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와인 속 납 검출, 식약처는 소비자 알 권리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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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와인에서 잇따라 중금속 '납'이 검출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와인 양조 과정에서 납이 사용된 것은 와인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수입 와인에 ㎏당 0.2㎎을 납 허용 기준치로 삼고 있다.
와인 소비가 늘고 계속 납이 검출된다면 우리 식약처도 납 검출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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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와인에서 잇따라 중금속 '납'이 검출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와인 양조 과정에서 납이 사용된 것은 와인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로마 시대 귀족들은 사파(Sapa)라는 달콤한 시럽을 좋아했다. 사파는 냄비에 와인을 끓여 만든 시럽으로 과일에 설탕시럽을 입힌 '탕후루'와 유사하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냄비를 납으로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납 냄비에서 끓인 와인은 단맛이 났다. 와인 속 아세트산이 납과 반응하면 '아세트산납'이 만들어지는데 이 아세트산납은 설탕처럼 단맛을 낸다. 아세트산납은 꽤 오랜 기간 설탕의 대체재로 사용됐다. 양조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와인의 떫은맛, 신맛을 감추기 위해 와인에 납을 넣기도 했다. 고대 로마인은 불임이 많고 기대수명이 약 25세에 불과했는데 '납 중독'이 원인이란 주장도 있다.
물론 와인에만 납이 들어갔던 게 아니다. 납은 자연에서 구하기 쉽고 가공도 용이해 일상생활 많은 곳에 사용됐다. 라틴어로 납을 의미하는 플럼범(plumbum)은 영어의 플러밍(plumbing·배관)으로 이어졌다. 상하수도 시설을 일찍 갖춘 선진국일수록 배관에 사용된 납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과거엔 치과 치료에도 납을 사용했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조사할 때 김현희 공범 김승일의 시신을 검시하면서 충치를 납으로 때운 것이 발견됐다. 당시 납을 충치 치료에 쓰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어 대한항공기 폭파가 북한 소행이란 주장의 근거가 됐다. 영화 '베를린'에서도 국가정보원 요원 한석규가 시신의 치아를 확인해 북한 공작원을 특정한다.
중독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일상에서 납 사용은 사라지고 있다. 와인에도 더 이상 납을 넣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된 상하수도관, 포도밭, 농약, 유리병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이 납에 오염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국제와인기구(OIV)가 납 관련 규정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OIV는 2019년 이후 수확된 포도로 만든 와인의 납 함유량을 ℓ당 0.1㎎으로 제한하고 있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수입 와인에 ㎏당 0.2㎎을 납 허용 기준치로 삼고 있다. 한국은 OIV 가입국이 아니다.
와인 소비가 늘고 계속 납이 검출된다면 우리 식약처도 납 검출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 엄격한 사후 관리도 요구된다. 식약처는 '수입 부적합' 제품을 6개월만 공지한다. 소비자 '알 권리' 차원에서 납 검출과 같은 중대 사안은 검출 사실을 계속 공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제조사나 수입사의 '소명'이 있다면 그 소명 내용도 함께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어야 한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수입 식품에 대한 '동일 제품' 규정도 바뀐다. 제품명이 달라도 원재료, 제조사, 공정 등이 동일하면 같은 제품으로 보고 통관이 쉬워진다. 같은 생산자의 올드 빈티지 와인들이 검사 없이 들어올 가능성도 열린다.
식품 수입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방침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수입업자 역시 납 검출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자발적으로 관련 제품을 회수하는 등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대수명이 25세였던 로마인이 모르고 먹었던 납을 우리가 먹어야 할 이유는 없다. 100세 시대에 함께할 동반자로 납은 더욱더 부적절하다. 납은 몸에 계속 축적되기 때문이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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