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국가경제 생존전략과 비전 새로 짤 때다
OECD 전망치 2% 미만 최초
저출산 · 고령화 · 혁신 부족 문제
합계출산율 0.7명 세계 최저 수준
생산성 올릴 구조개혁 지지부진
경제성장률 1% 넘기기 어려워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 추진해야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올해 1.9%로 2%를 밑돌고, 내년에는 1.7%로 더 내려갈 것이라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상승 등 부작용 없이 한 나라가 노동·자본을 총동원해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률로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준다.
OECD가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2% 미만으로 추산한 것은 처음이다. 저출산·고령화·혁신 부족 등 구조적 문제들이 겹쳐 노동·자본·자원의 생산요소를 최대한 가동해도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경기 과열을 감수하지 않는 한 경제성장률이 1%대 중후반을 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10년 사이 반토막 났다. 더구나 내년에는 경제규모가 한국의 13배에 이르는 미국의 잠재성장률(1.9%)보다도 낮아지리란 예측이다. 주요 7개국(G7) 중 캐나다·이탈리아·영국 등 성장 잠재력이 한국보다 낮게 평가되던 나라의 잠재성장률이 반등하는 것과 거꾸로다. 이러다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G7 국가에도 역전당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2021∼2022년 잠재성장률을 '2% 내외'로 본다. 한은이 추정한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5.0∼5.2%, 2006∼2010년 4.1∼4.2%, 2011∼2015년 3.1∼3.2%, 2016∼2020년 2.5∼2.7%로 급속도로 지속적으로 하강했다.
잠재성장률을 좌우하는 요소는 노동과 자본, 생산성 혁신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2분기 0.7명)은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이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물론 총인구마저 지난해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인구가 적으면 생산성이 높아야 할 텐데, 생산성을 끌어올릴 노동·교육 등 구조개혁은 지지부진하다.
고강도 규제와 이익집단의 반발에 부닥쳐 의료·금융 분야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은 일자리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중국 간 패권 경쟁과 국제 분쟁 지역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등 대외환경이 악화하며 괜찮은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비싼 집값과 보육·사교육 부담으로 결혼·출산을 기피하는 '축소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의 인구구조가 잠재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2% 성장하는데 일본처럼 0%대 성장에 머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 소극적이다. 노동시장 개혁과 여성의 경제활동 증대, 이주 노동자 활용과 이민 정책 도입 등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2%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정책 조합이 시급하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면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기조적인 물가하락) 없이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자금의 공급과 수요를 맞추는 이론적 금리 수준인 '중립금리'도 낮아진다. 미국의 경우 경제가 견고해서 중립금리가 오르는 추세다. 이와 달리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내려가고 중립금리도 하락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등 주요국 중립금리가 오르는 반면 한국은 내려가 금리격차가 커지면 통화정책 여력이 줄어든다. 미국은 연 5.5% 기준금리에서도 수요와 인플레이션이 둔화하지 않아 중립금리가 올라갔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이 지금처럼 고금리를 유지하고 한국의 금리가 하락하면 한미간 금리 역전은 당연시되고, 그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는 한국과 미국 모두 통화긴축 사이클에 있고, 한국의 중장기 금리는 미국에 맞춰 움직인다. 중립금리가 변화하고 통화정책이 엇갈리면 시장금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외환시장은 경험하지 못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원화가치가 장기적으로 떨어질(원·달러 환율 상승)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저하는 예고된 위기다. 1990년대부터 5년마다 성장률이 1%포인트씩 떨어지는 '5년 1% 하락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지금 2% 정도인 잠재성장률을 4% 정도로 올라가도록 목표치를 잡고 있다"고 밝혔다. 두배는커녕 반토막 난 현실에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30% 박스권에 갇혀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추경호 부총리는 내년 성장률이 주요국 중 가장 높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올해 낮은 성장률과 비교해 그렇게 보이는 측면이 있는 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잠재성장률 1%대 관측에 대해선 별말이 없다.
경제의 기초체력인 잠재성장률이 2% 밑으로 내려가면 구조적으로 경제성장률이 1%대를 넘기기는 더 어려워진다.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기 전에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내년에 긴축하겠다며 싹둑 자른 연구·개발(R&D) 예산도 미래산업과 첨단기술 개발 분야는 복원해야 마땅하다. 더 늦기 전에 위기 타개 방안과 미래 비전을 담은 국가경제 장기 전략을 국민에게 보고해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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