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는 왜 안보에 무능할까? [김연철 칼럼]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알지 못했을까? 전형적인 정보 실패다. 정보기관은 가능성을 경고했고, 직전에는 움직임을 포착했으며, 주변국은 관련 정보를 전달했는데, 네타냐후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이 넘치지만, 정작 핵심이 빠져 있다. 아무리 예산을 투자해도, 기술정보의 수준이 높아도, 정부가 무능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보 실패는 분열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가 만든 분열이 하마스가 준동할 수 있는 틈을 제공했다. 국민의 분열은 언제나 정부 안에서도 나타난다. 정보기관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모사드, 군 정보기관, 그리고 국내보안부서(Shin Bet) 사이에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보의 속성 때문에 대체로 정보기관은 경쟁하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려 하는데, 극우 정치의 불통과 일방주의로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정보 실패 사례도 비슷하다. 2001년 9·11 테러 뒤, 위원회가 분석한 정보 실패의 핵심 원인은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의 비협조였다. 이후 미국은 정보기관 사이의 정보공유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정체계를 개혁했다. 그러나 언제나 제도 그 자체보다는 제도를 운용하는 지도자의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정보기관의 특성에 따라 정보 판단이 다를 때,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정부 내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 지도자가 다양한 정보 판단에 귀를 열고, 다른 의견을 조정해야, 오판을 막을 수 있다.
지도자가 소통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호통만 치면서 강경책만 주장하면, 정보 실패는 불가피하다. 왜 권위적인 지도자가 민주적인 지도자보다 무능할까? 지도자는 야당과 언론과의 소통 능력뿐만 아니라, 정부 조직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내부 협상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기관 사이의 협력과 외교안보 부처의 조율은 절대적으로 지도자의 태도, 능력, 공적 책임감에 달려 있다. 권위적 지도자는 대체로 정책 결정 과정을 마비시키고, 조직을 파괴한다. 민주적 지도자만이 오판을 줄이고 조직을 활성화하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찾는다.
정보 실패는 주로 정보의 수집이 아니라 정보의 분석 과정에서 발생한다. 핵심은 편견이다. 편견은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고, 자신의 주장에 유리한 정보만 쌓아 결국 확증 편향으로 나아간다. 정보 실패 뒤에는 언제나 정보수집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기술정보 역량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해도, 편견을 배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분석의 실패는 언제나 기계가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실용이 아니라 이념을 추구하는 극우세력은 편견이라는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이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다양성을 혐오하고, 거짓말을 너무 자주 한다.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있으면, 현실의 변화를 읽기 어렵다. 당연히 문제를 일으키는 데는 선수이지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 이념과 무능의 상관관계는 분명하다.
정보 실패의 원인을 고치지 않으면 반복된다. 극우는 대체로 실패를 인정하고 위기를 국민통합의 계기로 삼는 대신, 분노를 동원한다. 분노는 이성과 거리가 멀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9·11 테러 이후 부시 정부는 분노를 동원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했다. 두개의 전쟁 모두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미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전쟁 이전으로 돌아갔다. 9·11 테러의 정보 실패와 이라크 전쟁의 정보 실패 사이에는 분노라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네타냐후 정부 역시 가자지구로의 진격이 분노에 입각해 있다면, 또 다른 정보 실패로 이어질 것이다.
극우는 국내적으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혐오를 부추기고, 통합의 정치가 아니라 분열의 정치를 조장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인정하고 제도 안에서 소통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극우는 극단적인 적대 의식으로 의견이 다른 상대를 절멸의 대상으로 본다. 외교적으로는 이익이 아니라 이념을 추구하고, 평화가 아니라 폭력을 추구한다.
세계 곳곳에서 봉합된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혼돈의 시대다.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유연해야 한다. 과잉 이념으로는 급변하는 현실에서 안보를 지킬 수 없다. 이스라엘의 교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념은 정책이 아니고, 분노는 전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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