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택 스님 "성철 스님 열반 30년이 지난 지금 '제2의 출가' 심정"

김기진 기자 2023. 10. 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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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유명한 성철(性徹 1912~1993)스님을 평생 시봉했던 맏상좌(제자) 원택(圓澤·79·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스님은 50년전인 1971년 출가하기 직전에 성철 스님으로부터 받은 '좌우명'을 다시 되뇌이었다.

29일 원택 스님은 기자와 만난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에서 "이제 '제2의 출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성철 스님이 평생 걸어오신 길을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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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3일 합천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 열반 30주기 법회
성철 스님 제자 원택 스님 "자신을 속이지 말라" 좌우명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사진) 스님의 모습.2017.11.03. (사진=백련암 제공) photo@newsis.com

[합천=뉴시스] 김기진 기자 = "불기자심(不欺自心,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지 말라)"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유명한 성철(性徹 1912~1993)스님을 평생 시봉했던 맏상좌(제자) 원택(圓澤·79·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스님은 50년전인 1971년 출가하기 직전에 성철 스님으로부터 받은 '좌우명'을 다시 되뇌이었다.

29일 원택 스님은 기자와 만난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에서 "이제 '제2의 출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성철 스님이 평생 걸어오신 길을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내달 4일이면 성철스님이 열반한 지 30년이 된다. 불교계는 3일 오전 10시 스님 생전 '백일법문(百日法門)'이 전해졌던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추모 다례회를 준비하고 있다.

원택스님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과 제 6대,7대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스님은 ‘수좌오계’라고 해서 참선을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잠 많이 자지 말라’ ‘말하지 말라’ ‘과식하지 말라’ ‘문자 보지 말라’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다.

특히 1940년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장좌불와(長座不臥·눕지 않고 앉은 채 수행하는 것)를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구 팔공산 파계사 암자인 성전암에서 1955∼1964년 10년간 동구불출(洞口不出, 암자 주변에 가시울타리를 쳐서 밖으로 나가지 않음)을 했는데 이 기간 동안 불교서적 뿐만 아니라 서양 서적 등 엄청난 양의 책들을 독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철 스님의 책에 대한 정성은 1947년 김병용 거사로부터 희귀 경전 등 1700권에 이르는 책을 기증받으면서 시작됐고 성철 스님의 책은 경북 문경 봉암사, 경남 통영 천제굴, 대구 파계사 성전암 등을 거쳐 지금 해인사 백련암에까지 약 1만권의 책이 남아있다.

해인사 백련암

-평생을 큰 스님(성철스님) 시봉을 해오셨습니다. 스님과의 기억에 남는 인연이 있다면.
"1970년대 초에 대구에서 합천 해인사 백련암까지 반 나절은 되야 간다. 어렵게 친구 따라서 큰 스님을 뵈니, '절 돈 3000해라' 라고 하셔서 절 돈 3000원? 학생(연세대 정외과 재학중)이 무슨 돈이 있습니까. 이 놈 봐라? 절 돈 1만해라. 그러자 스님으로 있던 동창이 제게 귓속말로 '절 3000배를 하라는 말씀'이라고 했죠. 허허. 어쨋든 저는 1만배를 하고 녹초가 된 후 큰 스님께 '그러면 좌우명 한 말씀 주시라'고 했죠. 눈은 이글이글거리고 눈동자에서 빛이 나듯이 째려보고 하시면서 '고마 그냥가라. 지킬 놈도 아니다' 하자 저는 '스님 산중에 사시면서도 중생 절돈도 떼먹습니까?' 큰 스님은 기가 차다면서도 저를 바라보며 제게 '속이지마라' 하시는 겁니다. 이후 저는 집에 오면서 '남을 속이지 마라?' 그리고나서 3개월 집에 있다가 깨달았죠. '자신을 속이지마라'고 하신겁니다. 그리고나서 1년 후 백련암으로 출가했죠. 어머니는 내가 스님이 된 이후에 뵈었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저를 보지 못하고 가셨죠. 고시공부해서 출세할 거로 기대하셨던거죠. 하여튼 큰 스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성철 스님은 '책 보지 마라' 라고 하셔서 당시 항간에 회자가 됐었습니다.

해인사 백련암 내 고심원.

"큰 스님은 동서양 철학책은 물론이고 신구약 성경, 물리학, 열역학, 수학까지 읽었습니다. 이는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이었죠.일반인들에게 한 말이 아니고 선방에서 정진하는 수좌들에게 한 말이죠. 한눈팔지 말고 화두에만 마음을 모으라는 의미입니다. 일체 잡념을 버리고 깨달아야한다고 늘 말씀하셨죠"

-성철 스님의 말씀을 모은 '백일법문'이 지금도 회자됩니다.어떤 내용입니까.
"당시 성철스님은 '백일법문'을 통해 '선(禪)과 교(敎)는 중도(中道) 사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내용을 설파했었죠. 결국 성철스님은 '중도'라는 개념으로 선과 교를 통합했다고 봅니다. 해인총림 초대 방장(方丈)으로 추대된 이후 첫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 3개월 동안 승려들이 외출을 금하고 참선을 중심으로 수행에만 전념하는 제도) 기간인 1967년 12월 4일∼1968년 2월 18일까지 대중들을 위해 설파하신 내용을 책 세 권 분량으로 정리해놓은 겁니다. 다행히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해놓은 것이 있어서 몇 년에 걸쳐서 책으로 만드느라 정말 다들 고생하셨죠. 특히 송광사 불일암 법정 스님께서 초안을 봐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성철스님 사리탑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절을 찾곤 합니다. 큰 스님이 계시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요.
"큰 스님께서는 항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3000 배를 하고 오라고 합니다. 다 못 한 사람은 만나주지도 않으셨죠. 그러다 보니 불만섞인 소리들을 하게 됐죠. 그러면 큰 스님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십시오. 나를 찾아와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이왕 오셨으면 부처님께 자기 자신이 아닌 모든 중생을 위해 3000 배를 하십시오’"

☞공감언론 뉴시스 sk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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