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가을의 섭리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0. 29. 14:51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위에 많은 바람을 풀어놓아주소서.
마지막 과실을 익게 해 주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무르익게 하소서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주시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못합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러할 것입니다.
밤새워 이책 저책 뒤적이며
길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떨어져 뒹굴때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스레 방황할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作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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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자연의 섭리를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그토록 푸르렀던 잎새들이 어느새 낙엽이 되어 떨어져 뒹굴고, 따사롭던 햇살은 차가운 공기에 그 세력을 내주고 사라져 간다.
가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아마도 릴케의 말대로 길고 긴 편지를 쓰거나 가로수 사이를 방황하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가을은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는 계절이다. 밖으로 뻗던 기운을 거두어들이고 내 안에 들어가 생각에 잠기는 계절이다.
-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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