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팍팍해’ 조용한 부업에 빠진 직장인들
전문가들 “저출산·고령화로 부업 허용한 일본 사례 주목”
(시사저널=황건강 중앙SUNDAY 기자)
한국갤럽이 발표한 10월 3주 차(17~19일) 정례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0%로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주보다 3%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반면 부정평가는 61%로 3%포인트 올랐다. 여당에는 비상이 걸렸고, 대통령실도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부정평가 이유에서 '경제·민생·물가'(17%)가 '독단적·일방적'(10%), '소통 미흡'(9%)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점이 눈에 띈다.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점으로 항상 지적돼온 독선과 불통보다 경제 문제가 더 심각한 문제임이 드러났다. 민생고에 내몰린 수도권 청장년과 중도층에서 민심이 이탈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실제 고금리와 고물가 장기화로 은행 이자와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동시에 증가한 직장인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당장 식비부터 줄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외식은 최소화했다. 심지어 동료 직원들과 외부에서 먹던 점심까지 구내식당이나 편의점 간편도시락으로 대체했다.
'부업 전선'에도 뛰어들었다. 통계청이 집계한 부업 근로자 수는 2020년 44만7000명에서 지난해 54만6000명으로 2년 만에 10만 명가량 늘어났다. 해당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다. 지금은 부업을 하지 않더라도 이전에 한 번이라도 해본 직장인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8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열 명 가운데 아홉 명(89%)은 본업과 함께 부업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물가 상승과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살람살이가 팍팍해지자 부업을 통한 추가 소득을 찾아나선 직장인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직장인 89% "본업과 함께 부업 경험"
모바일과 인터넷 플랫폼이 발전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부업이 가능해진 것도 부업 열풍에 한몫하고 있다. 회사에 알리지 않고도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업. 이른바 '조용한 부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10월17일 서울시 중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홀로 점심을 먹던 직장인 김아무개씨(38)도 디지털 부업에 열중이다. 김씨가 들고 있던 태블릿PC 화면에 나타난 건 블로그 방문자 수 통계. 김씨가 하고 있는 부업은 '블로그 운영 대행'인 셈이다. 김씨는 "건당 사례를 받고 블로그에 올라갈 콘텐츠를 대신 작성해 주다가 아예 운영을 맡아 달라는 요청에 이 일을 시작했다"며 "큰돈 버는 일은 아니지만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조용히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겸 해외구매대행 사업자인 한아무개씨(41)도 최근 조용히 추가 수익을 올리는 재미에 빠졌다. 국내에는 없는 상품을 대신 구해 주는 '해외구매대행' 사업에서 수익이 나기 시작한 덕분이다. 출근길에 스마트폰을 활용해 상품을 검색하고 온라인마켓에 등록한 다음, 퇴근 후 쌓인 주문을 처리하는 식이다. 자신이 본업에 열중하는 사이에도 온라인에선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한씨는 "본업에 열중하는 사이에도 온라인에선 매출이 발생하는 게 이 부업의 매력"이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상품 검색, 번역 프로그램도 많아 본업에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한씨의 말처럼 인공지능(AI)의 발전도 부업을 하는 직장인들에게 단비로 여겨진다. 본업과 부업을 넘나드는 'N잡러'(복수의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단순반복 작업 시간을 줄여줄 뿐 아니라 일부 창조적인 일도 돕는다. 중견기업 재무팀에 근무 중인 직장인 박아무개씨(41)는 브랜드 네이밍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의 이름을 지어주는 부업에 인공지능을 활용 중이다. 박씨는 "채택돼야 수익이 발생하는 공모전형 부업의 경우 인공지능을 활용해 초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부업에 관심이 많아진 만큼 이를 제재하는 곳도 늘어났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의 경우 사전 허가가 필수적이다. 최근 겸직 금지 규정 위반으로 징계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유튜버 김재혁씨(40)가 대표적인 사례다. 과학 유튜버 궤도로 유명한 김씨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겸직 금지 규정을 어기고 유튜버 활동을 한 탓에 징계 대상에 올랐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25조에선 공무원의 영리업무를 금지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사직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민간기업도 마찬가지다. 블로그 운영이나 작명 부업에 나선 김씨와 박씨처럼 회사에서 허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 기업은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 별도 약정서 등을 통해 겸직을 제한하는 게 일반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근로계약서에 경쟁 금지 조항이나 품위 유지 조항이 붙어있어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부동산 임대업 정도"라며 "직원이 창작한 글이나 그림, 영상 등 콘텐츠가 구설에 오르면 회사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해 웬만한 건 금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N잡러'들 사이에선 회사에 알리지 않고 '조용한 부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가령 부업과 본업의 소득을 합쳐 월 590만원이 넘으면 안 된다는 식의 팁이 공유되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준소득월액 상한선인 이 금액을 넘어서면 국민연금공단에선 소득 비율대로 국민연금을 나눠 납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전달받은 회사 측에선 직원의 부업 여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제도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부업을 무조건 금지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고용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제도도 변해야 한다. 평생직장 개념이 옅어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본업·부업 구분에 묶이기보단 노동시간과 사회보험 적용 기준, 산업재해 책임, 조세 제도 개편 등 다양한 제도 변화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문정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유사한 경제활동에 대해 자격 유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담해야 하는 사회보험료에 차이가 난다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노동시장 변화를 포용하기 위해 제도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부업을 경계하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적극적으로 부업을 장려하는 일본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노동인구 부족에 직면한 일본 정부는 2018년 부업·겸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어 2019년엔 기업 취업규칙 기본지침에서 부업·겸업 금지 항목을 삭제했고, 2022년엔 기업들에 부업·겸업 허용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그러자 부업을 허용하는 민간기업 수가 급증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에 따르면 부업 허용 기업 비율은 2018년 30%에서 지난해 53%로 높아졌다.
직원들의 부업을 장려하는 기업도 부지기수다. 미쓰이스미토모해상보험에선 과장으로 승진하려면 부업이나 자회사 파견 등 다른 일을 해본 경험이 필수적이다. 2020년부터 부업을 허용한 일본 생활용품 제조기업 라이온의 고이케 요코 인사담당 임원은 "사회가 변하는데 대기업 직원들은 같은 가치관으로 일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업을 허가해 생기는 위험보다 외부 변화를 모르는 데서 오는 위험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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