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XT, 유망주에서 K팝 트렌드 대표하는 그룹으로 우뚝 서다
미국 최대 음악축제에 헤드라이너로 공연하기도
(시사저널=김영대 음악 평론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는 음악 수준의 평준화가 충분히 이뤄진, 그래서 음악적 특색보다는 아이디어나 콘셉트를 내세우며 경쟁이 치열해진 K팝 신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그룹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그들의 음악에 보내는 신뢰가 있다. 다소 배타적인 분위기를 띤 K팝 커뮤니티지만, TXT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K팝에 대해서라면 일반 대중보다는 조금 덜 호의적인 태도를 가진 음악평단의 반응도 아주 다르진 않다. 특히 이들의 커리어에 결정적인 터닝포인트가 됐던 '혼돈의 장: Freeze' 이후 이들은 보이밴드로서는 이례적으로 평단이 지속적으로 주목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보수적인 음악평단도 이례적으로 TXT 주목
TXT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트렌디한 사운드를 적극 표방하면서도, 종종 대중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요소들을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써 평범한 히트곡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통해 이미 그 능력을 입증한 빅히트뮤직 프로듀서들의 음악적 노하우에, 최근에는 라이언 테더와 같은 세계 최정상 작곡가들의 힘이 더해져 세련미를 더했고, 주류와 인디를 가리지 않고 독창적인 아티스트들과 지속적인 협업을 통해 기존 K팝이 갖고 있는 한계를 깨뜨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빅히트뮤직과 TXT의 '근성'이다. 매우 빠르게 변해 예측할 수 없는 음악시장의 트렌드에서 TXT는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그룹 단위의 음악과 서사의 일관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눈에 띄는 단 한 번의 순간보다는 음악의 연속성과 이야기의 정합성에 더 치중해온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실제로 TXT의 음악을 들어보면 K팝 보이밴드로서는 이례적으로 자극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담백하고 미묘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부득이 희생할 수밖에 없는 대중성은 역설적으로 평단과 대중의 음악적인 신뢰로 보상받고 있다.
신작 '이름의 장: Freefall'은 이제 유망주의 단계를 넘어 K팝 트렌드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격상된 TXT가 던지는 자신감 넘치는 선언과 같은 앨범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2023년 TXT가 걸어온 화려한 커리어와 경험이 깔려 있다. 이들은 이미 올해 1월 '이름의 장: Temptation'으로 빌보드 200의 정상에 올랐고, 3월에는 기세를 몰아 미국 최대 음악축제 중 하나인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에서 K그룹으로는 최초로 헤드라이너 공연을 펼쳤다. 미국 보이밴드의 상징과 같은 존재인 조나스 브라더스, 라틴팝 최고의 디바 중 한 명인 아니타와의 협업을 통해 싱글을 발매하는 등 부쩍 높아진 이들의 위상을 증명할 객관적인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앨범은 이들의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떠오른 글로벌 팝 시장, 그중에서도 북미 시장에 대한 전략적 고민과 함께 한층 치열해진 K팝 시장에서의 차별화를 위한 노력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마무리됐다.
앨범은 다소 난해하고 실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Growing Pain》으로 시작된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얼터너티브 메탈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이 곡은 《0X1=LOVESONG(I Know I Love You)》 《Good Boy Gone Bad》로부터 이어지는, TXT의 록에 대한 일관된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곡이다. 타이틀 곡도 아니고 대중적인 히트를 노린 곡은 더더욱 아니지만, 낙원을 떠나 현실로의 '활강'을 통해 성장의 의지를 드러내는 앨범의 서사를 감안하면 가장 중요한 곡이라 할 만하다. 전작들보다는 콘셉트적인 면에서 다소 성긴 모습을 보이는 앨범의 밀도를 높여주는 곡이라는 점에서도 필수적이다.
이어지는 타이틀 곡 《Chasing That Feeling》은 최근 몇 년간 음악시장에서 부쩍 주목받기 시작한 장르인 1980년대풍의 뉴웨이브를 내세우고 있다. 이미 수많은 아티스트가 1980~90년대의 전자음악 사운드를 기반으로 유사한 편곡을 표방해온 만큼 어떤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까 우려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는 기분 좋은 반전이다. 장르를 의식적으로 비틀거나 깜짝 요소를 숨겨놓는 대신 이 장르의 곡이 들려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을 정공법으로 펼쳐낸 것이다. 곡의 전반부는 최근 유행하는 신스팝보다는 조금 더 정통의 뉴웨이브 느낌을 주는 사운드로 구성하고, 곧바로 이어지는 후렴에서는 주저 없이 가장 캐치한 킬러 멜로디가 치고 나간다. 선율의 감각만을 놓고 볼 때 현재 K팝에서 들을 수 있는 절정의 결과물이다.
익숙한 장르 차별화가 아니라 정공법으로 타파
이미 아니타와의 협업으로 발표된 바 있는 《Back for More》의 새 버전 역시 타이틀 곡 못지않은 수작이다. 편곡은 최근 유행하는 익숙한 디스코 리듬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후크의 간결함과 강렬함, 재치 있는 멜로디의 전환과 변주, 곡의 모멘텀을 이끌어가는 편곡의 센스는 여느 미국 팝음악의 그것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미국 팝 최고의 작곡가 중 하나인 라이언 테더의 명성이 허명이 아님을 입증하는 부분이다.
테더와 TXT가 만들어낸 시너지는 조나스 브라더스와 함께 한 《Do It Like That》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생각해 보니 이 곡을 시작으로 《Back for More》 《Chasing That Feeling》으로 이어지는, 올해 TXT가 발표한 이른바 북미 스타일 댄스 음악 3부작은 방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마치 팬데믹 와중에 《Dynamite》와 《Butter》로 세계시장을 접수했던 방탄소년단의 활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좋은 모멘텀이다.
앨범은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고 퀄리티 높은 수록곡들로 채워진다. 평소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내세운 음악들로 잘 알려져 있지만 유독 서정적이고 섬세한 청춘의 감정을 담은 음악들에서 장점을 보여온 TXT이니만큼 관능적인 R&B인 《Dreamer》나 예측하기 힘든 개성 있는 편곡이 인상적인 《물수제비》를 앨범 최고의 순간들로 꼽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화려한 프로듀서 진용을 앞세우지만 멤버 전원이 곡 작업, 특히 가사 작업에 적극 참여하면서 곡의 개인적이고 유기적인 특성을 한층 강화해 주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 앨범은 겉으로는 익숙한 장르들을 내세우고 있음에도 진부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스코, 뉴웨이브, 저지클럽 등의 수많은 그룹이 시도해 그 이름만으로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 시도일 것이다. 장르 그 자체를 차별성으로 내세우자면 더 마이너하거나 인디한 장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정공법을 택했다. 다시 말하면 빅히트뮤직과 TXT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고, 이 의도는 결과적으로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이들은 섣불리 파격을 내세우는 대신 감각과 수준의 차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그것은 이들의 커리어에서 손에 꼽히는 완성도의 앨범으로 귀결됐다. 의심할 바 없이 '혼돈의 장: Freeze' 이후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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