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금융문맹 탈출②] “금융교육 받고 싶어요”…수요 많지만 교사 재량 교육으론 역부족

신하연 2023. 10. 2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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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목동 양정중학교에서 김나영 선생님과 3학년 학생 몇 명이 점심시간에 짬을 내 금융경제와 관련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신하연 기자.
서울 목동 양정중학교 김나영 교사가 동아리 활동을 마치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신하연 기자.

가을 바람이 제법 선선한 10월 어느 날 점심시간, 서울 목동 양정중학교 5층 교실에서는 20년차 교사인 김나영 교사와 3학년 학생 서넛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학생들은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열렬한 토론을 이어갔다.

이들은 금융경제 동아리 '실험 경제'의 멤버들이다. 정규 동아리 시간만으로는 시간이 부족하다며 학교에 건의해 '법과 경제'라는 유닛(unit) 개념의 소동아리를 만들어 점심시간 또는 방과 후에 짬을 내 금융 공부를 하고 있다. 기자가 학교에 찾아간 날도 일찍 점심을 먹어치운 학생들이 교실로 모였다.

보통은 학생들이 직접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가져 오기도 하고, 궁금한 내용을 교사에게 얘기해 배우기도 한다. 이날의 주제는 중고거래 플랫폼과 사기 예방이다. 학생들은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당근 마켓'에서 물건을 거래하거나 사기를 당했던 경험을 나누기도 하고, 사기 예방을 위한 몇 가지 방법 중 '카톡 실명 확인' 이야기가 나오자 각자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메신저 앱을 열어 확인해보기도 했다.

가장 먼저 자리에 앉아 토론을 준비하던 소동혁 군은 본인 명의의 통장에 꾸준히 적금을 하고 있고 이미 중학교 1학년 때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내보기도 했다. 그는 "처음엔 주식에 관심이 많은 친구의 영향을 받아 궁금증이 생겼다"면서 "친구들 중 뉴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식이나 코인에 대해선 관심이 많지만, 깊게 공부하는 친구들은 소수"라고 설명했다.

윤상규 군도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할머니가 금융활동을 많이 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면서 "실험경제 동아리에서 다양한 금융 지식을 배우면서 궁금했던 내용들을 더 깊게 배울 수 있고, 실생활에 직접 적용되는 경제 매커니즘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승윤 군은 오히려 반대의 이유로 경제 동아리에 들게 됐다. 그는 "집안 분위기가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면서 "중학교 진학 후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제는 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배우지 않으면 계속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박성현 군은 "말하는 걸 좋아해서 토론을 많이 한다고 하는 실험경제 동아리에 들어왔다"면서 "새로운 경제 사실을 많이 알게 돼 좋다. 지난주에는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에 대한 주제로 공부했다"며 눈을 빛냈다.

양정중학교에서만 20년간 근무한 김나영 교사는 지난 2009년부터 햇수로 15년째 경제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학생들의 수준도, 관심사도 가지각색이라 매년 수업 방식도 조금씩 달라진다. 토론을 하느라 자정까지 모여 있던 것도, 소득과 분배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과 함께 경제철학에 대한 책을 읽고 토의를 나눴던 것도, 경제 이론을 직접 확인해보기 위한 실험을 설계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를 나눈 것도 모두 금융교육의 일환이자 교사에게도 늘 새롭고 기쁜 경험이었다. 학교나 정부의 지원은커녕 본인 업무 외 시간과 노력을 쏟는, 품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한결같은 열정을 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김 교사는 "100세 시대인 지금은 30년 일하고 번 돈으로 30~40년은 더 먹고 살아햐 하고, 저축도 중요하지만 예금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경우엔 투자도 필요한데 학생들은 투자라고 하면 도박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올바른 투자에 대한 가치관을 키워줘야겠단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교사생활 중 경제교육 석사와 행동사회경제학 박사 과정도 마친 김 교사는 학교 금융 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금융 교육이 필수 이수 시간으로 확보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그러면서 "사회 과목에서는 금융 관련 분량이 적어 1~3학년 정규 교육을 통틀어 4차시 분량밖에 되지 않는데, 동아리 시간이 아니면 아이들이 금융 교육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다"며 "욕심 같아서는 정규 교과서 내 금융 파트를 늘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거고, 현재 전국 중학교에서 최소 한 학기를 필수로 운영하고 있는 자유학기제에 금융 교육이 필수로 개설되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금감원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초·중·고 금융교육 표준안'을 제정하고 2020년에 개정해 학교 금융교육에서 다뤄야 하는 내용을 제안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이에 맞춘 활동지와 표준교재를 만드는 데도 김 선생님이 참여했다.

하지만 표준안이 가이드라인 성격에 그치다보니 교육과정 개편에 잘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김 교사는 "무엇보다 교사들이 금융교육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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