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마라톤] 시력 잃은 남편 손 꼭 붙잡고 2년 연속 풀코스 달린 사연
“인생도 마라톤과 비슷해서, 마라톤에서까지 중간에 포기하면 시력을 잃은 우리 남편과 내가 같이 살아갈 앞으로의 삶에서도 포기할 것이 너무 많을 거 같았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올해도 무사히 완주했습니다.”
29일 2023 춘천마라톤(조선일보사·스포츠조선·대한육상연맹 공동 주최) 풀코스에 김종녀(59)씨는 지난해에 이어 시각장애인인 남편 박인석(61)씨와 함께 참가했다. 시각 장애인인 남편과 아내가 함께 달리기 시작한 건 2017년. 남편이 완전히 시력을 잃고 난 후다. 2009년 시력이 많이 떨어져 병원을 찾은 박씨는 돌연 급성 녹내장을 진단받았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던 박씨는 2016년도엔 실명해 혼자선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도 그만두게 됐다.
간호사인 김씨는 퇴근하면 꼭 박씨를 데리고 손을 잡고 동네 주변을 5km 꾸준히 걸었다고 한다. 박씨는 아내와 함께 저녁에 꾸준히 달리기 연습을 하며 사람들 발자국 소리도 듣고, 바람도 쐬고 풀 냄새 등도 맡는다. 하지만, 꼬박 집에만 있어야 했던 박씨는 1년에 체중이 20kg 가까이 불어났다고 한다. 김씨는 “남편이 우울한 내색을 안하지만 속으로는 앓고 있을 수도 있고, 급격히 체중이 불어나 건강도 상할까 걱정됐다”고 했다.
마라톤이 취미던 김씨는 시각을 잃은 배우자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남편의 손을 잡고 함께 달리기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100m 달리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차차 거리를 늘려갔다. 2019년엔 부부가 함께 10km 마라톤에 출전했다. 시력을 잃기 전만 해도 “그 힘든 달리기를 뭐 하려 하나”던 박씨는 이제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달리기 동호회에도 가입해 일요일마다 회원들과도 곳곳을 달린다. 김씨는 “달리기 하면서 오히려 남편 말수가 더 많아지고, 더 활발해진 것 같다”며 “이젠 먼저 달리기 하러 가자고 먼저 보채곤 한다”고 했다. 박씨는 “한창 일할 나이에 일손을 놓으니, 마음이 엄청 힘들었는데 아내 덕분에 이제는 괜찮아졌고 인생의 활력소를 찾았다”고 했다.
지난해엔 부부가 함께 춘천마라톤 풀코스에 참여했다. 지난해 풀코스 기록은 6시간 5분. 12km 쯤 갔을 때 박씨는 포기하자고 했으나, 김씨가 설득했다고 한다. 김씨는 “지금까지 하프코스만큼 왔으니, 어차피 다시 돌아가야 하는 만큼만 조금 더 달려보자”고 했다고 한다. 남편이 중간에 다리가 저려 쥐가 날 것 같다고 하면 김씨가 ‘야옹’ 고양이 소리로 ‘쥐’를 위협하는 듯한 시늉도 했다. 김씨는 “나 혼자 말고 같이 가자”며 계속 응원한 결과, 둘이 함께 무사히 풀코스를 완주했다.
이번 풀코스도 무사히 완주한 부부의 기록은 6시간 10분 26초. 5분 가량 늦춰졌지만, 김씨는 “우리의 목표는 시간 단축이 아니라 완주”라며 “무사하게, 지난해보다 더 편하게 완주해서 기쁘다”고 했다. 박씨는 “35km쯤 지날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결국 해내서 기쁘다”며 “풀코스에 앞으로 더 도전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올해로 춘천마라톤 10회차인 김종녀씨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김씨는 “내가 달릴 수 있어 남편을 운동 시킬 수 있어서 다행이고 함께 달려주는 남편에게 고맙다”며 웃어 보였고, 박씨는 “매번 손을 잡고 달리는데, 나를 위해 이렇게 고생하니 고맙고 행복하다”며 “명예의 전당에 오른걸 축하하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같이 오래오래 달렸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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