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가세로 돌아선 결핵, 게임체인저는 ‘65세 이상’과 ‘잠복 결핵’ 관리
질병청 “가까운 보건소에서 검진받을 수 있다”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병으로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결핵은 많은 사람에게 잊힌 병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결핵 발병률 1위다. 국내 감염병 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질병임에는 변함이 없다"며 결핵에 대한 위험성과 퇴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65세 이상과 외국인 결핵 환자 늘어나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영양 부족과 밀집 생활환경 등으로 집단면역이 저하돼 결핵이 창궐했다. 결핵 발병률은 꾸준히 상승해 2011년 10만 명당 100.8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해 민간·공공 의료기관이 협력해 결핵관리사업(PPM사업)을 시행한 후부터 결핵 발병률은 낮아지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결핵 환자가 2만383명(10만 명당 39.8명)까지 감소했다. 그럼에도 이는 국제사회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결핵 발병률은 26년째 OECD 회원국 중 1위(2021년 기준 10만 명당 44명)다. OECD 평균(9.7명)의 4배가 넘는다. 2위인 콜롬비아가 그나마 비슷한 수준(41명)이고, 3,4위인 리투아니아(26명)와 멕시코(25명) 외에 대다수 국가는 10명대 이하다. 일본은 10만 명당 11명, 프랑스 7.7명, 영국 6.3명, 미국 2.6명 등이다.
게다가 PPM사업으로 줄어들던 국내 결핵이 12년 만에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올해 1~3분기 신규 결핵 환자는 1만545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발생한 1만5432명을 넘어섰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3분기까지 결핵 환자 신고 건수를 잠정 집계한 결과,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1% 증가했다. 특히 65세 이상의 증가세는 5%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신규 결핵 환자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2001년 약 20%에서 2021년 50%를 넘더니 지난해에는 55.8%에 도달했다. 올해 1~3분기에도 60대 신규 결핵 환자는 3099명으로 지난해 2899명보다 6.9% 증가했다. 70대는 0.1%(3163명→3160명) 감소하는 데 그쳤고, 80세 이상은 4255명으로 지난해(3936명)보다 7.8% 늘어났다.
한국의 결핵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콜롬비아(10만 명당 5명)와 리투아니아(4.6명)에 이어 멕시코와 같은 3위(3.8명)를 기록하고 있다. 결핵은 국내 법정 감염병 중에서도 코로나19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를 내고 있다. 2021년 기준 결핵으로 숨진 환자는 1430명으로 에이즈(112명), 폐렴구균 감염증(36명) 등보다 훨씬 많다. 결핵 사망자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기준 85.6%로 집계됐는데, 이는 최근 1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방역 조치 상황이 종료(마스크 의무 해제 등)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대면 모임에 제약이 있었던 65세 이상의 접촉 빈도가 증가하고, 의료기관의 검사나 진단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갔기 때문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증가한 것도 결핵 재증가의 한 이유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22년 8월 212만 명에서 2023년 8월 243만 명으로 14.6% 증가했다. 이 가운데 외국인 결핵 환자(1~3분기)는 2022년 815명에서 2023년 870명으로 6.7% 늘어났다. 2016년부터 결핵 고위험국(10만 명당 50명 이상 발생) 출신 장기 체류자는 결핵 검진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65세 이상 국민은 거주지 관할 보건소(전국 259개)를 방문해 무료로 결핵 검진을 받을 수 있다. 흉부 X선 검사 후 결핵이 의심되면 확진 검사(객담검사)를 추가로 받는다.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판단한 질병관리청은 올 4분기 동안 집중 홍보하기로 했다. 동네 병·의원, 한의원, 노인시설에 홍보 포스터를 부착해 결핵 검진율을 높이고 결핵 검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연말까지 검진을 받지 않은 65세 이상은 2024년 연 1회 무료 결핵검진을 받으면 된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특히 환절기 호흡기 질환에 취약해 마스크 착용 등 개인 방역과 위생관리를 철저히 해주시길 당부한다. 2주 이상 기침이나 식은땀 등의 증상이 생기면 반드시 검진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잠복 결핵 잡아야 결핵 퇴치한다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결핵 발생 1위, 법정 감염병 사망률 1위(코로나19 제외)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결핵 퇴치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올해 3월 결핵 관리 종합계획(2023~27년)을 발표했다. 1차(2013~17년), 2차(2018~22년)에 이어 세 번째인 이번 계획은 2027년까지 결핵 발병률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10만 명당 20명 이하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결핵 전 주기(예방·진단·치료)에 걸쳐 강화된 결핵 관리 정책을 추진한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노숙인 등에 대해서는 '찾아가는 결핵 검진'을 실시한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잠복 결핵을 관리해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이 나왔다. 민진수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3차 결핵 관리 종합계획 목표인 10만 명당 20명 이하로 발병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정부가 잠복 결핵에 대한 검진과 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복 결핵은 몸에 들어온 결핵균이 활동하지 않고 잠복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면역이 약해지면 활동성 결핵으로 발전한다. 잠복 결핵 중 약 10%는 향후 활동성 결핵으로 진행한다. 특히 고령자와 면역억제제 복용자 등 면역이 낮은 사람이 고위험군이다.
잠복 결핵 환자가 피부반응검사(TST)나 혈액검사(IGRA)를 받으면 양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아직 결핵균이 활동하지 않기 때문에 흉부 X선 검사에서는 정상으로 진단된다. 결핵균이 외부로 배출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지도 않는다. 사실 자신이 잠복 결핵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고, 알더라도 그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잠복 결핵의 90%를 치료해야 결핵 퇴치(10만 명당 10명 이하)가 가능하다. 잠복 결핵을 치료하면 결핵 발병을 83% 예방할 수 있다.
실제로 2차 결핵 관리 종합계획의 목표였던 '결핵 발병률 10만 명당 40명 이하'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활동성 결핵 환자 관리와 함께 광범위한 잠복 결핵 검사와 진료가 뒷받침됐기 때문이었다. 2016년 발표한 '결핵 안심 국가 실행계획'에 따라 잠복 결핵 검진을 고등학교 1학년생과 40세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대상자에게 시행했다. 또 2017년부터는 검진 대상을 의료기관·학교·산후조리원·사회복지시설 관련자 약 180만 명으로 확대한 바 있다.
그러나 한계도 드러났다. 검사를 통해 9만6439명의 잠복 결핵 환자를 발견했다. 그러나 실제로 병원을 방문한 사람은 50.7%에 불과했다. 또 치료를 시작한 비율은 34.7%였고 치료를 완료한 비율은 28.9%인 약 2만7875명에 그쳤다. 민진수 교수는 "활동성 결핵만 치료하면 2050년까지도 결핵을 극복하지 못한다. 잠복 결핵을 찾아내 활동성 결핵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잠복 결핵은 언제든 활동성 결핵으로 발전할 수 있다. 현재 진료 지침상 고위험군(접촉자·면역억제자·노숙인·제소자·의료인)이 검사·치료 대상이지만 이는 전체 잠복 결핵의 20%만 해당한다. 잠복 결핵 검사·치료 대상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주 이상 기침 계속하면 결핵 의심
6개월 이상 매일 약 복용이 가장 중요한 치료
결핵은 결핵균에 감염되는 질병이다. 결핵이 발병하는 부위는 폐·흉막·림프절·척추·뇌·신장·위 등 다양하다. 전체 결핵 중 80%는 폐결핵이다. 결핵 환자 1명은 10명 이상에게 결핵균을 전파한다. 결핵 환자가 말·노래·기침을 할 때 침방울이 튀는데 그 안에 균이 섞여 나온다. 그 균은 한동안 공기 중에 떠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 쉽다. 식기·의류·침구·음식으로는 전파되지 않는다.
결핵만의 특이한 증상은 없다. 객혈(피가 섞인 가래나 침)·호흡곤란·흉통이 생기면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것이다. 일반적인 초기 증상은 가래, 기침, 무력감, 체중 감소 등이다.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감기는 보통 1~2주면 낫는데 기침이나 재채기가 2주 이상 지속되면 결핵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보건소나 동네 의원을 찾으면 된다. 피부반응검사(TST)나 혈액검사(IGRA)로 결핵균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결핵균이 검출되면 흉부 X선 촬영으로 활동성 여부를 진단한다. 요즘은 PCR(유전자증폭) 검사도 활용한다. 만일 과거 결핵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이 X선 검사에서 결핵을 앓았던 흉터를 발견하면 즉시 검사와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향후 결핵 발병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결핵 대부분은 약물 치료로 완치된다. 그러나 약에 강한 내성을 보인다는 점이 결핵균의 특징이다. 따라서 최초 약물 치료가 중요하다. 여러 종류의 약을 매일 정한 시간에 먹어야 한다. 결핵약을 6개월 이상 먹는 것도 내성균 출현을 막기 위해서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의료인이 보는 앞에서 환자가 결핵약을 먹도록 규정한 바 있다.
약을 1개월 정도 먹으면 결핵균 대부분이 죽고 기침과 가래 증상이 호전된다. 그래서 환자는 약 복용을 자의적으로 중단한다. 또 속쓰림이나 발열 등의 부작용이 있다고 마음대로 약을 끊거나 불규칙하게 먹는다. 그러면 결핵 내성균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 결핵은 생후 1개월 이내에 BCG(결핵 예방백신) 접종 외에 예방책이 없다. 접종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발병률이 5분의 1로 감소하고 그 효과는 10년 이상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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