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의 경쟁력 유지, ‘전기추진 선박’에 해답 있다
거제도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거가대교 건설 등으로 인해 필자가 거주하는 경남 창원과도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주말에 가족과 함께 종종 방문하곤 한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시작되는 거제도에 가면 해금강 등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한 거제도이지만,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조선과 일본의 주요 전장이었다. 조선 수군이 첫 승리를 장식한 옥포해전이나 임진왜란의 전황을 바꾸었다고 평가되는 한산도대첩 모두 거제도 주변 바다에서 벌어졌다.
당시 주요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지휘관들의 통솔 능력과 수군 병사들의 노력이 주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신식 화기였던 총통으로 무장한 주력 군함 판옥선과 개량형 군함이라고 할 수 있는 거북선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높은 기술 수준을 지닌 화기와 군함을 현실화하기 위해 투입된 노력과 그에 따른 성과, 그리고 기술 축적을 통한 지속적인 결과 개선이 없었다면 이순신 장군이 승전고를 울리는 것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이렇게 기술에 바탕한 역사적인 결실이 서려 있는 거제도에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해운산업과 연계성이 높아 세계 경제 호황과 불황에 강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조선산업 경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랫동안 부진했다. 하지만 한두 해 전부터 컨테이너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을 중심으로 수주량이 늘어나면서 장기 침체를 벗어나 시장이 회복 국면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앞으로 재도약이 기대되는 조선산업에서는 이전과 다른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기후위기에 따라 해양 분야의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피할 수 없어서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에서는 선박들의 황산화물 배출을 제한하고, 해상 운송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요 국가들은 녹색항로 참여를 선언하고 관련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처럼 친환경 규제 바탕의 패러다임 변화 때문에 해운사들은 차량 수백만 대와 맞먹는 미세먼지나 탄소를 발생시키는 기존 선박들을 대체할 선박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 조선 산업에서 세계의 인정을 받아 온 한국은 향후 해양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친환경화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
그 해답이 바로 전기추진 선박이다. 미세먼지와 탄소를 배출했던 기존 디젤엔진이나 가스터빈 기반의 기계식 추진 시스템을 대용량의 전기추진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추진 시스템에 연계되는 핵심 부품들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설계와 전체 시스템 차원의 최적화, 그리고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세계 3번째로 ‘전기추진체계 육상시험소’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전기연구원을 중심으로 선박의 친환경화·전동화·스마트화를 위해 많은 연구진이 노력하고 있다.
3면이 바다이고, 수입과 수출이 주로 해상으로 이뤄지는 한국 입장에서 해양 모빌리티의 친환경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전기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과 조화를 이뤄 한국이 미래에도 조선산업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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