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소생]트렌드 역행하니 '핫'해…스코빌지수 '0' 라면 맛은

김아름 2023. 10. 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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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신제품 '순하군 안성탕면'
스코빌지수 0…고춧가루 안 넣어
맵지 않지만 구수한 풍미 잘 구현
농심 순하군 안성탕면/사진제공=농심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소비의 시대. 뭐부터 만나볼지 고민되시죠.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품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감없는 평가로 소비생활 가이드를 자처합니다. 아직 제품을 만나보기 전이시라면 [슬소생] '추천'을 참고 삼아 '슬기로운 소비생활' 하세요. [편집자]

최근 라면 시장의 트렌드는 누가 뭐라 해도 '매운 라면'이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등장한 2010년대 이후로 라면 시장에는 '매운 맛'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매운 맛을 강조한 라면들은 물론, 그다지 맵지 않던 라면들까지 덩달아 매운 맛이 강화되는 추세다. 

이름에서부터 '매울 신'자를 쓰는 신라면의 변화를 보면 국내 라면 시장의 '맵부심'을 미뤄짐작할 수 있다. 원래 신라면의 스코빌 지수(SHU)는 1300 수준이었지만 2010년대 초 2000대로 리뉴얼을 거친 데 이어 2015년에는 지금의 3400SHU로 한 차례 더 올랐다. 90년대 신라면보다 지금의 신라면이 2배 이상 맵다는 의미다. 

라면 3사의 매운 라면/그래픽=비즈워치

최근엔 7000SHU가 넘는 '신라면 레드'가 한정판으로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농심이 신라면 레드의 정규 제품화를 준비하고 있을 정도다. 불닭볶음면의 기업 삼양식품도 최근 매운 맛을 강조한 봉지라면 브랜드 '맵탱'을 론칭했다. 오뚜기도 기존 매운 라면 브랜드인 열라면의 매운 맛을 강화한 '마열라면'을 내놨다. 대세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심은 안성탕면 출시 40주년을 맞아 '역발상'을 선택했다. 스코빌지수 '0'인 라면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고춧가루나 고추장 등을 넣지 않아 매운 맛이 전혀 없는 순한 맛의 '순하군 안성탕면'이다. 모두가 끝없는 매운 맛을 강조하는 시대에, 전혀 맵지 않은 라면이 통할까. [슬기로운 소비 생활]에서 '순하군 안성탕면'을 맛봤다.

안성탕면은 원래 순했다

사실 안성탕면은 태생부터 '맵지 않은 라면'이다. 신라면과 너구리, 육개장 사발면 등 농심의 다른 대표 라면들이 '얼큰한 맛'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안성탕면은 구수한 된장 베이스에 장터 우거지 장국의 맛을 모티브로 개발한 라면이다. 실제 안성탕면의 스코빌 지수는 600SHU에 불과하다. 농심이 맵지 않은 라면 신제품을 고민할 때 안성탕면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순하군 안성탕면은 닭육수를 더해 감칠맛을 보강했다. 기존 안성탕면의 맛을 이루는 구수한 된장과 소고기 육수에 닭육수를 더해 깊고 진한 국물맛을 낸다는 설명이다. 스프에 포함된 원재료를 보면 기존 안성탕면엔 없는 치킨된장베이스와 치킨엑기스분말, 멸치맛베이스, 해물맛볼 등이 추가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신 매운 맛을 내는 고추후레이크와 매운맛분말 등은 빠졌다. 

농심 순하군 안성탕면/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스코빌 지수가 0이라고 해서 모든 매운 맛 향신료를 넣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늘추출물분말, 후춧가루 등 국물의 맛을 보강하기 위한 향신료들이 첨가돼 있다. 다만 이런 향신료들은 스코빌 지수를 재는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구성 역시 기존 안성탕면처럼 면과 분말스프 2종으로 단촐하다. 건더기스프는 따로 포함돼 있지 않다. 주황색인 기존 제품과 달리 노란색 패키지를 사용해 맵지 않은 이미지를 시각화했다. 

라면이 꼭 매워야 맛있나요

순하군 안성탕면을 직접 끓여 봤다. 오리지널의 맛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 조리시간과 방식을 엄수하고 만두나 계란 등도 전혀 넣지 않은 '순정'으로 맛봤다. 우선 겉보기로는 기존 안성탕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았음에도 국물이 적당히 붉은 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파프리카 가루(칠리풍미분말)를 넣어 국물 색을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기왕이면 겉보기에도 차별화할 수 있도록 된장의 자연스러운 색만 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시식 전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맛은 진한 편이었다. 매운 맛이 없을 뿐이지 베이스가 묵직해 라면을 먹는다는 느낌이 제대로 왔다. 순한 맛이라고 해서 덜 짜거나 밋밋한 맛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매운 맛이 사라진 만큼 짠 맛이 바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농심 순하군 안성탕면/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기존 안성탕면과 칼로리가 동일(525㎉)하고 나트륨 함량도 1790㎎으로 같다. 어디까지나 '맵지 않은' 라면일 뿐 더 건강하거나 몸에 좋은 라면은 아니라는 의미다. 계란 등 짠 맛을 중화시켜 줄 수 있는 재료를 함께 넣어 먹으면 밸런스가 더 좋을 것 같다. 

온 세상이 '매운 라면' 천지지만, 그만큼 맵지 않은 라면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게 '맵찔이'라는 별명을 붙이는 건 부당하다. 매운 맛을 싫어하는 것이 어딘가 부족하거나 틀린 것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부류의 '순한 맛' 라면인 사리곰탕면, 스낵면은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매운 라면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다는 의미다. 순하군 안성탕면은 이런 사람들에게 '단비'가 돼 줄 수 있는 제품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본 리뷰는 기자가 제품을 농심에서 제공받아 시식한 후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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