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 쏟아붓는 미국…얼마나 큰 공포를 원하는가
미국의 위험한 핵전략
중·러 ‘2개의 핵 경쟁자’ 직면
바이든, ‘반격용 핵’ 정책 폐기
핵무기 늘리고 핵전력 현대화
군비 경쟁에 불…위태로운 평화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해온 힘이 군사력에서 나왔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군사력은 핵무기에 기초해왔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핵무기의 발달과 핵전략의 진화는 미국을 주인공으로 한 서사다. 무섭고 어렵게 보이는 핵전략도 그 고갱이는 사실 허망할 정도로 쉬운 상식이다. 공포감. 그것이 설명의 8할을 차지한다. 거기에서 억제이론, 제한적 핵전쟁론, 미사일방어(MD), 핵군축, 반핵운동 등 나올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나왔고 신규 핵무장을 제외한 대부분을 미국이 주도했다.
미국의 역대 행정부가 핵전략 문서들을 발표한 이유는 핵전쟁의 위험성과 공포를 줄이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지난 1년간 적어도 5개의 관련 공식문서를 공개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국방부는 4년 주기의 국가방위전략(NDS)을 핵태세검토(NPR) 및 미사일방어검토(MDR)와 함께 공개했다. 올해 2월 국가정보국(DNI)은 핵위협이 포함된 연례위협평가서 공개본을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국방부는 9년 만에 ‘2023 대량파괴무기(WMD) 대응전략’을 내놓았고, 이번달에는 하원의원 14명으로 구성된 전략태세위원회의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지난 19일 국방부는 중국이 약 5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포함한 ‘중국에 관한 군사와 안보 전개 상황’이라는 연례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미, 화학생물무기 보복 핵공격 암시
전략기획은 일반적으로 먼저 현재와 미래의 위협을 평가해 그에 대응할 목표·수단·방법을 찾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무기·부대·병력에 대한 소요를 도출한 뒤 최종적으로 예산에 반영하는 절차로 이루어진다. 최근 공개된 미국의 핵전략 문서들은 이와 같은 절차마다 적어도 탈냉전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까지의 기조와는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큰 변화는 중국이 러시아와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핵을 보유한 2개의 강력한 경쟁자와 처음으로 마주한 상황’이라는 인식이다. 중국의 현 핵탄두 보유량도 기존 410개(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지난 1월 추정)에서 100개 정도 증가한 것으로 재평가했고, 앞으로 2030년까지 1천기 정도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이 러시아와의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에 따라 배치된 핵무기 수를 1550기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수년 뒤엔 중국이 단독으로 미국과 큰 차이 없는 ‘작전상태’의 핵전력을 보유하게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핵확산금지조약(NPT) 밖의 핵보유국 중 유일하게 미국 본토를 타격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북한의 핵위협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핵전략의 목표는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핵전쟁의 억제다. 이 불변의 보편적 목표 외에도 핵무기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가도 목표가 될 수 있다. 중국은 핵무장과 동시에 ‘핵 선제사용 포기’(No First Use)를 선언했지만 미국과 러시아는 그러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내비쳤고 미국은 적의 화학생물무기 사용이나 사이버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암시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핵무기를 오직 적대국의 핵공격 억제나 반격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는 ‘단일 목적 정책’을 폐기하고 적을 억제하기 위해 핵을 포함한 군사력과 외교력, 강력한 동맹을 결합하는 ‘통합억제’를 천명했다. 여기서 억제는 적의 핵공격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핵억제의 대상이 ‘2+α(북한)’의 적대적 핵보유국이 된데다가 통합억제를 구현하기로 했으니 미국의 대응전략은 변화가 불가피하며 전략문서들에 그 방향이 적시됐다. 우선 핵무기를 양과 질 두 측면에서 강화하는 것이다. 중국의 핵무력이 증강되면 핵무기 수를 제한하는 신전략무기감축조약은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질적으로도 수십년 된 구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신형으로 대체하고 차세대 전략폭격기를 도입함으로써 이른바 ‘3대 핵전력’을 현대화할 것이다. 대략 2030년대 중반 정도까지 이러한 사업들을 완료할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뿐 아니라 재래식 첨단무기와 신개념 무기체계에 대한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미사일방어 체계는 지·해·공·우주·사이버영역까지 아우르는 탐지-추적-요격의 중층적 연동 체계로 구성하고 이를 즉각적인 정밀 타격 체계로 연계하는 ‘전쟁망’(war net)을 고도화한다. 빅데이터와 초고속 연산을 결합한 군사용 인공지능(AI)은 지휘관의 판단을 ‘지휘’하게 되고 그에 연결되어 24시간 지칠 줄 모르고 움직이는 무인체계가 방어와 공격에 가담한다. 요컨대 미국의 군사 패권은 철저히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사실상 완벽한 방어’와 ‘필요한 만큼의 공격’ 능력을 동시에 갖춤으로써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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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학자들 “현재 핵전력으로도 충분”
미국의 핵전략은 오래된 두가지 문제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하나는 치솟는 국방비다. 2024회계연도 미국 국방예산(안)은 총 8420억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다. 여기에는 공중 전력 611억달러, 해군 481억달러, 엠디 관련 631억달러 등 핵전략과 비교적 관련이 큰 부분이 1700억달러를 넘는다.(참고로 개도국을 지원하기 위하여 2013년에 출범한 ‘녹색기후기금’의 2020~23년 세계 총 출연 금액이 135억달러 수준이다.)
두번째 문제는 무기 수출과 군비 경쟁으로 야기되는 평화의 파괴와 전략적 불안정이다. 미국은 대상 국가와 집단을 가리지 않는 부동의 재래식 무기 수출 1위 국가다. 핵군비 경쟁은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러시아·북한의 ‘반작용’으로 가속될 것임이 명백하다. 미국이 몇 나라를 대상으로 핵군비를 증강하든 대상국들은 미국을 일대일 위협으로 느낄 것이다.
찰스 글레이저 등 미국 학자 3명이 최근 ‘포린어페어스’ 공동기고를 통해 “미국의 핵군비는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억제할 수 있다”며 더 이상의 미사일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14척의 미 해군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에 각각 20여기의 탄도미사일이 무장돼 있고 각 미사일에는 8개의 핵탄두가 장착돼 있으며 각 탄두는 수백㏏의 위력을 갖고 있으므로 여기에 400여기의 아이시비엠과 60여기의 전략폭격기까지 더하면 ‘충분 이상’이라는 것이다.
세계가 갑자기 전쟁의 덫으로 빨려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원한과 증오와 공포가 하늘을 찌를 듯하지만 그 근원의 한 축인 미국은 휴전과 평화를 위한 책무에 소극적이다. 한반도의 안보 역시 북한 핵을 만악의 근원으로 보고 북한 정권 종말론과 북한 비핵화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북핵환원론’이라는 덫에 걸려 꼼짝 못하는 상황이다. 진정 이것도 ‘공포심’ 때문인가. 어떤 국가들과 세력의 탐욕 때문인가. 아니면 덫을 풀어줄 평화라는 열쇠를 손에 쥐고서도 쓸 줄 모르는 어리석음과 비겁함 때문인가.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 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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