이다. 노르마 역의 소프라노 데시레 랑카토레와 아달지사 역의 메조 소프라노 김정미는 두 여성의 혼돈 속 감정과 우정으로 이어지는 연대를 세심하게 표현해내며 몰입감을 높였다.

[서울=뉴시스]오페라 '노르마' 공연 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23.10.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용서와 희생으로 귀결되는 마지막 장면의 무대 연출도 눈길을 끌었다. 노르마가 제물이 되는 죄지은 여사제로 자신을 지목한 후 화형대가 피어오르는 장면에선 붉은 조명과 영상으로 십자가가 불타오르는 극적 효과를 발휘했다. 다만 극 중반에 노르마가 배신에 괴로워하며 내적 갈등을 겪는 장면에선 현대적인 무대로 탈바꿈했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에 괴리감을 지울 순 없었다.

노르마 역에는 데시레 랑카토레와 함께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발탁해 '무티의 소프라노'로 잘 알려진 여지원이 번갈아 올랐다.

[서울=뉴시스]오페라 '노르마' 공연 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23.10.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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