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량 소멸 직전 국정감사···정부·기업, 국회 무시에 또 ‘맹탕’[2023 국정감사 평가]
‘AI 유인촌’으로 요란하게 문을 연 2023년 국회 국정감사가 지난 27일 맹탕이란 평가 속 조용히 마무리됐다. 양대 포털사이트 키워드 검색 결과 이번 국감은 21대 국회 국감 중 가장 관심이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는 맹탕 국감의 원인에 대해 서로를 탓했다. 정부의 자료 제출 비협조, 국감 증인·참고인의 출석 회피 등으로 국감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1988년 재도입 이후 36년째를 맞이한 국감 제도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총 4번의 국감 기간 네이버(데이터랩)와 다음(카카오데이터트렌드) 양대 포털에서 ‘국정감사’ ‘국감’의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올해 국감의 일평균 검색량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국정감사 기간 일평균 검색량은(일 최대 검색량 100 기준) 네이버에서 2020년 18.9, 2021년 19.3, 2022년 19.1, 2023년 15.2이었고, 다음에서는 2020년 21.8, 2021년 14.9, 2022년 11.3, 2023년 1.1로 올해 검색량이 크게 줄었다.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올해 국감에 대해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는 15%, ‘없었다’는 평가가 49%로 집계됐다.(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포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시민단체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지난 24일 보도자료에서 “금년 국감을 C학점으로 평가한다”며 “윤석열 정부 1년6개월간의 부정부패나 예산 낭비요소 지적 등 국감 본래적 기능에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맹탕 국감의 원인을 두고 반복되는 이슈의 정쟁화가 피로감을 높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국감에서도 여야는 입장차가 큰 이슈를 두고 공방만 벌였다. 국방위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과거 막말 논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두고 첫날부터 파행을 빚었다. 국토교통위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변경 의혹, 기획재정위는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 의혹 등을 두고 여야 간 대립이 극에 달했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는 내년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정무위는 광주 정율성 공원 등 기념사업 중단,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등 주제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주요 인물과 관련된 ‘한방’이 없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29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총선 전 마지막 국감은 대부분 공중전”이라며 “김건희 여사나 이재명 대표와 관련한 큰 이슈들이 나오지 않아 맹탕이 된 것 같다. 민주당은 대표가 부재 중이었고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선거 이후라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화력이 약했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불성실한 자료 제출 등 비협조는 새로운 이슈 발굴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지난 27일 국토위 국감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관련 자료 중 일부 내용을 고의적으로 빠뜨린 채 외부에 공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강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된 충청북도교육청은 부실한 국정감사 자료 제출로 지난 18일에 이어 20일 추가 감사를 받았다.
국감마다 해외출장?···김건희 논문 표절 의혹 증인, SPC 회장 불출석
주요 증인·참고인의 국감 불출석 혹은 회피는 관심도를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다. 검색량 기준 국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았을 때는 2021년 10월18일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국감에 참석한 날(네이버 기준)과 2020년 10월22일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출석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날(다음 기준)이다. 두 사람은 당시 기관 증인으로 국감에 출석했다. 이번 국감에서는 지난 13일 법제사법위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 논란의 핵심 인물인 조은석 감사위원의 배석을 두고 여야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질의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조 위원에 대해서는 종합국감에서 질의가 이뤄졌지만 모든 피감기관이 모인 자리라는 점에서 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업 등 일반 증인·참고인들의 국감 회피도 문제가 됐다.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김지용 국민대 이사장은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그룹 계열사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로 증인 채택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이해욱 DL그룹 회장도 해외 출장 중을 핑계로 불출석해 민주당이 별도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해외 투자설명회(IR) 일정을 이유로 증인 출석 요구에 불응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서는 여야 합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목에 깁스하고 국감장에 나타나 30여분 만에 자리를 떠 야당의 지탄을 받았다.
그럼에도 국감의 위력과 필요성을 확인한 순간도 적지 않았다. 지난 20일 교육위 국감에서는 김승희 전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의 초등학생 자녀가 후배를 때려 전치 9주의 상해를 입혔다는 의혹이 제기돼 김 전 비서관의 사퇴로 이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지난 20일 법사위 국감장에서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겠다는데 왜 판사가 마음대로 용서하나”라고 호소한 것은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국감의 순기능으로 평가됐다.
여야는 맹탕 국감 원인을 서로에게 돌렸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보통 국정감사는 야당의 시간이라고 하는데 내년 공천에 (국감이) 반영이 안 돼서 그런지 자리를 비우는 의원도 많고 제대로 준비가 안 된 것 같았다”며 “한두 개 현안에 대해 여러 의원들이 반복적으로 질의를 하고 공세 수위도 예전보다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 국민의힘 수도권 초선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은 마음이 완전 콩밭에 가 있었다. 정치적 프레임만 짜왔다”면서도 “우리 당도 거물급 중진 의원들은 자리를 안 지키는 경우도 많아 좀 힘들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국감 평가 및 향후 대응방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국감은 정부 여당의 국감 방해가 가장 심각했다”며 “의도적인 자료 미제출과 증인 빼돌리기, 오만한 답변 태도와 정쟁을 통한 파행 유도 등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감시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행태가 극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국방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마이웨이가 문제”라며 “채 상병 문제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는 야당의 공세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임에도 정부가 귀를 닫아버려서 야당이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공천 평가에 반영이 안 된다는 건 맹탕 국감의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도입 36년째, 전세계 유일 벼락치기 국감···“상시국감 돼야”
도입된 지 30년이 넘은 국감 제도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감 체제는 1988년 16년 만에 국감이 부활하며 제정된 국감법을 근간으로 한다. 2019년 한국공공관리학보에 실린 ‘국정감사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정감사는 국정 전반에 대해 정례적으로 감사하는 제도로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형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9일 “현재 국감은 연례적인 통과의례 같은 느낌이 됐다”며 “과거에는 소수만 정보를 접하고 공유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국감 대상이 별로 없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1년에 한 번에 몰아서 국감을 하는 대신 상임위를 통해 상시적으로 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증인·참고인 문제는) 원론적으로 불출석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자고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처럼 날짜를 딱 지정해서 국감을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유례를 찾기 힘들다”며 “국감을 상시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하고 감사원 같은 기관이 국회에 와있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감사법을 제대로 지키는 데서 개선이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정감사법에 따르면 국정감사는 정기국회(9월1일) 이전 30일까지 할 수 있지만 이번 국정감사는 21대 국회 국정감사 중 기간이 가장 짧은 18일에 불과했다. 증인을 신청하고도 철회한 경우나 불러놓고 질문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홍은택 카카오 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했다가 지난 27일 산자위 종합국감 당일 증인 명단에서 제외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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