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가을의 섭리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0. 29. 17:21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에 많은 바람을 풀어놓아주소서.
마지막 과실을 익게 해주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무르익게 하소서.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주시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소서.
(중략)
그러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떨어져 뒹굴 때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방황할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作 '가을날' 중
가을은 자연의 섭리를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그토록 푸르렀던 잎새들이 어느새 낙엽이 되어 떨어져 뒹굴고, 따사롭던 햇살은 차가운 공기에 그 세력을 내주고 사라져 간다.
가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아마도 릴케의 말처럼 길고 긴 편지를 쓰거나 가로수 사이를 방황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가을은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는 계절이다. 밖으로 뻗던 기운을 거둬들이고 내 안에 들어가 생각에 잠기는 계절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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