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역시나’로 귀결되는 윤 대통령 첫 ‘셀프 반성’

손원제 2023. 10. 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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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이태원 참사]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 예배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날 추도예배에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추경호 부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도 함께 했다. 대통령실 제공

손원제 | 논설위원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여당 참패 뒤 윤석열 대통령도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솔솔 흘러나왔다. 여러 보수신문까지 ‘변하는 척이라도 하라’며 대통령의 변화를 주문했고, 윤 대통령도 얼핏 달라진 듯한 발언을 내놨다. 패배 엿새 만인 지난 17일엔 “국민통합위의 정책 제안이 얼마나 집행으로 이어졌는지”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저와 내각에서 반성하겠다”고 취임 이후 처음으로 ‘셀프 반성’을 언급했다. 이 발언 전후로 “국민 소통, 현장 소통, 당정 소통을 더 강화해달라”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 같은 말도 했다. 유체이탈 흔적이 배어났지만,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던 것과는 차이가 났다.

그러나 이번에도 ‘혹시나’는 ‘역시나’로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중동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기대와 동떨어진 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국빈 방문 환대에 취해서일까, 잠깐의 각성 효과마저 사라진 듯하다. 26일 귀국 뒤 첫 일정은 ‘박정희 추도식’ 참석이었다. 현직 대통령 참석은 역대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민 한 손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고, “영애이신 박근혜 전 대통령님과 유가족분들께 자녀로서 그동안 겪으신 슬픔에 대하여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바로 이날 유가족들이 직접 윤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보내온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엔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44년 전 독재자의 죽음엔 각별한 위로를 보내고서, 1년 전 온 나라를 비통에 빠트린 159명의 희생을 기리고 유가족을 보듬는 일정 참석은 거부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유가족뿐 아니라 야 4당이 공동 주최하는 정치집회라서 안 간다고 이유를 댔다. 그러자 유가족들은 추모식 장소 문제 때문에 야 4당과 공동 주최 형식을 취하기로 했지만, 최근 서울시와 서울광장 사용에 합의하면서 이미 야 4당은 주최에서 빠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간곡히 참석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불참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애초 대통령실이 유가족협의회에 잠깐 전화로 사정을 물어보기만 했으면 주최가 바뀐 사실을 진즉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도, 참모들도 “국민 소통, 현장 소통” 할 생각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사실 실무진의 소통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망하다. 가눌 수 없는 국민 아픔을 달래는 자리인데, 주최가 누구인지가 그리 중요한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누가 주최를 하든 대통령이 참석하면 그 행사는 대통령 행사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29일 기어이 추모식 대신 간 곳은 서울 영암교회 추도예배다. 여기서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왜 이런 말을 유가족이 있는 곳에서 직접 건네지 않나. 유가족 앞에서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싫고, 현장의 쓴소리는 더욱 듣고 싶지 않다는 불편한 속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행보가 말해주는 건 윤 대통령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성’ 언급도 국민이 아니라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향한 것이었음이 분명해진 셈이 됐다. 소통 역시 자기편 지지층만이 대상이다. 대구·경북 고령층에 기반이 너른 독재자의 딸을 위로하고 다음날 또 경북을 찾은 반면, 홍범도 흉상 철거엔 어떤 제동도 걸지 않고 있다. 여전히 보수언론에선 윤 대통령이 보수부터 결집하고 중도 통합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북 치고 장구 친다. 그러나 싹이 노랗다. 아마 보수 결집도가 조금만 더 높아지면, ‘옳다구나’ 그길로 쭉 갈 가능성이 크다.

그간 해온 모습을 보면, 윤 대통령에게 과연 여당의 총선 승리가 절실하긴 한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어쩌다 대통령’이 된 걸로 이미 정치적 목표 달성은 끝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반면, 국정 비전은 빈곤하고 국회 입법을 통해 이를 성취하겠다는 야심 또한 박약해 보인다. ‘조·중·동’마저 ‘총선 지면 식물 대통령 된다’며 모범 답안을 들이밀고 있지만, 윤 대통령 본인은 변화 시늉조차 제대로 안 내는 이유일 것이다.

아쉬울 게 없는 대통령이 안 바뀌면, 절박한 여당이라도 소리를 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맹종이 체질이 된 여당 돌아가는 꼴은 기대 난망이다. “대통령하고도 거침없이 얘기할 것”이라고 큰소리 치던 혁신위원장은 참사 추모식에 개인 자격으로 참석하는 데 그쳤다. 이런 대통령과 정당을 기다리는 건 지난 보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섭고 혹독한 심판일 수밖에 없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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