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화장실 몰카범, 여자라고 봐줬다"…방치된 '동성 성희롱'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곽용희 2023. 10. 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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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 동성 괴롭힘에 대해 감수성 떨어져
남성 피해자 향한 2차가해 심각..."남자가 예민" 막말도
피해자들 스스로도 "긴가민가하다"...시기 놓쳐
화장실에 몰카 설치한 여직원 방치...결국 퇴직금 챙겨 퇴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동성인 남자 상사의 성희롱을 신고한 이후) 선임과 부서장들이 볼 때마다 '사내 자식이 무슨 성희롱이냐?'는 말을 합니다"  -남성 직장인 A 
"중요부위를 만지는 성희롱을 당해 신고했더니 '계집애처럼 징징거린다'고 놀리고, 다른 부위를 만지면서 '여긴 돼? 여긴 안 돼?'라고 묻습니다." -남성 직장인 B
"유부녀 직원이 상습적으로 몸을 보여달라고 요구해서 신고했더니 회사측이 '직장 동료끼리 사우나 간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라'고 했습니다" -여성 직장인 C

동성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행해진 '2차 가해' 사례다. 사회 전반적으로 동성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이 크게 낮으며 그로 인해 심각한 2차 가해가 벌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또 남성의 여성 성희롱에는 민감하게 조치하는 기업들이 동성 간 성희롱 문제에는 전반적으로 소극적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별에 따른 사업장의 성희롱 사건 인식 및 대응 수준 분석 연구'에서 이같이 밝혔다. 2020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2년 11개월간 총 17명의 피해자와 목격자에 대한 심층면접(FGI)을 실시한 결과다.

 ○"작긴 작나 봐"…도 넘은 2차 가해

남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면접 대상 중 남성 피해자는 모두 해당 회사를 퇴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에 대한 성희롱 개념이 희박해 2차 가해가 더 노골적이었다는 게 서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하지만 남성의 신고는 대부분 무마됐으며, 가장 적극적인 사업장의 조치조차 '개인적 사과'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미안하다는 말은 대충하면서 '사과했으니까 남자답게 잊어라'고만 합니다"
"일 열심히 하던 피해자가 신고 이후 근무 평가도 낮아지고 중요 업무에서 제외돼 결국 퇴사했습니다.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회사에 다닙니다."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 2차 가해는 더욱 심각했다. 한 성희롱 목격자는 "다른 남직원들이 피해자에게 '너도 느낀 거 아니냐', '차려주는 밥상도 못받아 먹냐'고 놀렸다가 몸싸움이 벌어졌고 다음 날부터 피해자가 출근을 안 했다"라고 증언했다. "여자가 안아주면 '어유 누님 고맙습니다' 해야지 뭘 또 신고하냐"는 식의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성추행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 직원조차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는 남직원에 대해 "(중요 부위가) 작긴 작았나 봐요" "새신랑한테 원래들 그러지 않나"는 식의 부정적 반응을 보인 사례도 보고됐다. 

남성 피해자 스스로의 낮은 감수성도 문제였다. 성별 고정관념 때문에 피해 사실 인지를 애써 거부하는 등 성희롱을 인지하기 전까지 장벽이 높았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주변인들이 더더욱 남성의 성희롱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고 조롱하는 방식으로 2차 가해를 이어갔다.

한 목격자는 "성희롱 당하면 (피해자가) 울컥울컥하긴 하는데, 그게 성희롱이라고 알려줘도 '남잔데 무슨 성희롱'이야 그러고 웃더라"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 대신 '아주 센 불쾌감'이란 말을 쓰면 (남자들도)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성 성희롱 피해자 중 일부는 상습 조롱하던 2차 가해자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거나, 분신자살하고 싶다는 충동을 드러내는 등 강한 치욕감으로 인한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이기도 했다. 

 ○화장실에 몰카 설치한 여성...회사 방치에 퇴직금 챙겨 유유 퇴사


여성이 남자로부터 받은 성희롱 사건에는 철저하게 대응하는 회사가 동성 간 사건에는 비상식적 행동을 보이는 사례도 있었다. 동성 간 성희롱 사건은 장난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란 게 서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아예 신고 접수를 받지 않거나 "여자끼리도 성추행이라고 하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목격됐다.

심지어 여성이 여성을 상대로 화장실 몰카를 설치했음에도 여성이 가해자라는 이유로 사건이 방치된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의 목격자는 "남자가 했다면 난리 났겠죠. 여성이 했다고 긴가민가하더라고요. 회사 측은 '여자들이 어릴 때 화장실도 같이 가고 그러지 않냐?'는 식"이라고 증언했다. 결국 가해자는 별다른 징계 없이 퇴직금까지 챙겨 퇴사했다.

상습적으로 임신한 여성 동료의 배와 엉덩이에 손을 댄 여직원을 신고하자 "이모뻘이 좀 만진 건데 뭘 또 그러냐?"는 2차 가해 사례도 있었다. 여성 피해자 조차 동성 가해자에 대해선 범죄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증언도 있었다.

서유정 연구위원은 "동성 괴롭힘에 대한 사측의 부적절한 조치는 가해자가 반성 없이 가해 행위를 반복하거나, 심지어 피해자 행세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며 "사건 신고 접수부터 처리까지 (일반 성희롱 사건의) 절차를 준수해야 하며 단순 징계로 끝낼 게 아니라 가해자가 행위가 잘못됐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과거엔 동성 간 문제 없다고 여겨지던 신체접촉도 성희롱 등 법률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며 "현행법상 성별은 가해자 판단 기준이 되지 않는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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