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노동력이 '아일랜드의 자석'… 글로벌기업 끌어당겼다

한예경 기자(yeaky@mk.co.kr) 2023. 10. 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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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 첫 단독 인터뷰

2011년 유럽 재정위기로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채권단에서 구제금융을 받았던 아일랜드는 2013년 구제금융 딱지를 뗐다.

3년간 공무원을 줄이고 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한 아일랜드는 그 후 10년간 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꿨다.

당시 24%이던 법인세율을 12.5%까지 과감히 낮춘 덕분에 메타·에어비앤비·엑스(옛 트위터) 등 신규 정보기술(IT) 공룡이 앞다퉈 더블린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이 투자를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아일랜드 경제가 부활한 것이다.

최근엔 코로나19 부담으로 유럽의 많은 나라가 재정적자에 허덕이지만 아일랜드는 혼자 웃고 있다. 법인세수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재정흑자가 80억유로에 달해 2006년 이래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유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난민 사태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코로나19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물가까지 총체적 위기를 겪는 반면 아일랜드만은 외풍에도 끄떡없이 견디고 있는 셈이다.

오는 11월 2일 한국을 찾는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원래 아일랜드의 국민성이 강한 회복력"이라며 "특히 우리 경제 모델이 잘 정립되고 성공적인 친기업 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친기업 정책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규제, 조세 환경, 건전 재정 관리,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인프라스트럭처·기술에 대한 상당한 투자 등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버라드커 총리는 과거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현대 개방경제(modern open economy)'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IT 기업이 아일랜드로 몰려오면서 외부 변수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는 "글로벌 기업이 아일랜드를 선택하는 것이 낮은 법인세 때문만은 아니다"며 "기업들은 아일랜드 노동력에 끌리고 있다. 이들은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고도로 숙련된 능력을 갖춘 데다 다국어까지 구사한다"고 밝혔다.

아일랜드는 대학·대학원 이상 유학생에게 2년간 워크퍼밋(외국인 취업 허가)을 허용해 글로벌 IT 기업으로 취업하려는 외국인이 급증하고 있다. 가령 1980년 일찌감치 아일랜드에 진출한 애플은 현재 6000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들은 100여 개 각기 다른 나라에서 모여든 인재다.

아일랜드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고, 이들 기업은 고학력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노동 인구가 젊어졌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도 학력 수준이 높기로 유명하다.

EU 통계청에 따르면 15~64세 인구 중 대학 이상 고등교육을 이수한 비중(2022년 기준)은 유로 지역 평균이 31%인 데 반해 아일랜드는 45.8%나 된다. 아일랜드보다 고등교육을 이수한 인구 비중이 높은 나라는 룩셈부르크(46%)뿐이다. 여기에 브렉시트에 따른 반사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버라드커 총리는 "아일랜드가 EU 내 유일한 영어 사용국이 됐기 때문에 많은 글로벌 기업이 EU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아일랜드를 활용하고 있다"며 "기존에 진출한 회사들이 탄탄한 기반을 형성한 데다 일관성 있는 비즈니스 환경, 비용 경쟁력, 안정적인 법 체계 등도 외국 기업이 아일랜드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내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합의에 따라 법인세율이 15%로 오른다. 글로벌 IT 기업으로서는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로 실적 부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법인세까지 추가로 더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기업이 투자나 고용을 줄이면서 법인세 인상에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버라드커 총리는 "아일랜드의 조세 정책은 변화하는 디지털 경제를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EU와 OECD 차원에서 만든 조세 프레임워크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아일랜드가 한국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미국 글로벌 IT 기업에 세수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데 대한 부담으로 풀이된다. 이미 한국에는 아일랜드 회사가 120개 이상 진출해 있고 2015년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통과된 이후 아일랜드의 한국 수출 규모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아일랜드 기업 중 가장 큰 회사는 액체생검 기업 '아이콘(ICON)'으로 국내 바이오 제약 업체들의 신약 개발을 위한 정밀 생검을 담당한다. 최근 한국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뛰기 시작하면서 액체생검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아일랜드에 진출한 우리 기업으로는 SK그룹이 2017년 글로벌 제약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아일랜드 공장(현 SK바이오텍 아일랜드)을 인수한 사례가 손에 꼽힌다.

[더블린 한예경 글로벌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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