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르는 지하수보다 쓰는 지하수가 더 많다···“돌이킬 수 없는 위기”
지구에서 지하 저수지 역할을 하는 ‘대수층’은 20억명에게 식수를 공급한다. 취수량의 70%는 농업에 사용된다. 그런데 세계 주요 대수층 37개 중 21개에서는 퍼가는 물의 양이 다시 차오르는 물보다 많다. 다른 자원도 아닌 물이 고갈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수층이 다시 차오르는 데 수천 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유엔 대학 환경·인간 안보 연구소(UNU-EHS)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이 담긴 ‘상호 연결된 재해 위험 2023’ 보고서를 냈다. 올해 보고서는 인류와 생태계가 가까운 미래에 마주할 수 있는, 특히 파괴된다면 되돌리기 매우 힘든 ‘극적 전환점(티핑포인트)’이 될 재난에 주목했다. 보고서는 이런 재난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봤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70년대 세계 최대 대수층을 이용해 사막에서 작물을 키웠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세계 6위 밀 수출국이었다. 2016년, 사우디 정부는 밀 수확을 멈췄다. 사우디에서는 지하수가 ‘과잉 추출’되면서 대수층 80% 이상이 고갈된 것으로 추정된다. 14억 인구의 곡창지대인 인도 북서부 펀자브주 우물 78%는 과잉개발됐다는 연구도 있다.
기후변화로 갈수록 날씨가 불규칙하게 변하는데 지하수까지 고갈되면 인류는 당장 식량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위험은 식량 시스템, 경제·의료시스템, 생태계까지 번진다. 강과 호수가 마르면서, 강과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의 ‘멸종’이 빨라진다.
‘멸종 가속’ ‘우주 쓰레기’ ‘보험 못 드는 미래’라는 재앙을 겹쳐보면
보고서가 제시한 극적 전환점은 대수층 고갈만이 아니다. 생명의 그물이 끊어지고 있다. 지난 100년간 멸종된 척추동물은 400종이 넘는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손실된 숲은 3200만㏊로 추정된다.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해 수십 년 내 멸종될 생물 종은 100만에 달한다. 종을 복원하기는 쉽지 않다.
한 종이 사라지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해달은 성게를 먹는다. 성게는 다시마를 먹는다. 다시마 숲을 은신처, 먹이 등으로 이용하는 동물은 상어, 거북이, 물개 등 1000여 종에 이른다. 해달이 멸종 위기에 이르면, 성게가 번성해 다시마 숲이 사라지고 1000여 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보고서는 사라지는 빙하도 극적 전환점으로 꼽았다. 빙하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2670억t씩 사라졌다. 보고서는 이집트 대피라미드 4만6500개와 맞먹는 양이라고 표현했다. 2100년까지 현재 빙하의 최소 50%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산꼭대기에 얼어 있는 빙하는 ‘담수 창고’ 역할을 한다. 빙하가 단기간에 녹으면 하류에서는 홍수 위험이 커진다. 쓸 수 있는 담수도 꾸준히 줄어든다.
보고서는 이런 되돌릴 수 없는 극적 전환점 중 다수가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근본 원인을 공유하고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이 밖에도 세계의 소비 수요 압력을 ‘대멸종’, ‘지하수 고갈’, ‘우주 쓰레기 증가’의 공통 원인으로 봤다. 국제 협력 부족, 성장주의 등도 주요 원인이었다.
공통의 원인으로 연결된 재난, 해결책은
재난은 또 다른 ‘사회 재난’을 만들 수 있다. 폭염이 과도해지면, 지역을 피해 이주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 지하수가 고갈돼도 이주가 늘 수 있다. 보고서는 “여러 재난은 공통의 원인을 통해서도, 유사한 영향을 통해서도 서로 연결된다”라며 “특히 재난에 대응할 수 없는 취약계층은 이런 위험을 온전히 감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순환’할 수 있는 경제 체제를 만들고,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고 자연의 손실을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오존층 파괴를 막아냈던 ‘몬트리올 의정서’처럼 구속력 있는 세계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성장주의’ 신화를 벗어나 ‘웰빙’을 추구해야 한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시민사회’와 ‘청년’의 역할도 강조했다. 보고서는 “권력이나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시스템을 혼란에 빠트리기 쉽다”라며 “체제에 도전하고 변화를 외치는 시민사회나 청년들에게서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확립된 시스템과 행동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티핑포인트’를 피하려면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이다. 우리가 직면한 질문은 간단하지만 심오하다.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https://www.khan.co.kr/environment/climate/article/202208311716001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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