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금융문맹 탈출①] 韓 금융 공교육화 이제 첫발…"선진국선 이미 정규 교과목"
금융투자교육원과 몇몇 선생님들이 모여 구성한 '학교금융교육 발전협의회'의 첫 회의가 지난 18일 열렸다.
회의 직전 만난 동두천 지행초등학교 이성강 교사와 서울 성동구 한양대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한대부고) 양유진 교사는 "청소년 대상의 금융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금융투자교육원(투교원)에 바라는 점도 학교 교과과정의 테두리 안에서 금융 공교육이 강화될 수 있도록 함께 방향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딱딱한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금융 시장 내용을 다루는 교재나 교사가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한 시간짜리 강의안, 주기적인 교사 연수 프로그램 등이 꼽혔다.
다만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상황은 다르고, 이에 따른 접근법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성강 교사는 2020년부터 매년 학급 아이들과 함께 1년 내내 학급 화폐로 '교실 경영'을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금융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1년동안 특정 직업을 가지고 맡은 역할을 한다. 최근엔 담당 학급인 5학년생들과 예금이자를 놓고 봤을 때 월세와 매매 중 어떤 방식으로 집을 계약하는 게 좋을지 토론을 통해 직접 고민하게 하고 매매계약서도 나눠 썼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매매계약서를 소중히 다루는 모습을 본 학부모들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는 "현재 초등교육 과정에는 금융 관련 내용이 전혀 없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꼭 필요한 내용이고, 당국도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되지 않다보니 모든 교율이 공교육 바깥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식보다는 생활습관을 체득하는 초등교육 단계에서의 금융 교육이 시급하단 설명이다. 이 교사는 "독도 교육, 인성 교육, 학교 폭력 교육 등 의무 이수 교육이 1년에 몇 시간씩 필수로 정해져 있는데 금융 교육도 의무 교육 과정으로 명시돼야 한다"고 했다.
그나마 오는 2025년부터 고등학교 선택 과목으로 '금융과 경제생활'이라는 금융 과목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수입과 지출, 저축과 투자, 신용과 위험 관리 등으로 편성됐다. 하지만 '금융과 경제생활'은 선택과목으로, 고교 선택 과목은 15명 이상이 선택해야 과목이 개설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경제' 과목도 응시자 비율이 1%대에 그친다.
고등학교에서 계속 경제 동아리를 맡고 있는 양유진 교사는 "고등학생들은 졸업하면 곧바로 성인이 되지만 오히려 금융 교육을 하기에는 가장 안 좋은 조건"이라며 "인문계의 경우 최대 목표가 '입시'이고 모든 교육이 여기에 집중돼 있어서 반대로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아예 안하는 풍토"라고 설명했다.
교육 과정에 없는데 교육을 한다고 하면 시험에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부터 묻고, 장애인식 교육 등 의무교육 두 시간을 들으면서도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꽂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양 교사는 "교사 입장에서도 가르치고 싶긴 하지만 수요자 니즈가 없다면 뒷전으로 점점 밀릴 수밖에 없다"면서 "만약 교육을 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교사가 따로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교재안이나 교육과정 자체가 체계적으로 짜여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 졸업하면 집을 구하거나 대출을 받는 학생들이 생길 수 있고 실질적인 금융 생활을 하게 될 텐데, 당장은 '지금 내가 할 게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금융 교육에 대한 필요성 자체를 못 느끼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런 현실이 누적되면서 등장한 게 '금융 문맹'이다. 금융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을 글자를 모르는 문맹에 빗댄 말이다. 저축은행 사태, 라임펀드, 무분별한 빚투(빚내서 투자) 등 대부분의 금융 소비자 피해는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최장 기간 역임했던 앨런 그린스펀은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역설한 바 있다.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23년 청소년 금융이해력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생(고등학교 2학년 717명 대상)들의 금융이해력 평균 점수는 46.8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금융교육기관 '점프스타트'(Jump$tart)가 설정한 낙제 점수(60점)를 크게 밑도는 점수로, 2013년 조사 때 48.5점보다도 1.7점 하락했다.
해외 선진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회성 교육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학교 정규 교과목으로 금융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은 2014년 이후 모든 주에서 경제 교육을 표준 교육과정에 포함했다. 2018년 기준 22개 주에서 고등학생에게 졸업 필수과목으로 경제수업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고 17개주에서 개인의 금융 관련 교육을 의무화했다.
영국은 2014년 이후 경제·금융교육을 중등교육기관의 교육과정에 금융교육을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수학 교과의 상당 부분을 실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는 금융 관련 내용으로 바꿨다. 호주도 2008년부터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금융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결정했고 캐나다는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과 소비생활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일본에서는 지난해부터 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주식투자와 펀드의 개념과 활용법을 배우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금융 교육과 관련해 가장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금융투자협회와 자본시장유관기관(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코스콤 등)이 함께 구성한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다. 이번 학교금융교육 발전협의회를 지원하고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면서 금융 공교육 강화를 위해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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