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KBL 파워형 외인 역사, 삼성 코번이 다시 쓸까?
KBL 외국인선수 역사를 논할 때 이른바 덩치파들도 빼놓을 수 없다. 활동반경도 좁고 다재다능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체격과 힘을 앞세워 골밑에서 경쟁력을 발휘했던 유형의 선수들이다. 장단점이 확실했던지라 상대 팀에서 대응하기 용이했고 실제로 한계에 부딪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파워라는 무기가 워낙 압도적인 일부 선수들은 알고도 막기 힘들었다.
최근에는 스페이싱, 3점슛 농구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이같은 유형의 선수들은 더욱 설자리가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외국인선수들은 물론이거니와 예전같으면 백업 빅맨으로 쏠쏠한 힘 좋은 토종 자원들도 슈팅, 기동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출장기회를 받기 어려워졌다. 그런 와중에 올 시즌 KBL에서 클래식한 파워형 빅맨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는 선수가 있으니 다름아닌 ’자메이칸 킹콩‘으로 불리는 서울 삼성 코피 코번(24‧210cm)이 그 주인공이다.
코번의 색깔은 분명 최근 트랜드와는 많이 다르다. 어린 시절 육상과 축구를 했던 관계로 체중(150㎏) 대비 빠르다고는 하지만 거대한 사이즈, 플레이 스타일 등을 감안했을 때 활동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다. 자칫 상대의 트랜지션에 먹잇감이 되기 쉽다. 쉴새없이 뛰는 농구를 통해 코번의 혼을 쏙 빼놓은 KCC전이 대표적이다. 그렴에도 불구하고 올시즌 삼성의 외국인 농사는 성공작이 될 것으로 보는 예상이 많다.
삼성은 유력한 하위권 후보중 하나다. 이런저런 색깔을 따지기에 앞서 전력 자체가 약하다. 노장들이 팀의 주축이며 높은 순위로 뽑은 기대주들은 아직 성장 중이다. 때문에 우승을 노리거나 그럴 상황은 아니다. 최대한 매경기 집중하면서 젊은 선수들에게 이기는 경험을 쌓게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게 맞다.
그런 점에서 코번은 좋은 카드다. 이런저런 약점도 많지만 파워를 앞세운 포스트 장악력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골밑에서는 상대 외국인빅맨도 일대일로 감당하기가 버거워 수시로 더블팀이 들어오는 모습이다. 그로인해 국내 선수들에게도 찬스가 많이 나고 있는데 코번은 거기에 맞춰 패스도 제 타이밍에서 잘 빼준다는 평가다.
개막 첫 경기에서 18득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예열을 하더니 두번째 경기였던 소노전에서는 33득점, 14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펄펄 날았다. 골밑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거기서 생긴 파생 효과로 외곽과 컷인 플레이 등이 살아나는 등 코번으로 인해 삼성은 기본적인 힘싸움에서 상대와 대등하게 가는게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코번으로 인해 그간 KBL에서 뛰었던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도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로렌조 홀(50‧200cm)은 1999년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부동의 최대어로 불렸다. 언더사이즈 빅맨 조니 맥도웰의 맹활약으로 인해 많은 관계자들은 KBL무대서는 어지간한 기술보다는 힘이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려한 맛은 덜하겠지만 아예 급이 다른 수준으로 파워가 세면 골밑 장악, 우겨넣기 등을 통해 좀 더 팀 승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트라이아웃에서 보여준 홀의 파괴력은 그런 맥도웰의 센터 버전이었다. 물론 당시 나산을 인수한 골드뱅크는 전체 1순위 지명권으로 백인 포워드 에릭 이버츠(49‧198cm)를 지명했지만 이는 해당 선수와의 이런저런 사연이 포함된 이유가 컸다. 순수하게 선수 자체만을 놓고 보면 누가봐도 1순위는 홀이었다.
홀은 당시 기준으로 완전체 파워 센터였다. 근육질 큰 체격에 강한 힘을 가졌으면서도 기동성도 준수했으며 탄력도 좋았다. 대부분의 파워형 외국인빅맨이 그렇듯 공격옵션이 단순하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이는 다른 팀 빅맨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당시 최강팀은 신선우 감독이 이끌던 대전 현대(현 KCC)였다.
이조주트리오(이상민, 조성원, 추승균)에 조니 맥도웰, 재키 존스로 이어지는 막강한 베스트5를 앞세워 이전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부산 기아를 손쉽게 제압한 바 있다. 하지만 신감독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당시 NBA에서는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이상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트윈타워‘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는데 신감독은 여기에 꽂혔다.
이미 충분히 최강팀인데도 KBL판 트윈타워를 만들어보고 싶었고 우승 주역인 존스를 SK에서 지명한 홀과 맞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결과는 실패였다. 홀과 맥도웰의 파워 콤비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할 만큼 막강하기 그지 없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SK 황성인, 로데릭 하니발, 조상현, 재키 존스, 서장훈 라인업의 밸런스에 고배를 마시고 만다. 홀은 충분히 강한 선수였지만 상대팀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부분이 패책이었다.
부산 기아가 우승의 주역 클리프 리드를 포기하고 새로운 전력으로 데려온 토시로 저머니(48·202cm)는 골밑에서 잡으면 한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포스트 인근에서는 확실한 위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완벽한 찬스가 아니면 야투성공률이 현격하게 떨어졌다. 기름손 기질도 농후했으며 조금만 골밑에서 거리가 떨어지면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홀의 다운그레이드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주 나래가 제이슨 윌리포드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데릭 존슨(52‧205.4cm) 또한 대형 빅맨으로 눈길을 끌었다. 체격도 듬직했고 외모 또한 상남자스러웠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가지고 있는 파워툴에 비해 존재감이 덜하다는 혹평도 적지 않았다. 두세명 사이를 뚫고 들어가 슬램덩크를 터트릴 만큼 하이라이트 장면도 많이 만들어냈지만 그뿐이었다.
저머니와 비교해 기술적으로는 분명 나았다. 하지만 요새 표현으로 하면 에너지레벨이 낮았다. 어슬렁 어슬렁 이른바 병장농구를 하는지라 빛좋은 개살구 느낌이 강했다. 안 그럴 것 같으면서도 악동 기질 또한 상당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든든한 큰형같이 굴다가도 심기가 불편하다 싶으면 경기중에도 벤치로 들어가 버리는 등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한번 그를 경험한 지도자들은 다시 같이가기를 선호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얼 아이크(44‧201.9㎝)같은 경우 골밑에서의 몸싸움 및 커다란 몸으로 걸어주는 든든한 스크린이 위력적이었다. SK 빅스 시절 조니 맥도웰과의 파워 콤비는 그야말로 철문같은 느낌을 줬는데 거기에 더해 외곽에서 나오는 문경은의 외곽슛까지…, 단순하지만 강했던 조합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빅스에서 뛰었던 조성훈(50‧185cm)은 아이크에 대해 “크고 힘이 센 것만으로도 상대편에게는 두려움을, 아군에게는 든든함을 주던 선수였다. 다만 워낙 기본기가 부족하고 기술적으로 단순하다 보니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았다. 오죽하면 당시 감독님께서 이것은 하지 말고 이것만 해 그런 식으로 플레이를 찍어주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파워형 외국인선수하면 가장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선수는 단연 '원조 킹콩' 나이젤 딕슨(43‧201.7cm)일 것이다. 딕슨과 이쪽 계열 최고를 다툴 홀같은 경우 한 시즌 밖에 뛰지 못해 기억하는 이들이 의의로 많지 않다. 반면 딕슨은 여러 팀을 오가며 활약했고 한중 올스타전 당시 KBL대표로 참가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기억이 강렬하다.
한중 올스타전 당시 중국의 장대숲 사이를 힘으로 밀고 들어가 강렬한 투핸드 슬랭덩크를 찍어버린 장면은 지금까지도 농구팬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역대 국내 최장신 센터 하승진(38‧221.6cm) 조차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어지간해서는 힘에 밀려본 적이 없는데 몸을 한번 부딪히고 나니까 그냥 벽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딕슨의 위력을 설명한 바 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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