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을 뱉어라, 내 무덤에? 네 무덤에?...후대들의 선택은 과연 [대통령의 연설]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2023. 10. 2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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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대통령(왼쪽)이 1961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가운데)에게 육군중장 계급장을 수여하며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지난 26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제 44주기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그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어떻든 한국의 근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란 점에는 독자분들도 대부분 동의하실 겁니다.

박 전 대통령의 삶을 다룬 대표적 전기와 뮤지컬은 모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요. 이는 그가 생전에 청와대 출입기자들 앞에서 자주 입에 담았던 문구라고 하죠. 자신이 펼친 정책들의 어두운 면을 인지하고, 사후에 혹평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런 일화를 통해 그가 국가발전을 위해 스스로의 명예를 기꺼이 내놓은 점까지 칭송하는 반면, 반대편에서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며 비판소재로 삼기도 했죠.

후임 대통령들 역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따라 연설문에서 그를 다루는 온도차가 느껴지는데요. 윤석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추도식에 참석할 정도로 박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대통령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산업화의 위업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 자리에서 그분의 혜안과 결단과 용기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 이번 회차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되짚어보려 합니다. 대부분의 후임 대통령들이 박 전 대통령과 직접적 인연이 있는 만큼 다채로운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외신에서도 “박정희의 후원을 받았나?”...전두환 “정치적 인연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각종 문화작품에서 그의 총애를 받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요.

집권중 외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질문이 나올 정도로 당시 이런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있던 것 같습니다(당시 기록 그대로 전달합니다). 1982년 ‘미국 인스티튜쇼날 인베스터지와의 회견’에서 기자는 전 전 대통령에게 “박정희대통령은 각하의 후수자(후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됨)였다는 이야기가 있읍니다. 각하와 그분과의 관계를 말씀해 주시겠읍니까”란 질문을 던지는데요.

전 전 대통령은 이에 “고 박정희대통령 시절에 한 명의 군인이었으므로 나는 그분과 아무런 정치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읍니다”라고 즉각 부인합니다. 하지만 이어서 “다만 그분이 나를 신임했다면 군통사권자(군통수권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 입장에서 군인인 나를 신임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지위하던 부대가 다행히도 북한의 남침용 땅굴을 발견하는 등 국가안보면에서 공헌이 있었던 것을 고 박대통령이 인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생각합니다”라고 밝히죠.

박정희와 일평생 대결한 김영삼, 김대중...“박정희 정권 때 죽을고비 넘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기부터 민주화운동을 이끌며 그와 대립해 온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연설문에는 이같은 인연이 잘 드러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문화일보 특별회견에서 정경유착을 끊어내겠다고 말하며 “취임과 동시에 인왕산 및 청와대 앞길을 개방하는 조치를 취하고 그 다음으로 청와대 주변의 안가(안전가옥)를 철거하게 했습니다”라고 했는데요. 안가에서 각종 부정부패가 일어났던 것을 감안한 조치였죠.

이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와서 알아보니 모두 9개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정의 소굴이었습니다”라며 “과거 정권 시절에 재벌들이 거기에 많이 불려갔습니다. 청와대서 대통령과 만나는 일보다 안가에서 만나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거기서 죽기까지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고위공직자와의 대화’에서 인생에서 겪은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어려운 적이 너무 많아서 뭐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는지는 나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6, 25때 공산당에게 죽을 고비를 넘겼고, 박정희 정권 때 죽을 고비를 넘겼고, 전두환 쿠데타 때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돼 목숨을 잃을뻔 했던 일을 회상한 것이죠.

그런데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지원을 약속할 정도로 국민통합 메시지를 내는 데 신경을 쓴 편입니다. 1999년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김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념사업을 할 때는 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라며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가 구성되어 그 일을 추진하는 데 대해 정부가 지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대통령 선거 때 약속했고 현재 법률에 의해서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무현·문재인, 정책 동력얻기 위해 “박정희가 했던 정책”
이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유독 많이 언급한 것은 공교롭게도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인데요.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수도이전 정책을 추진하며 이에 반대하는 보수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도 추진했던 정책이란 말을 자주 꺼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MBC 시사매거진 2580 특별대담에서 수도이전에 대해 “1960년대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던 문제 아닙니까, 많은 지식인들도 그렇게 말해 왔고, 박정희 대통령도 준비를 다 갖추었다가 돌아가셨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듬해에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을 통해 “1978년초 연두기자회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행정수도 건설계획을 발표했습니다”라며 “이 당시 나는 행정수도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서울 집중의 폐해에 관해서 훨씬 이전부터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으므로 그저 좋은 일로만 생각했습니다”라고 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초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정책을 펼치며 박 전 대통령의 7·4 남북공동성명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지난 2017년에는 10·4남북정상선언 10주년 기념식에서 “10・4남북정상선언은 참여정부에서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역대 정부의 노력과 정신을 계승한 것이었습니다”라며 “박정희 대통령은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통일의 원칙으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을 대내외에 천명했습니다”라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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