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가을 모기
“맹호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나는 코 골며 잠잘 수 있고/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 있어도/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모기 한 마리 왱 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구나.”
다산 정약용도 모기한텐 당해낼 재간이 없었나 보다. 오죽했으면 모기를 증오하는 시 ‘증문(憎蚊)’을 남겼을까. 이마에 울퉁불퉁 혹을 돋게 하고, 제 뺨을 제 손으로 치게 하는 모기에 다산이라고 별수 있었겠는가. 이 시는 몇백 년이 흐른 지금도 모기 얘기를 할 때마다 인용되곤 한다.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들을 모기에 빗대 풍자했다는 해석이 있지만, 탐관오리만큼이나 모기가 성가신 존재인 건 맞으니 그대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모기는 7~8월 크게 늘었다가 9월 하순쯤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처서(올해 8월23일)가 훌쩍 지났건만 모기 위세는 꺾일 기색이 안 보인다. 소셜미디어에도 “아직 모기장 치고 잔다” “가을 모기 너무 빠르다”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서울시 모기 채집 통계를 봐도 9월보다 10월에 채집된 모기 개체수가 더 많다. 2018년 이후론 8월보다 9월에 더 모기가 많았다.
가을 모기 역습에 비상이 걸린 지역은 모기 출현 빈도가 더 높은 농촌이다. 모기 등 흡혈 곤충에 의해 전파되는 소 럼피스킨병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29일 오후 2시 기준 확진 사례는 모두 61건이다. 백신 접종 후 항체 형성까지 3주가 걸린다는데, 그사이 날아다니는 모기를 상대하기가 만만한 일이 아닌 건 분명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협적인 감염병을 일으킨 매개체가 모기라는 사실까지 떠올리면, 이 작은 불청객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모기가 늦가을까지 활개를 치는 건 기후변화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출현 기간이 늘어났다. 하기야 실내 난방이 좋아지면서 겨울 모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방방곡곡으로 치명적인 전염병까지 퍼뜨리는 모기를 향한 미움 대신 그저 인간을 탓할 일이다. ‘증문’의 마지막 절은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로다”로 끝난다. 당장은 럼피스킨병이 전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방역에 철두철미할 수밖에 없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고 계속 커지는 켈로이드 흉터··· 구멍내고 얼리면 더 빨리 치료된다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검찰개혁 선봉’ 박은정, 혁신당 탄핵추진위 사임···왜?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3200억대 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조직 체포… 역대 최대 규모
-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는 무엇…정부 부처 아닌 자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