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마일리지 쌓였는데…"쓰기 힘들어" 공무원들, 무슨 일? [관가 포커스]
기획재정부 사무관 A씨는 올 초 미국 워싱턴으로 공무출장을 다녀왔다. 국적기인 대한항공으로 출장을 다녀와 1만마일가량의 마일리지를 쌓았다. 출장이 잦은 부서여서 A씨가 입직 후 공무출장을 통해 쌓은 마일리지는 10만마일에 육박한다.
하지만 공무원 지침상 공무출장으로 쌓은 마일리지여서 개인적으로는 쓸 수 없다. 문제는 공무상으로도 이 마일리지를 활용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A씨는 “출장을 앞두고 마일리지를 활용한 보너스 좌석을 구입하려고 해도 표를 구할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버려지는 수백억원 국민 세금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및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매년 공무출장으로 적립한 항공 마일리지가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29일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공무원들의 마일리지 사적 사용이 금지된 2006년부터 적립된 공무항공 마일리지는 수십억 마일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사처는 추산만 할 뿐이다. 통상 마일리지당 가격이 20원으로 환산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가치는 수백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소관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조폐공사, 한국원산지정보원, 한국투자공사, 한국재정정보원 등 5개 공공기관이 보유한 마일리지만 5392만 마일에 달한다. 외교부 등 해외 출장이 잦은 부처는 누적된 마일리지가 수억 마일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보수 등의 업무지침에 따르면 공무출장으로 쌓은 마일리지는 재직 중 개인적으로 쓸 수 없다. 문제는 공무상으로도 이 마일리지를 활용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마일리지로 구매하는 ‘보너스 항공권’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보너스 항공권은 전체 항공권의 5%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사들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정확한 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보너스 항공권은 중국·일본 노선은 최소 3만 마일(비수기 이코노미석), 미주·유럽은 최소 7만 마일 이상 적립 시점부터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일리지 소진을 어렵게 하고 있다. 마일리지가 개인별로 분산 적립되다 보니 공무원 인당 보유량의 90% 이상이 3만 마일에 미달한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더욱이 마일리지는 생성된 지 10년 후 소멸한다.
몇 달 전 항공권을 먼저 구입한 후 일정을 짜는 여행객들과 달리 통상적인 공무출장은 날짜가 미리 정해져 있다. 이렇다 보니 출발·도착 날짜에 정확히 맞춰 보너스 좌석을 구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공무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보너스 좌석을 판매하는 날짜에 맞춰 출장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각 부처마다 공무상 특별한 예외 사항이 없는 경우 출장 일정을 최소화하라고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직 중 마일리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공무원들은 퇴직하면서 적립분을 개인 몫으로 고스란히 챙겨가고 있다. 퇴직하는 공무원에게 적립된 마일리지를 반납하도록 강제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올해 9월까지 국토부 퇴직 공무원 870명의 미반납 마일리지는 1212만8650마일이다. 한국~미주 일반석(비수기 대한항공 기준)을 173회 이상 왕복할 수 있는 규모다. 다만 인당 평균으로 보면 국제선 최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1만3940마일에 불과하다.
○마일리지 좌석에 인색한 항공사
정부는 세금 낭비 방지 차원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공무출장 마일리지를 개인별이 아닌, 기관별로 통합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꾸준히 요청해왔다. 하지만 항공사들은 마일리지 제도는 마케팅 수단일 뿐 제3자 양도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공무항공마일리지에 대해서만 기관별 통합 사용을 허용하면 민간 기업이나 단체뿐 아니라 개인들마저 비슷한 요구를 하는 등 파장이 우려된다”며 “해외 항공사에서도 이렇게 예외를 두는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14년부터 공무출장 마일리지와 개인적으로 적립한 마일리지를 통합·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시행 중이다. 국외 출장 시 기존에 적립한 마일리지가 부족한 경우 개인적으로 적립한 마일리지를 정부가 구매(항공운임 지급)해 공무출장 마일리지와 합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일리지를 활용한 보너스 좌석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 보너스 좌석 증편, 현금과 마일리지 복합결제 사용 비중 확대 등 마일리지 소진 방안을 시행할 것을 항공사에 권고했지만 별다른 개선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대한항공 자료에 따르면 올 2분기 전체 수송(RPK) 대비 보너스 수송(BPK) 비율은 12.0%로 1분기(12.7%)보다 0.7%포인트 낮아졌다. 전체 유상승객 수송거리 대비 마일리지 탑승거리로, 보너스 좌석 공급현황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분기(7.4%)에 비해선 높아졌지만 2021년(16.0)과 2022년(12.4%)에 비해선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아시아나항공은 이 비율이 올 2분기 6.7%에 그쳤다. 그만큼 이용객들이 마일리지로 구매할 수 있는 좌석을 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공무원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보너스 좌석을 구하기 어렵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 비율은 전체 거리 대비 마일리지 탑승 거리로, 보너스 좌석 공급 비율로 볼 수 없다”며 “정부와의 협의에 따라 보너스 좌석 공급을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보너스 좌석 공급 현황은 영업비밀이라는 점을 내세워 정부와 국회 요구에도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고육책으로 항공사들이 판매하는 물품을 마일리지로 구입해 저소득층에 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항공사들이 판매하는 물품이 텀블러, 여행담요, 인형 등에 불과해 이마저도 여의찮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두 국적항공사 통합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국내 최대 항공사로서의 인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경영활동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지속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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