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종양학자들이 주목한 올해의 암 극복 키워드는 ADC·면역항암제·인공지능
글로벌 제약사 혁신 항암제 결과 잇따라 발표
아스텔라스 ADC 치료제 기립 박수
“갈 길 먼 암 정복, ‘혁신 치료’ 해법” 제시
이달 20~24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 2023′에서는 ‘항체약물 복합체(ADC)’ 치료제 중간 임상 결과와 폐암이나 유방암에 쓰이는 면역항암제 치료 요법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암을 예측하는 연구 성과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ESMO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미국암학회(AACR)와 함께 세계 3대 암 학회로 세계 각국의 암 전문가들의 최신 연구성과와 치료제의 임상 결과를 공유하는 유럽 최대 행사다.
올해 행사에도 다국적 제약사 길리어드사이언스, 로슈,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다이이찌산쿄 등 글로벌 제약사가 참여했다. 국내에서도 유한양행, 루닛, 한미약품, 큐로셀, 지아이이노베이션, HLB 등 업체들이 참여해 연구 성과를 알렸다.
◇아스텔라스·다이이찌산쿄 등 개발 ADC 임상 결과, 기립 박수 받아
올해 행사에서는 글로벌 제약사 아스텔라스의 ‘파드셉’,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엔허투’, 길리어드사이언스의 ‘트로델비’가 소개한 ADC 치료제 연구 결과가 주목을 받았다.
ADC는 유도부에 해당하는 항체와 탄두 역할을 하는 약물을 접합한 물질로 ‘항암 유도미사일’로 불린다. 미사일 역할을 하는 항체가 표적이 되는 암세포에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가 탄두(약물)가 터지는 것과 같다. 표적하는 암세포만 선택해 죽여 정상세포 손상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차세대 암 치료법으로 꼽힌다. 다른 세포에 손상을 적게 주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고 치료 효과가 높아 부작용이 많은 항암제 분야에서 ADC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ADC약물이 다른 방식의 항암제보다 개선된 효과를 보이고 안전성을 보이면서 지난 몇 년새 관심이 늘고 있다. 올해 행사에서 공개된 초록에 따르면 ADC의약품 개발 관련 연구가 항체(mAb) 의약품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행사에서는 아스텔라스의 ADC ‘파드셉’과 미국 머크(MSD)의 혁신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방광암 환자에게 함께 사용한 치료법이 화제를 모았다. 지난 22일 열린 발표에서 두 치료제를 병용 투여한 방광암(요로상피암) 환자들의 생존 기간이 12개월 이상 연장됐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기대보다 높은 결과가 발표되자 기립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파드셉 치료제는 국내에서도 1차 치료제로 보험급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스트라제네카가 다이이찌산쿄와 말기의 폐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개발한 ‘다토DXd’의 임상 결과도 주목받았다. 암 성장과 암 전이를 촉진하는 TROP-2 단백질은 비소세포폐암 외에도 유방암, 방광암, 췌장암, 자궁경부암 등 여러 암에서 과발현된다. 이 약은 TROP-2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
다이이찌산쿄는 ADC 항암제 개발에 있어 가장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MSD가 다이이찌산쿄와 ADC 기반 항암제 3종에 대해 최대 220억달러(29조7660억원) 규모의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MSD는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고형암 신약 후보물질인 ‘파트리투맙 데룩스테칸’(HER3-DXd), ‘이피나타맙 데룩스테칸’(I-DXd), ‘라루도타턱 데룩스테칸’(R-DXd)을 공동 개발과 상업화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마크 러트스타인 다이이찌산쿄 글로벌 종양학 임상개발책임자(박사)는 “다이이찌산쿄는 ADC 치료제인 엔허투 개발을 성공시키며 이 분야에 개발 노하우를 구축해왔다”며 “MSD와의 협력을 통해 임상 개발에 더 나은 시너지를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길리어드사이언스가 개발한 ‘트로델비’가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2차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임상 결과도 올해 행사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치료제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허가를 받았다. 길리어드는 이번 학회에서 전이성 삼중음성유방암환자의 2차 치료에 트로델비를 표준 요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임상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새러 톨러니 미국 하버드대 의대 부교수 겸 다나파머 암연구소 유방종양학 과장은 이날 ‘트로델비’ 연구 성과를 발표하면서 “최근 유방암을 포함한 다양한 암종 치료제 개발 부문에서는 ‘ADC 기술’ 없이 성장을 견인하기 어렵다고 보고 개발을 추진 중”이라면서 “앞으로 ADC를 활용한 항암제 분야가 급격하게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장조사분석기관 이밸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글로벌 ADC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19년 27억달러(약 3조6500억원)에서 2026년 248억달러(33조6160억원)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알테오젠, 레고켐바이오, 피노바이오 등이 ADC 관련 기술을 활용한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 면역항암제 병용 임상서 성과
올해 행사에서는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에 대한 성과들도 발표됐다.
머크가 개발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병용 임상3상(키노트-811)’에서 치료 예후가 좋지 않은 전이성 위암 환자에서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키노트-811은 수술(절제)이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위암과 전이성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2(HER2) 양성 위암, 위식도 접합부(GEJ) 선암의 1차 치료에서 키트루다와 트라스트주맙기 항암화학요법 병용요법을 평가하기 위해 실시됐다. 옐레나 얀지안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더링 암센터의 위장관 종양내과 수석 주치의는 “이번 임상에서 키트루다와 트라스투주맙, 항암화학요법 병용요법이 임상적인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임상 연구 결과도 주목을 받았다. 에이비엘바이오가 개발한 면역항암제 신약 ‘ABL111(지바스토믹)’의 임상 1상 결과는 올해 행사에서 ESMO가 선정한 혁신 면역요법 분야 최우수 포스터에 뽑혔다. 에이비엘바이오의 파트너사로 임상개발을 진행한 중국 아이맙의 존 헤이슬립 최고의학책임자(CMO)는 “치료가 어려운 말기 암 환자에게서 약의 효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다양한 암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암 정복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의견도 여전히 이번 행사에서 나왔다. 한 의료계 전문가는 “수많은 글로벌 제약사와 연구자들이 암 정복을 위해 임상결과를 내놓고 있지만 ‘완치’라는 결과물을 낸 것은 찾기 드물다”며 “암 정복을 위해서는 각계가 뭉쳐 결과물을 내는 것도 필요한데,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암 정복 프로젝트 ‘캔서 문샷(Cancer Moonshot)’이 추진되며 물꼬를 터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담도암·유방암에 인공지능(AI) 기술 적용...전문가 “복잡한 검사 없이 한 장 분석 가능”
올해 행사에선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AI를 활용한 암 연구 결과가 주목을 받았다. 특히 난치성 암인 담도암에서의 AI 기술을 적용한 연구 성과가 학계에서 관심을 받았다. 유창훈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와 이충근 연세대 암병원 교수는 ‘루닛’에서 개발한 AI 바이오마커인 ‘루닛 스코프 IO’를 활용해 담도암에서 면역항암제 효과를 예측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전체 담도암 환자의 10%에 해당하는 면역 활성 타입의 환자에서,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3배 이상의 효과를 보일 것으로 면역항암제 반응률이 나타났다.
연구 책임 연구자인 유창훈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이 연구 결과는 복잡한 검사 없이 병리 슬라이드 한 장의 분석을 통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치료를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환자에게 더 확신을 가지고 치료를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환자의 경우 효과가 높지 않은 치료에 얽매이는 대신 다른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진단 방식 향후 암 환자 진료의 워크플로(Workflow)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연구의 1저자인 방영학 성균관대 디지털헬스학과 연구원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전임의를 수료한 의사과학자 출신으로, 이번 ESMO에서 젊은 연구자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국내 AI 진단 기업 루닛은 이번 행사에서 AI를 활용한 대장암종 내 불일치 복구 결함(dMMR) 검사와 진행성 평활근육종에 대한 2차 치료제로서 아벨루맙과 젬시타빈 병용요법의 2상 임상시험 결과 분석, 유방암에서 AI 기반 HER2 강양성 종양 세포 비율을 이용한 예후 예측 결과를 소개했다.
루닛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AI ‘나로넷(NaroNet)’을 활용해 면역관문억제제(Abstract 1024MO)로 치료받은 진행성 흑색종 환자 53명에 대한 효능과 독성 결과를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를 식별하는 연구 성과를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올해 행사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암 연구의 활용 가능성이 앞으로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수년 새 AI 진단 기술은 연구 초기 단계에서 실제 임상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AI 기술을 활용한 암 진단 소프트웨어들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거나 유럽에서 CE 마크를 획득해 쓰이고 있다.
호세 페레즈 로페즈 인텔리젠즈 최고경영자(CEO)는 “AI를 활용한 암 분석 도구는 반복적 작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의료 전문가가 환자 치료의 복잡한 측면을 보다 편리하게 관리하고, 치료자를 선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로페즈 CEO는 “AI 모델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더 높이기 위해임상 연구에서 정확성과 타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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