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동현의 테크딥다이브] 선도국 AI 규제 속도내는데… 韓 `속도 vs 균형` 고심
한국, 워터마크·저작권 활용 가이드 방안 등 제도정비 나서는 중
"패스트 팔로워로서 각 부처·기관 협업과 공감형성 우선" 견해도
AI(인공지능) 규제 움직임이 다시금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말 챗GPT를 시작으로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생성형AI에 대해 국내외에서 법제도 정비가 본격화되는 추세다. 디지털 규범 선도국가를 추구하는 한국이지만, 규제의 속도에 치우치기보다 균형을 꾀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힘을 얻는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내달 1~2일 영국에서 열리는 'AI 세이프티 서밋'에 정부와 삼성전자, 네이버가 참가한다. 각각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전경훈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부문 CTO(최고기술책임자) 겸 삼성리서치장(사장),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이 참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정부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카멜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비롯한 G7(주요 7개국) 정부 고위인사와 주요 AI기업 및 전문가들이 모여 AI의 위험성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가 그동안 북미·유럽 위주로 진행됐던 생성형AI 관련 주요 국제 논의에 중국을 사실상 처음 초대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관심이 모인다.
영국 FT(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초청명단은 약 100명 규모며, 브래드 스미스 MS(마이크로소프트) 사장, 샘 알트만 오픈AI CEO(최고경영자),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얀 르쿤 메타 수석AI과학자뿐 아니라 중국 정부와 알리바바·텐센트 및 중국과학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또한 초청받았으나 참석을 약속하진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앞서 미국에서도 AI 관련 주요 발표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미국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르면 오는 30일(현지시간)에 AI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AI 활용 사례를 발굴하는 동시에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다수의 연방기관을 통해 AI 위험을 모니터링하는 내용이 담겼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해당 초안에는 전문 인력 이민을 간소화하고 새로운 정부기관과 태스크포스를 신설, 의료·교육·무역 등 연방정부가 관여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AI 활용을 촉진한다. 이와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와 사이버보안, 차별 방지 및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해 산업 경쟁 환경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표준을 설정하도록 기관에 지시하는 등 광범위한 새로운 점검을 요구한다.
현재 AI 규제 관련해 가장 빠른 진도를 보이는 곳은 EU(유럽연합)다. 지난 6월 유럽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EU AI법(AI Act)은 회원국들을 대표하는 이사회와 의회 및 집행위원회(EC) 간 3자 협상을 거쳐 2026년 시행이 점쳐진다. EC가 2년여에 걸쳐 준비하고 올해 들어 생성형AI 관련 내용까지 추가한 이 법안은 위험성에 따라 4단계로 AI시스템을 나눠 규제한다.
용인불가 단계 다음 수위인 고위험 단계에 생체인식 등 이미 널리 쓰이는 기술도 포함하는 등 주로 소비자 관점에서의 포괄적인 규제를 추구하는 게 특징이다. 생성형AI 관련해 불법적인 콘텐츠를 생성하지 않도록 하는 관리 의무를 기업에 부여하고, AI가 생성한 결과물에는 원 저작물 등 출처와 함께 AI를 통해 제작했음을 표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LLM(대규모언어모델) 서비스 기업에는 연간 매출액의 최대 2%까지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렇듯 엄격한 규제를 추진하는 EU와 달리 미국은 그동안 산업 진흥 관점에서 보다 유연한 활용과 상호 운영성을 중시하며 대조를 이뤘다. 지난 7월에는 백악관에서 오픈AI, MS, 구글, 메타, 아마존, 앤트로픽, 인플렉션 등 AI기업 7개사가 AI가 생성한 결과물에 워터마크를 넣고 AI시스템 기능·한계 등도 공유하기로 합의했으나, 이 또한 기업들의 자발적인 이행에 대한 약속을 받은 수준이다. 이번에 새롭게 발표할 행정명령을 통해 정부·기관의 역할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으나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EU는 GDPR(일반개인정보보호법)에 이어 또 다시 자신들의 세운 법제도가 세계적 표준화로 이어지는 '브뤼셀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그동안 AI 규제 관련해 미국과 입장을 같이했던 일본을 EU가 포섭, 공동전선을 펼 가능성을 제기했다. 마찬가지로 AI 규제 관련해 자국 영향력을 늘리려는 영국에서 열리는 행사인 만큼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치열한 수 싸움이 전개될 수 있다. 다만 자국 내에선 생성형AI가 사회주의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고 규정하는 중국의 참여로 더욱 혼선을 빚어 모두가 별 결실 없이 파할 공산도 적지 않다.
디지털 규범 선도국을 추구하는 우리나라도 최근 과기정통부가 AI 생성 결과물에 워터마크를 찍는 방안의 단계적 도입을 발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AI 저작권 활용 가이드 초안을 공개하는 등 법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법안 소위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돼있는 AI기본법(인공지능산업 진흥 및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의 경우 시민단체들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반영해 기존 '선허용·후규제' 원칙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AI업계 전문가들은 AI 법제도 마련에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글로벌에서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진 동향을 지켜보면서 필요 시 기민하게 보조를 맞춰나가는 게 낫다는 견해다. 세계에서 몇 없는 AI산업 경쟁력을 지녔기도 하고, 그럼에도 아직은 패스트 팔로워 입장이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장에서 AI 생성물 워터마크 의무화에 대해 "미국보다 기술도 뒤처지는데 왜 법제화는 더 서두르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AI 거버넌스 관련해 각 부처·기관들의 협업과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AI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이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에 안토니오 구테레쉬 UN(국제연합) 사무총장 주도로 26일(미국 동부시간) 출범을 발표한 'UN AI 고위급 자문기구'에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이 자문위원으로 선발된 것은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총 39명의 AI분야 다중이해관계자들이 선발된 자문기구는 향후 1년간 AI 거버넌스 구축 방향과 이를 위한 국제기구 설립에 대한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두 차례 펴낼 예정이다.
AI는 앞으로 우리 산업과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규제에 대해서도 필요 시 개인정보보호법 등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더해가며 신중한 접근을 펼칠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 고 위원장은 "현재 AI규범 관련해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같은 구체적 규범체계를 만들어야한다는 시각부터 아주 느슨한 체계를 잡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까지 굉장히 다양한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며 "기술선도국과 소비자국들 사이에서 중재자적 역할로 우리나라의 국익과 인류의 미래를 고려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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