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회예산처 "내년 R&D예산 감액, 타당성·중장기 전략 無"
"상당수 R&D 면밀검토 없이 감액…유사·중복사업도 포함, 기준 불명확"
"민간 R&D 투자 부정적 영향 우려…국회 예산안 심의과정서 논의 필요"
국회예산정책처(이하 예산처)가 내년도 정부의 R&D(연구·개발) 예산 삭감 결정에 대해 '면밀한 타당성 검토 없이 불명확한 기준에 근거한 예산안'이라고 평가했다. 내년도 예산안에 유사·중복 R&D 사업이나 계획이 부실한 사업도 상당수 포함됐다며 국회 예산안 심의를 통해 재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오는 31일 예산처가 발간할 '2024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보고서'를 사전 입수한 결과, 예산 전문가들도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R&D 예산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총평했다. 국회 과방위 예산 상정 전체회의는 내달 1일 개최될 예정이다.
예산처는 2003년 7월 국회 예·결산 심의를 지원하는 중립적이고 전문적 연구·분석을 수행하는 재정전문기관이다. 내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보고서Ⅰ·Ⅱ는 총 745페이지 분량이다. 이중 내년도 R&D 예산안에 대해선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예산처는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한 R&D 예산은 상당 부분 면밀한 타당성 검토 없이 감액 편성됐다"면서도 "반면 집행가능성이 낮거나 유사·중복이 우려되는 사업, 사업계획이 부실하거나 예비타당성조사 등 사전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 등 불요불급한 예산이 상당 부분 편성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6월 기획재정부에 내년도 R&D 예산안을 올해 수준으로 제출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R&D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두 달간 재검토 끝에 예산안을 올해 대비 5조2000억원(16.6%) 깎은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 때문에 명확한 근거 없이 R&D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예산처는 "2024년도 예산안에서 보여준 정부의 R&D 예산 합리화는 '국가재정운용계획'과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 등 그간 정부가 수립했던 중장기적 지출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고서에는 "올해 3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에서 의결한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2023~2027)에 따르면 정부는 R&D 투자를 어려운 재정여건과 그간의 투자 확대 추세 등을 고려해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을 유지하며 2023~2027년 동안 17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고 적혔다.
이어 "지난 9월 국회에 제출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선 5년간 R&D 지출을 총 145.7조원으로 하고 있어 R&D 정책 간 정합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정부가 R&D 예산에 대한 중장기·구체적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부 내 R&D 투자 방향에 대한 합일된 목표와 전략이 부재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처는 내년도 세부적인 예산 배분안도 뚜렷한 방향·목표나 명확한 근거·기준이 없다고 했다. 그 근거로 올해 R&D 사업 중 내년 종료되거나 통폐합된 세부사업 총 267개 중 당초 계획과 달리 조기종료된 사업이 16개라고 분석했다. 또 1486개 계속사업 중 813개 사업(54.7%)이 올해 대비 예산이 깎였고, 완성도 높은 기술개발이 추진돼야 하는 단계에서 예산이 대규모 감액된 사례를 들었다.
예산처는 "정부의 집중 투자 대상인 신규 R&D 예산안 편성에선 사업 타당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예타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 사업은 미국 ARPA-H(보건첨단연구계획국)을 벤치마킹한 보건복지부의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고위험 바이오 연구, 미국 보스턴을 모방한 바이오 혁신 생태계 조성 등을 목표하는 R&D로 내년도 예산 삭감분을 일부 활용한다.
보고서에는 "한국형 ARPA-H 프로젝트의 총사업비는 10년간 1조 9314억원임에도 예타가 면제돼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이행 중"이라며 "산업통상자원부의 첨단전략산업초격차(이차전지) 사업은 예타가 진행 중임에도 예산안에 반영돼 예타를 면제함에 따라 사업의 타당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쓰였다.
또 "정부는 내년도 R&D 예산안을 중장기적 시계를 갖고 합리적 기준에 근거해 정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신규 또는 증액사업 역시 면밀한 검토하에 편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합리적인 예산안 편성은 R&D 관련 정책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저하하고 정책 신뢰도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민간의 R&D 투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국회 예산안 심의과정에선 성장잠재력을 제고하고 중장기적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성장동력으로서의 R&D 투자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조기종료 또는 축소된 R&D 사업의 추진 필요성과 적정규모, 신규 R&D 사업의 추진 타당성과 필요성, 시급성 등을 면밀히 살펴 R&D 예산의 합리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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