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맘마미아!’…100만 뮤지컬의 흥행 법칙은?
“레베카 나의 레베카/ 어서 돌아와 여기 맨덜리로/ 레베카~”
댄버스 부인의 폭발적인 고음으로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그칠 줄 모르는 박수와 함성에 공연이 잠시 중단될 정도였다.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레베카’(11월19일까지)의 2막 초반 발코니 장면. 주인공 ‘나’와 댄버스 부인이 작품의 대표 넘버 ‘레베카 액트2’를 부르는 이 대목은 매번 공연을 잠시 멈출 만큼 뜨거운 반응이 쏟아진다 해서 ‘쇼스토퍼’로 불린다.
‘레베카’가 지난 9월17일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국내 공연 뮤지컬 중에선 12번째, 대극장 뮤지컬로는 10번째다. 앞서 2007년 ‘명성황후’, 2009년 ‘캣츠’, 2010년 ‘맘마미아!’, 2013년 ‘오페라의 유령’, 2014년 ‘지킬 앤 하이드’, 2016년 ‘노트르담 드 파리’, 2018년 ‘김종욱 찾기’ ‘시카고’, 2022년 ‘아이다’ ‘빨래’, 2023년 ‘영웅’이 100만 관객 기록을 썼다. 뮤지컬 100만 관객은 영화 1천만 관객과 비견된다. 전국 영화관에서 하루 몇 차례씩 상영하는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한 공연장에서 하루 1~2회만 공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100만 뮤지컬에는 어떤 흥행 법칙이 있을까? 우선 짧게는 6년(‘맘마미아!), 길게는 18년(‘시카고’)에 걸쳐 달성한 기록인 만큼, 장기 공연은 필수다. 이번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레베카’도 초연 이후 10년, 7시즌 만에 이룬 성과다.
이처럼 오랜 기간 꾸준히 관객을 모으려면 귀에 꽂히는 ‘킬링 넘버’와 또 보고 싶은 명장면이 꼭 있어야 한다. ‘레베카’를 제작한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의 김지원 부대표는 “2막 발코니 회전무대 장면만으로도 ‘레베카’를 볼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첫 관람은 물론 재관람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룹 아바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를 제작한 신시컴퍼니의 최승희 실장은 “아바의 ‘댄싱 퀸’처럼 누가 들어도 아는 노래들이 흥행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캣츠’의 ‘메모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유명 넘버는 오디션 프로그램 등 방송으로 전파되면서 더 친숙해지고, 이는 뮤지컬 관람으로 이어진다.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대중적인 이야기의 힘도 뒷받침돼야 한다. ‘오페라의 유령’과 ‘레베카’는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미스터리극 형태이고, ‘맘마미아!’는 누구나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소동극을 다룬다. 통상 뮤지컬 예매 남성 비율은 10%대에 그치는 데 비해, ‘오페라의 유령’과 ‘레베카’는 인터파크(27일 기준) 예매 남성 비율이 각각 34.1%, 26.8%에 이른다. 전국 투어를 돌고 있는 ‘맘마미아!’의 12월 부산 공연 예매 연령 분포를 보면, 40대(30.3%), 30대(26.5%), 20대(25.3%) 순이다. 뮤지컬 주요 관객이 20·30대인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그만큼 전 연령대에서 두루 사랑받는다는 얘기다. ‘맘마미아!’는 초연 이후 15년 만인 2019년 최단 기간 200만 돌파 기록까지 세웠다. 200만을 넘긴 뮤지컬은 ‘캣츠’와 ‘맘마미아!’뿐이다. ‘명성황후’와 ‘영웅’(안중근 의사)은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를 다루며 애국심을 자극한 것이 주효했다.
개선된 공연 관람 인프라도 관객 증가에 한몫했다. 2000년대 들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공연장을 만들면서 뮤지컬 전국 투어가 가능해졌다. 한편 케이티엑스(KTX) 개통으로 지역에서 서울로 와서 공연을 보는 것도 한층 수월해졌다. 그 결과 지역 관객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이태원 블루스퀘어, 신도림 디큐브링크아트센터, 부산 드림씨어터 등 뮤지컬 전용 극장이 잇따라 생기면서 공연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진 점도 100만 뮤지컬 탄생에 기여했다”고 짚었다.
100만 뮤지컬 12편 중 8편이 국외에서 들여온 라이선스 작품이다. 국외 원작에서부터 쌓아온 작품 브랜드가 국내 흥행에도 디딤돌이 됐다. 국내 창작 작품으로는 대극장 뮤지컬 ‘명성황후’와 ‘영웅’, 서울 대학로에서 장기 상연하고 있는 소극장 뮤지컬 ‘김종욱 찾기’와 ‘빨래’ 등 4편이다. 지혜원 교수는 “100만 뮤지컬 목록에 우리 창작 뮤지컬 작품이 더 늘어났으면 한다. 탄탄한 빌드업을 통해 관객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국내 창작 뮤지컬이 더 많아져야 공연 시장도 한층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윤 대통령, 유가족 추모식 대신 교회 찾아 “가장 슬픈 날”
- 이스라엘, ‘2단계 지상전’ 돌입…하마스 지하터널 무력화 시도
- [아침햇발] ‘역시나’로 귀결되는 윤 대통령 첫 ‘셀프 반성’
- “개 식용 금지 집회 3살부터 다녔는데, 더는 안 오게 해주세요”
- 예금 이자 4%, 적금은 13%까지…대출금리는 얼마나 오르려고
- 이선균 혐의 진술은 안 해…경찰, 모발 등 긴급 감정 의뢰
- “욕실에 이 슬리퍼 있다면 환불하세요”…납·카드뮴 기준 초과
- CCTV 없는 사각지대도 ‘인파 관리’ 가능해진다
- ‘영웅이 구워준 토스트’…엄마 구조하고 아이들 돌본 소방관
- 프렌즈 ‘챈들러’ 매슈 페리 사망…“자택 욕조서 발견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