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 중 '오체투지'로 쓴 시집 남기고…이정모 시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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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치열하고 뜨겁게 시를 썼지만, 60대 이후에야 시집 4권을 남긴 시인 이정모씨가 27일 오후 10시께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9일 전했다.
의식이 혼미해진 고인을 대신해 시집을 마무리한 손음 시인은 "항암치료를 하느라 화장실에 기어가면서도 시를 쓰신 분이었다"며 "이분을 보노라면 '누가 함부로 시집을 내는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치열하고 뜨겁게 시를 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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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독자에게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오체투지였다. 좀 더 다른, 나만의 시로 가는 길에는 나귀도 마방도 없었다"(시집 '백 년의 내간체' 작가의 말 중)
평생 치열하고 뜨겁게 시를 썼지만, 60대 이후에야 시집 4권을 남긴 시인 이정모씨가 27일 오후 10시께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9일 전했다. 향년 74세.
1949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고인은 부산상고 재학 중인 1960년대 말 '연세춘추'의 전국 고교생 문예작품 현상공모에서 장원을 했고, 부산 시내 고교 연합 문학동아리를 만들어 이끄는 등 일찌감치 문재(文才)를 발휘했다. 생업 때문에 시인의 꿈을 접어둔 채 부산은행에 다녔고, 50대에는 개인사업을 했다. 그래도 시작(詩作)을 멈춘 적은 없었다. 2007년 월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늦깎이 등단했다. 부산작가회의, 부산시인협회, 시울림 시낭송회, 윤동주선양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2010년에 나온 첫 시집 '제 몸이 통로다'에 시를 향한 갈망을 담았다.
'이미 시(詩)에게 관통 당한 한 세월/그 힘으로 퍼득이던 내 모습이/왠지 낯설지가 않다'('대목장 신씨' 중)
'논에 뿌리면 수천의 목숨이 될 쌀알을/생각도 없이 속에 쓸어 넣으면서/생명처럼 풋풋한 시 한 줄 못 쓰는 건/염치없는 짓이다'('염치' 중)
국제신문은 첫 시집을 두고 "시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과 태도 자체가 시가 됐다"고 썼다. 김경복 문학평론가는 "시마(詩魔)에 붙들렸다"고 표현했다.
이런 자세는 '기억의 귀'(2014), '허공의 신발'(2018)을 지나 올해 나온 마지막 시집 '백 년의 내간체'로 이어졌다. 간암이 폐로 전이된 상태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쓴 시를 담았다. 추천사를 쓴 성윤석 시인은 '백 년의 내간체'가 "시간의 시집"이라며 "한 일생이 시간의 언어를 발명하고 그 내력을 좇아 돌에 새긴 듯 쓴 시집"이라고 했다.
의식이 혼미해진 고인을 대신해 시집을 마무리한 손음 시인은 "항암치료를 하느라 화장실에 기어가면서도 시를 쓰신 분이었다"며 "이분을 보노라면 '누가 함부로 시집을 내는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치열하고 뜨겁게 시를 대했다"고 말했다. 고인이 시집 '작가의 말'에 쓴 '오체투지'는 그저 비유가 아니었던 셈.
유족은 부인 염현숙씨와 사이에 1남1녀로 이은빈·이규호씨와 사위 황기원씨, 며느리 남지원씨 등이 있다. 마지막 시집 '백 년의 내간체'를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고인을 위해 29일 오후 4시 빈소가 차려진 부산 좋은강안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발인 30일 오전 6시, 장지 양산 천주교하늘공원. ☎ 051-610-9672
chungwon@yna.co.kr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카톡 okjebo, 이메일 jebo@yna.co.kr(확인용 유족 연락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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