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에 묻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기로에 섰다. 3년간 합병 과정에 있었던 정부와 KDB산업은행 그리고 대한항공이 당사자다.
30일 열리는 양사 이사회에선 최근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제시한 아시아나항공 화물 부문 매각 여부가 결정된다. 양사 합병은 2020년 11월 16일 당시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산업경쟁력강화회의에서 결정했다. 그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한층 강화된 여객과 화물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10위권 항공사로 도약하겠다"고 국민에게 밝혔다. 국민의 기대도 컸다.
하지만 합병 작업이 늘어지면서 3년 전과는 합병의 모습과 산업환경이 너무나도 달라졌다.
먼저, 정부에 묻는다.
외환위기도 아닌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간주하는 시장점유율 50%를 훌쩍 넘는 합병을 승인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당시 논리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메가 항공사'를 만들기 위한 것이고, 이에 따른 효율성 증대가 독점에 따른 폐해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럽 경쟁당국은 메가 항공사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유럽을 오가는 4개 노선을 다른 항공사에 넘기라는 단서를 달더니, 이번엔 화물 부문 매각을 내걸었다. 이미 영국 경쟁당국 요청에 따라 대한항공은 런던 노선 일부를 영국의 버진애틀랜틱에 넘겼다. 미국 경쟁당국은 심사를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미국에선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LA)를 비롯한 주요 미주 노선에 대해 여객과 화물 모두 줄이는 조건을 내세울 전망이다.
대규모 인수·합병 작업에 여러 차례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당국에서 이렇게 많은 조건을 바꿔가며 까다롭게 내놓는 것은 합병하지 말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그걸 다 맞추다 보면 당초 기대했던 합병에 따른 국제 경쟁력 제고와 효율성 증대 효과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1988년 이후 지속돼온 양대 국적 항공사 시대가 사실상 독점체제로 회귀하기에 앞서 한국 항공산업 미래 경쟁력을 우려하는 이유다. 메가 항공사라는 국민의 희망과 기대를 유지하려면 정부가 이런 우려부터 해소해줘야 한다.
'메가항공사' 기대 컸는데 … 누구를 위한 합병인지 답 내놔야
두 번째, KDB산업은행에 묻는다.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 8000억원을 투입했다. 제3자 유상증자 방식으로 받은 돈으로 한진칼이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그 자금을 토대로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가 됐다.
산업은행의 '자금 선집행'이라는 유례없는 지원은 한진칼 경영권 방어는 물론, 돈 한 푼 내지 않고 무자본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게 도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만약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에 제공한 똑같은 조건을 다른 기업에도 제안했다면 다른 상황이 일어났을까. 당시 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맺은 계약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합병 과정이 늘어지는 동안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거뒀다. 해외 항공 수요 증가로 아시아나항공이 자력으로 살 가능성이 농후해지자 논란은 다시 커지는 모습이다. 만약 기업결합이 무산됐을 때 껍데기만 남을 수 있는 아시아나항공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국민은 궁금하다. 유럽과 미주 노선은 쪼그라들고 화물 부문은 아예 없는 아시아나항공을 3년 전 모습으로 되돌리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국민의 우려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대한항공에 묻는다.
합병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상당수 국민은 글로벌 메가 항공사를 상상했다. 다소 불편이 있더라도 국적 항공사의 높아진 위상과 최고의 서비스를 기대했다. 하지만 3년이 흐르면서 국민 응원은 우려로 일부 바뀌고 있다. 높아진 항공요금에도 표를 구하기가 어렵게 느껴지고, 마일리지 서비스도 불편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년 전 공정위는 합병 조건으로 좌석 간격, 라운지 이용을 비롯한 기존 서비스를 2019년보다 불리하게 바꾸지 말 것을 내걸었다. 두 회사는 합병 당시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국민적 지지가 최고의 선결 조건임을 대한항공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양대 합병 당사자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합병이냐"는 국민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30일 열리는 양사 이사회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국적 항공사 합병은 지금이 마지막 고비다.
[송성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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