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국민의힘은 왜 총선에서 지는가
수도권 겨우 16석 '사막화'
야당 탓·文정부 탓 안 통해
'메아 쿨파'서 다시 시작을
이른 아침 경기도에서 출발한 낡은 지하철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사람에게 부여된 좌석 공간은 43㎝다. 어깨를 접고 낯선 사람과 살을 맞대야 한다. 신도시를 몇 번 지나치면 어느새 지하철은 숨 쉴 공간조차 없다. 서 있는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고, 고단한 삶을 온몸으로 버텨낸다.
이 장면에는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힘든 이유가 담겨 있다. 보수에 불리한 정치 지형은 40대와 경기도라는 두 단어에서 확인된다. 작년 3월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이재명 후보를 겨우 24만7077표(0.73%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진보정권 무능에 대한 심판, 위선적 정의에 대한 실망, 야당 후보에 대한 비호감을 모두 합했는데도 득표율 차이는 역대 최소였다.
세대별 득표율은 공개되지 않으니 출구조사로 추정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방송 3사 출구조사를 보면 40대에서 이재명(60.5%)이 윤석열(35.4%)을 압도적으로 이겼다. 집권 후에도 40대는 윤석열 정부에 가장 큰 안티 세력이다. 지난주 갤럽 조사를 보면 40대에서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는 답변이 79%에 달했다. 전체 연령대에서 부정 평가 비율이 가장 높다. 민주당을 가장 많이 지지하는 세대도 40대다.
40대 인구는 800만명으로 50대에 이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략 1974~1984년생인 대한민국 40대는 정치적으로 '노무현 키즈'에 속한다.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기질적 반감이 강하고 개혁을 갈망하는 특징을 지닌다. 586세대와 MZ세대 사이에 끼어 사회가 주는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불만도 있다.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세대, 그래서 개혁을 내세우지 않는 정파에는 표를 주지 않는 세대다. 스스로 진보라고 규정한 비율이 20·30대보다 월등히 높다.
지난 대선은 또 하나 특이한 기록을 남겼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경기도에서 진보 후보가 승리하고 서울에서는 보수 후보가 이긴 선거였다. 부동산 과열로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경기도로 터전을 옮겼다. 서울 인구는 10년 만에 7.5% 줄어 943만명, 경기도 인구는 12.4% 늘어 1359만명이 됐다.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경기도 59석 가운데 겨우 7석을 건졌다. 수도권 전체로는 121석 중 16석에 그쳤다. 보수 정당이 받은 최악의 성적표였다.
국민의힘 핵심 인사는 "여당이 수도권 사막화를 방치한 결과"라고 토로했다. 패배의 경험이 축적되다 보니 새로운 인물이 뛰어들지 않고, 당은 더욱 영남으로 침잠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인사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라고 했다. 차라리 펄펄 끓는 물이었다면 뛰쳐나왔겠지만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서 개구리는 위기를 느끼지 못한다. 수도권 재건에 투자하지 않으면 보수 정당이 다수당이 되는 일은 요원하다. 내년 총선에서 집권당이 지면 헌정사 초유의 5년 여소야대가 현실이 된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살길은 '메아 쿨파(Mea Culpa·내 탓이오)'에서 시작한다. 전임 정권 심판론은 유효기간이 지났다. 집권 초반의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궤도를 조정하면 된다. 산꼭대기에 오르는 길은 곡선이지 직선이 아닌 법이다. 단 소리를 멀리하고 쓴소리를 가까이하라는 지적도 백번 옳다. 개혁적 인물을 내각과 비서실에 발탁해 분위기를 일신하고, 대통령 동선을 재구성해서 국민과 접점을 늘려가야 한다. 총선은 의회 권력에 대한 심판이지만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대통령 중간평가이기도 하다.
미국 정치에는 "선거는 후보자의 삶이 아니라 유권자의 삶에 관한 것"이라는 금언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40대들의 분노에 귀를 기울이면 해답이 보일 것이다.
[신헌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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