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계 미국인 분노에 백악관 ‘비상’…민심 수습 노력
미국 내에서 아랍·무슬림 배경을 지닌 이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대응을 비판하며 ‘지지 철회’까지도 불사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백악관이 긴장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현지시간) 백악관이 바이든 대통령의 전폭적인 이스라엘 지지에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는 아랍계 및 무슬림 미국인 커뮤니티와의 관계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가자지구 보건부가 집계해 발표하는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숫자를 믿지 못하겠다는 취지의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25일 발언이 이들을 격앙시켰다. WP는 바이든 대통령의 해당 발언이 “팔레스타인인 전체를 ‘거짓말쟁이’로 보거나 가자지구의 의료 종사자들을 하마스와 동급으로 취급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파장이 커지자 백악관은 무슬림 지도자나 아랍계 미국인 당국자들과의 ‘접촉면’을 늘리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26일 무슬림 출신 검찰총장, 활동가, 종교 지도자 등 다섯 명의 무슬림 지도자를 백악관으로 불러 의견을 청취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직후 열린 유대인 지도자들과의 간담회가 생중계된 것과는 달리 이번 행사는 사전 공지나 설명 자료를 내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무슬림 지도자들은 휴전을 촉구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진지하게 관여할 것을 요구했다고 WP는 전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사망자 숫자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도 피력했다고 한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들은 앞서 23일에는 아랍계 및 무슬림 정무직 공무원 약 70명과 간담회를 열었는데, 참석자들은 출신 배경을 이유로 직장에서 의심을 받는다고 느낀다고 호소했다.
상당수가 확고한 민주당 지지층인 무슬림계가 바이든 대통령에 등을 돌리면 대선 판도에도 파장이 일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에 투표했던 미시간주의 아랍계와 무슬림 미국인들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에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미시간주는 대표적인 경합주이자 무슬림 인구 비중이 높은 곳이다. 미시간 지역 민주당의 명망있는 지도자 일부는 ‘바이든에 투표 불가’를 선언하기도 했다.
WP는 공화당 내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개적인 적대감으로 인해 민주당을 ‘피난처’로 여겼던 무슬림 미국인들이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아랍아메리칸 인스티튜트 사무국장 마야 베리는 WP에 “2024년까지 이 일을 기억하겠냐는 시각도 있지만, 아랍·팔레스타인계 미국인과 중동 평화를 위해 일생을 보낸 이들은 이를 잊지 않을 유권자들”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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