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역시나’로 귀결되는 윤 대통령 첫 ‘셀프 반성’
[아침햇발][이태원 참사]
손원제 | 논설위원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여당 참패 뒤 윤석열 대통령도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솔솔 흘러나왔다. 여러 보수신문까지 ‘변하는 척이라도 하라’며 대통령의 변화를 주문했고, 윤 대통령도 얼핏 달라진 듯한 발언을 내놨다. 패배 엿새 만인 지난 17일엔 “국민통합위의 정책 제안이 얼마나 집행으로 이어졌는지”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저와 내각에서 반성하겠다”고 취임 이후 처음으로 ‘셀프 반성’을 언급했다. 이 발언 전후로 “국민 소통, 현장 소통, 당정 소통을 더 강화해달라”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 같은 말도 했다. 유체이탈 흔적이 배어났지만,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던 것과는 차이가 났다.
그러나 이번에도 ‘혹시나’는 ‘역시나’로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중동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기대와 동떨어진 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국빈 방문 환대에 취해서일까, 잠깐의 각성 효과마저 사라진 듯하다. 26일 귀국 뒤 첫 일정은 ‘박정희 추도식’ 참석이었다. 현직 대통령 참석은 역대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민 한 손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고, “영애이신 박근혜 전 대통령님과 유가족분들께 자녀로서 그동안 겪으신 슬픔에 대하여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바로 이날 유가족들이 직접 윤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보내온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엔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44년 전 독재자의 죽음엔 각별한 위로를 보내고서, 1년 전 온 나라를 비통에 빠트린 159명의 희생을 기리고 유가족을 보듬는 일정 참석은 거부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유가족뿐 아니라 야 4당이 공동 주최하는 정치집회라서 안 간다고 이유를 댔다. 그러자 유가족들은 추모식 장소 문제 때문에 야 4당과 공동 주최 형식을 취하기로 했지만, 최근 서울시와 서울광장 사용에 합의하면서 이미 야 4당은 주최에서 빠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간곡히 참석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불참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애초 대통령실이 유가족협의회에 잠깐 전화로 사정을 물어보기만 했으면 주최가 바뀐 사실을 진즉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도, 참모들도 “국민 소통, 현장 소통” 할 생각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사실 실무진의 소통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망하다. 가눌 수 없는 국민 아픔을 달래는 자리인데, 주최가 누구인지가 그리 중요한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누가 주최를 하든 대통령이 참석하면 그 행사는 대통령 행사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29일 기어이 추모식 대신 간 곳은 서울 영암교회 추도예배다. 여기서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왜 이런 말을 유가족이 있는 곳에서 직접 건네지 않나. 유가족 앞에서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싫고, 현장의 쓴소리는 더욱 듣고 싶지 않다는 불편한 속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행보가 말해주는 건 윤 대통령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성’ 언급도 국민이 아니라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향한 것이었음이 분명해진 셈이 됐다. 소통 역시 자기편 지지층만이 대상이다. 대구·경북 고령층에 기반이 너른 독재자의 딸을 위로하고 다음날 또 경북을 찾은 반면, 홍범도 흉상 철거엔 어떤 제동도 걸지 않고 있다. 여전히 보수언론에선 윤 대통령이 보수부터 결집하고 중도 통합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북 치고 장구 친다. 그러나 싹이 노랗다. 아마 보수 결집도가 조금만 더 높아지면, ‘옳다구나’ 그길로 쭉 갈 가능성이 크다.
그간 해온 모습을 보면, 윤 대통령에게 과연 여당의 총선 승리가 절실하긴 한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어쩌다 대통령’이 된 걸로 이미 정치적 목표 달성은 끝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반면, 국정 비전은 빈곤하고 국회 입법을 통해 이를 성취하겠다는 야심 또한 박약해 보인다. ‘조·중·동’마저 ‘총선 지면 식물 대통령 된다’며 모범 답안을 들이밀고 있지만, 윤 대통령 본인은 변화 시늉조차 제대로 안 내는 이유일 것이다.
아쉬울 게 없는 대통령이 안 바뀌면, 절박한 여당이라도 소리를 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맹종이 체질이 된 여당 돌아가는 꼴은 기대 난망이다. “대통령하고도 거침없이 얘기할 것”이라고 큰소리 치던 혁신위원장은 참사 추모식에 개인 자격으로 참석하는 데 그쳤다. 이런 대통령과 정당을 기다리는 건 지난 보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섭고 혹독한 심판일 수밖에 없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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