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의심 300건에 결함 0건…국과수 감정 신뢰도 ‘흔들’

이슬기 2023. 10. 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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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강릉에서 12살 이도현 군이 숨진 급발진 의심 사고. 경찰은 당시 운전을 했던 도현이 할머니에게 혐의가 없다며 최근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이례적으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국과수 "엑셀 100% 밟았다"...경찰 "그렇게 보기엔 한계"

국과수는 감정 결과에서 차량 사고기록장치(EDR)에 저장된 마지막 5초의 기록이 가속 페달을 100% 모두 밟은 것으로 저장되어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 같은 데이터 감식 결과가 차량의 기계적 오류가 없었다는 결과로 이어지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엔진을 구동한 결과가 아니어서 감정의 한계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경찰 결론이 이렇게 나오면서, 도현이 사건의 국과수 감정 결과는 민사재판에서도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생겼습니다.

■'변속기 조작' 관련 분석도 법원 감정인 소견과 달라

차량이 급가속하기 시작할 당시 모닝 승용차를 추돌한 상황을 두고 국과수는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굉음 발생 직전에 주행(D)→중립(N), 추돌 직전 중립(N)→주행(D)으로 조작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선정한 전문감정인의 음향 감정 결과에서는 국과수의 결론과는 다른 분석이 나왔습니다.

법원 감정인은 사고차량의 블랙박스에 녹음된 음향에서 추돌 전에 변속레버를 주행(D)에서 중립(N)으로, 또 중립(N)에서 주행(D)으로 변경하는 소리가 들리는지 같은 연식의 동일 차종에서 변속할 때 나는 소리와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감정인은 "사고 당시 상황을 일부 재연한 조건에서 변속레버를 반복 조작하며 채취한 음향 데이터와 사고 차량의 음향 정보는 동일하지 않다"는 감정 결과를 도출하고 이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운전자가 추돌 사고 직전에 기어를 바꿔 가속페달을 밟았을 것'이라는 국과수 감정 결과와 상반되는 내용입니다.


■신뢰성 의심받는 국과수 감정 결과.. 결함 인정 '0건'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통해 급발진 의심 증거들은 늘고 있지만, 국과수가 차량 결함을 인정한 사례는 전혀 없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선 국과수 감정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KBS가 최근 5년간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한 국과수의 EDR 감정 현황을 확인해보니 2019년 한해 58건이던 감정의뢰 건수는 2023년에는 9월까지만 따져도 78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국과수의 차량검사와 사고기록장치(EDR) 분석 등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에서 차량의 기계적 결함은 단 한 건도 인정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경찰이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채택하지 않은 건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도현이 사건의 변호를 맡고 있는 하종선 변호사는 "지금까지 많은 급발진 의심 사고 접했지만, 경찰이 국과수 감정을 채택하지 않은 사례는 처음인 것 같다"면서 "EDR 소프트웨어 분석이나 실제 주행 테스트 결과가 없어서 증거로서의 가치를 경찰이 낮게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사고기록장치(EDR) 감정 과정


윤대권 교통사고공학연구소장은 "EDR을 감정해도 불명확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운전자에 대한 형사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EDR에 기록된 5초 외에 나머지 부분에 대한 입증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차량이 파손되는 경우가 많아 재연실험 등 사고 분석의 한계가 있다"며 "현재 기록되지 않는 사고 전 차량운행기록이나 EDR에 저장되는 정보의 범위를 늘리면 분석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권성동 의원(국민의힘)은"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재판과정에서 법원이 선정한 감정기관은 국과수 조사결과와 정반대의 결론을 내놨다"며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전문 증거를 독점해오던 국과수의 감식 결과와 배치되는 사설 전문기관의 조사결과를 제시한 사례 중 하나"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자동차가 지속적으로 고도로 전자화, 전기화되면서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면서 "국과수의 사고기록장치(EDR) 분석 역량을 제고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안내가 병행되어야 분쟁도 불안도 감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부의 EDR 독점 분석, 민간에 개방해야" 목소리도

지금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EDR 분석을 국과수에서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교차 검증할 수 있도록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소비자가 EDR 자료를 분석할 수 있도록 차량제조사가 포터블 분석 장비를 의무적으로 판매해야 합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차량제조사가 사고기록장치(EDR)를 분석할 수 있는 포터블 분석 장비(OBD,VCI 등)를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과 달리 법에 의무로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같은 현대기아차 차종이라도 미국에선 시민들이 차량 EDR 분석용 포터블 장비를 살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분석 장비가 경찰과 국과수 등 일부 공공기관에만 한정적으로 공급됩니다.

최영석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자동차소비자위원장은 "분석 장비를 공개하지 않다보니 '차량제조사와 정부가 짜고 차량결함을 봐준다'는 오해와 불신을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민간영역의 여러 사람이 다양한 관점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면 사회 전반의 분석역량이 강화돼 사고 원인 규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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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wakeu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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