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에 답이 있다" 주축 잃은 대한항공, 누가 나와도 걱정 없는 '특별한 비밀'

인천=안호근 기자 2023. 10. 2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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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인천=안호근 기자]
28일 KB손해보험전 승리 후 웃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는 대한항공 유광우(왼쪽)와 정한용. /사진=안호근 기자
"진부한 대답인 것 같은데 연습 같아요."

인천 대한항공 베테랑 세터 유광우(38)의 말이다. 핵심 선수들이 없이도 대한항공의 날개가 꺾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비시즌 국가대표로 선발돼 활약한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과 미들블로커 김민재는 아직 코트에 복귀하지 못했다. 또 다른 핵심 아웃사이드 히터 곽승석도 결장했다. 그럼에도 2연패의 대한항공은 결국 승리 방정식을 찾아냈다.

대한항공은 28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의정부 KB손해보험과 도드람 2023~2024 V리그 남자부 홈경기에서 개인 최다인 29점을 올린 정한용(22)의 활약에 힘입어 풀세트 접전 끝에 3-2(25-23, 23-25, 25-20, 21-25, 15-10)로 이겼다.

3연패, 토미 틸리카이넨(36) 감독 선임 후에 2연패를 달성한 대한항공이다. 그들의 비상을 막을 팀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던 게 사실이다.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왼쪽)이 경기 중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KOVO
다만 올 시즌은 상황이 다소 달라보였다. 탄탄한 전력을 갖췄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했다. 핵심 선수들이 줄 이탈했고 외국인 선수 링컨 윌리엄스는 무릎이 좋지 않은 상황으로 시즌을 맞이했다.

개막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셧아웃시켰으나 이후 대전 삼성화재, 서울 우리카드를 만나 연이어 풀세트 경기를 치렀고 연이어 패배를 당했다. 위기의식을 가진 채 홈에서 KB손해보험을 만났다. 상대 또한 오심 피해로 인해 2연패에 빠지며 승리가 간절한 건 마찬가지였다.

경기 전 틸리카이넨 감독은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며 "가장 중요한 건 우리 플레이를 어떻게 잘 할지다.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자신감은 본인이 뭘 할 줄 아는가에서 온다. 우리 선수들은 본인이 어떻게 해야할 지 잘 알고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1세트를 따내며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2세트를 내줬고 3세트를 따내고도 다시 4세트를 잃었다. 범실이 9개나 쏟아졌다.

그러나 3번 연속 실패는 없었다. 3년 차 아웃사이드 히터 정한용이 개인 한 경기 최다인 29점을 폭발시키며 날아올랐고 경기 중반 투입된 아포짓 스파이커 임동혁(24)이 17점을 올리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백전노장 세터 한선수(38)와 유광우는 영리하게 후배들의 공격을 이끌었다.

득점 후 함께 기뻐하는 대한항공 선수들. /사진=KOVO
경기 후 만난 틸리카이넨 감독은 "좋은 싸움이었다. 비예나가 너무 잘한다. 방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도 "(임)동혁이가 들어와 흐름을 바꿨다. 부상 선수가 꽤 많은데 늘 말하지만 우리는 선수층이 두껍다. 그걸 보여줘야 한다. 시즌 전에도 말했지만 혼자 오는 운은 없다. 우리가 스스로 운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정한용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사령탑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록적으로 따져봐야겠지만 여러 부분에서 성장했다. 올라운드 플레이어이고 잠재력이 많다. 아직도 많이 성장할 수 있다"며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려면 힘든 상황, 좋은 상황할 것 없이 많은 경험을 겪어야 한다. 그런 토대로 성장할 수 있다. 오늘 들어간 젊은 선수들이 본인들 역할 제대로 발휘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한용 뿐이 아니다. 주축들이 없어도 대한항공은 생존할 수 있는 법을 찾아가는 팀이다. 이날 14명을 활용했고 4명이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처음 선발 출전한 마크 에스페호도 8점으로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누가 나오더라도 제 몫을 해낼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시즌 전 열린 컵대회 땐 기존 전력에서 9명 없이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틸리카이넨 감독의 모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상황에 맞게끔 대회를 치르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럴 자신이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공격을 위해 높게 도약하는 정한용. /사진=KOVO
정한용이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KOVO
그렇게 시즌을 준비한 대한항공은 앞 두 경기 풀세트 접전 끝에 아쉬운 결과를 맞았지만 이날 끝내 승리를 거두며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주전이 아닌 선수들이 갑자기 들어와 잘 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 동의한다"면서도 "내가 어느 정도는 도와주지만 선수들이 이미 동기부여가 돼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환경에 선수들이 잘 적응한 덕이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선수들에게 그런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다. 훈련 때부터 실제 경기처럼하고 거기서 선수들이 훈련이 되고 경험이 되기에 (갑자기 나와) 경기에 실제로 뛸 때에도 이질감이나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해주는 게 내 역할"이라며 "선수들도 알테지만 모든 게 공평할 수는 없다. 기회의 차이가 다를 수 있는데 그 기회가 왔을 때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틸리카이넨 감독이다. 정한용은 "중요할 때 (토스가) 올라오면 부담은 되지만 토미 감독은 그런 걸 이겨내야 한다고 말해준다. 실수해도 과감히 때려본다"며 "항상 경기에 뛰고 싶었다. 형들이 아픈 건 팀이나 형들에겐 안 좋은 일이지만 내겐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걸 잡고 싶고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임동혁(오른쪽)에게 토스를 올리는 유광우. /사진=KOVO
훈련 과정에 답이 있다는 감독의 생각에 유광우도 뜻을 같이 했다.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은) 진부한 대답인 것 같은데 연습 같다"며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렇게 훈련한다. 그런 부분에서 훈련이 잘 돼 있다고 생각하고 감독님도 그걸 원한다. 누가 들어가도 티가 안 나는 팀이 좋은 팀이라고 생각한다"고 자부했다.

선수들 스스로도 승리를 위한 정신무장이 잘 돼 있다. 유광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시즌 전체를 볼 때 지는 게 한 번, 두 번, 세 번 되면 습관이 되니 어떻게든 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며 "선수들도 그걸 인지하고 승부처서 집중해서 좋은 결과가 됐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전 틸리카이넨 감독은 주축 선수들이 없는 가운데서도 감독이 역할을 잘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도자가, 감독으로서 할 일이 많다. 전술적으로도 더 득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경기를 위해 선수들 몸 관리 시키고 시간을 부여하는 것도 내 역할"이라며 "우리가 훈련을 어떻게 진행하고 계획하는지도 포함된다. 분위기는 너무 좋다.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내 역할이기도 하지만 선수들이 알아서 잘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사령탑은 경기 전 자신이 강조한 역할을 결과를 통해 톡톡히 보여줬다. 올 시즌 2승 2패로 3위지만 안 좋은 분위기를 확실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 틸리카이넨의 대한항공은 안 좋은 상황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잘되는 집안은 어떻게 다른지를 증명해냈다.

득점 후 기뻐하는 대한항공 선수들. /사진=KOVO

인천=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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