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 나이에도 예술활동 이학동 화백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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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의 나이에도 활발한 예술활동을 이어가던 이학동 화백이 28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23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이 화백은 일제강점기 반강제로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 개명)를 당했고 스무살 되던 1944년에는 일본군으로 강제 동원돼 일본 도치기현 가누마시에서 물자 나르는 일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나주시민의 상, 2020년 한국예총 전남연합회 전남예술인상, 2021년 나주문화원 공로상, 지난해 나주교육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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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의 나이에도 활발한 예술활동을 이어가던 이학동 화백이 28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0.
1923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이 화백은 일제강점기 반강제로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 개명)를 당했고 스무살 되던 1944년에는 일본군으로 강제 동원돼 일본 도치기현 가누마시에서 물자 나르는 일을 했다. 이때 경험했던 나라를 잃은 설움은 한평생 무궁화 그림에 몰두한 계기가 됐다.
해방 뒤 귀국한 그는 1947년 조선대 미술과 1기로 입학해 오지호(1905~1982), 김보현(1917~2014), 의재 허백련(1891~1977) 등에게 서양화와 한국화를 배웠다. 이후 37년간 나주, 여수, 고흥 등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했고 청소년 노동자를 위해 197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 자비로 야간 중학교도 운영하기도 했다.
1961년에는 나주문화원을 창립, 초대 원장을 지냈다. 같은 해 초원다방에서 나주 첫 서양화 개인전을 선보이는 등 평생 개인전 50여 차례를 열었다. 그림을 배우고 싶은 시민을 위해 2013년 5월에는 나주시 중앙동에 화실 겸 문화공간 ‘청운 이학동 문화사랑방’을 열어 한국화, 서양화뿐 아니라 드럼, 아코디언 등 각종 악기를 무료로 강습했다. 2021년부터는 유치원생과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맑은 미술제’를 열어 예술에 대한 꿈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응원했다. 올해 5월에는 나주문예회관에서 70년 예술인생을 되돌아보는 회고전을 열어 신작 30여점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나주시민의 상, 2020년 한국예총 전남연합회 전남예술인상, 2021년 나주문화원 공로상, 지난해 나주교육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훈·근·철·민호씨와 딸 은영·은주·은정·은미씨가 있다. 빈소는 나주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31일 오전 9시다. (061)-332-8114.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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