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갈 때 두려웠지만…항상 ML 꿈꿨다" 류현진도 못한 것을 해낸 KBO 역수출 신화
[OSEN=이상학 기자] 한국시리즈에 이어 월드시리즈까지 모두 승리투수가 된 최초의 선수. 류현진도 못한 것을 해낸 메릴 켈리(35·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KBO 역수출 신화의 정점을 찍었다.
켈리는 2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WS·7전4선승제) 2차전에 선발등판, 7이닝 3피안타(1피홈런) 무사사구 9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애리조나의 9-1 완승을 이끌었다.
전날(28일) 1차전에서 9회 동점 투런 홈런을 맞고, 연장 11회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며 5-6 충격의 역전패를 당한 애리조나는 켈리의 호투에 힘입어 2차전 반격에 성공했다. 시리즈 전적 1승1패로 균형을 맞추며 3~5차전을 애리조나 홈에서 치른다.
생애 첫 월드시리즈 등판에서 승리투수가 된 켈리는 진기록도 하나 세웠다. 지난 2018년 11월7일 KBO리그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소속으로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인천)에 선발등판, 7이닝 4피안타 2볼넷 5탈삼진 2실점(무자책) 호투로 승리를 거둔 켈리는 한국시리즈, 월드시리즈 모두 승리투수가 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켈리에 앞서 월드시리즈와 한국시리즈 모두 등판한 투수는 한국인 좌완 류현진이 있었다. 류현진은 2006년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3경기에 나서 평균자책점 2.25로 호투했지만 승리 없이 1패를 당했다. 2018년에는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보스턴 레드삭스 상대 월드시리즈 2차전에 선발등판했지만 4⅔이닝 6피안타 1볼넷 5탈삼진 5실점으로 패전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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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애리조나 구한 완벽투, 모두가 켈리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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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켈리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했다. 1회부터 삼진 2개를 잡으며 삼자범퇴로 시작한 켈리는 4회 2사까지 11타자 연속 아웃 처리하며 퍼펙트 위력을 떨쳤다. 4회 2사 후 에반 카터에게 첫 안타를 맞았지만 다음 타자 아돌리스 가르시아를 우익수 뜬공 처리했다. 5회 선두 미치 가버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이렇다 할 위기 없이 7회까지 정리했다.
6회 마커스 시미언, 코리 시거, 카터를 3타자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이 백미였다. 시미언에겐 바깥쪽 낮게 걸치는 포심 패스트볼로 루킹 삼진을, 시거는 바깥쪽 커터로 헛스윙 삼진을, 카터에겐 몸쪽 낮게 떨어지는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7회 마지막 타자 조나 하임에겐 몸쪽 낮게 꽉 차는 싱커로 루킹 삼진 처리하며 완벽에 가까운 커맨드를 보여줬다. 각기 다른 구종으로 존 전체를 활용했다.
이날 켈리는 탈삼진 9개에 무사사구 투구를 했다. 월드시리즈에서 삼진 9개 이상 잡으며 무사사구로 막은 역대 10번째 투수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2020년대 월드시리즈 최초로 7이닝을 던진 선발투수가 됐다. 2019년 월드시리즈 6차전 워싱턴 내셔널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8⅓이닝 2실점) 이후 처음이다.
총 투구수 89개로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63개, 볼 26개. 최고 94.1마일(151.4km), 평균 92.8마일(149.3km) 포심 패스트볼(17개)보다 체인지업(22개), 커터(21개), 싱커(15개), 슬라이더(10개), 커브(4개) 등 6가지 구종을 고르게 던졌다. 불같은 강속구는 없어도 여러 구종을 원하는 곳으로 던진 커맨드가 빛났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토레이 로불로 애리조나 감독은 “켈리가 아주 빠르고 쉽게 아웃을 잡아냈다. 9회까지 던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7회까지 89구라 교체했다. 120구까지 던지게 할 수 없었다”고 7이닝 교체 이유를 밝힌 뒤 “그는 매 경기 조금씩 진화하면서 성숙해지고 있다. 매 경기 등판 때마다 더 나아지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한다. 가장 큰 무대, 가장 큰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한다. 어제 2아웃을 남기고 역전패해서 기세가 꺾일까 우려됐는데 켈리 덕분에 이겼다. 밸런스가 뛰어난 투구답게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구종이 잘 들어갔다”고 칭찬했다.
적장진 브루스 보치 텍사스 감독도 “켈리에게 고전한 이유는 훌륭한 커맨드 때문이다. 경기 내내 4가지 구종 제구가 잘됐다. 그럴 때 켈리는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다. 포스트시즌에서 계속 좋은 투구를 보여줬는데 오늘도 그 기세를 이어갔다”고 인정했다. 이날까지 켈리는 이번 포스트시즌 4경기(24이닝) 3승1패 평균자책점 2.25 탈삼진 28개 WHIP 0.83으로 압도적인 투구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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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도 이런 날을 상상했다” 꿈을 이룬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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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대로 켈리는 KBO리그 출신이다. 지난 2015~2018년 SK 소속으로 4년을 한국에서 뛰었고, 이를 발판 삼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27살 젊은 나이에 한국으로 갈 때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도 인정받는 투수로 성장했다. 미국 언론에서도 켈리에게 거의 매일 같이 한국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이날 경기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공식 인터뷰에서 켈리는 “한국에 있을 때도 내가 여기에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하곤 했다”며 “시차 때문에 한국에선 빅리그 경기가 거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작된다. 일어나서 커피를 탄 뒤 빅리그 야구를 보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그곳에 있을 때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는데 항상 빅리그로 돌아가는 게 목표였다. 내가 월드시리즈에서 투구할 것이라곤 아무도 예측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켈리는 “적절한 시기, 적절한 장소에서 주변 도움을 받았다. 월드시리즈에 온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팀 전체의 노력이 덕분이다”며 “한국에서 함께한 코치들은 언어 장벽이 있긴 했지만 나를 최대한 많이 도와줬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은 나의 목소리, 내가 스스로의 투수코치가 된 것이다”고 한국 코치들에게 고마움도 전했다.
마지막으로 켈리는 “지금 시점에서 난 그 어떤 충격도 받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26살 때 한국으로 건너간 것이 빅리그나 월드시리즈에서 투구하는 것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었다. 그 나이에 미지의 세계로 갔다. 야구 경력, 그곳에 가리고 한 선택, 문화, 가족을 떠나야 한다는 점까지 모든 게 불확실했다. 그게 가장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35살이 된 지금은 커리어가 시작보다 끝에 가까워졌고, 이제는 최대한 많이 즐기려 한다. 필요 이상으로 큰 것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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