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정 따라 국민연금 수령액 자동 조정?…"연금 더 줄어"
전문가 "시기상조", 시민단체 "노후 소득 보장 취지 사라져"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권지현 기자 = 정부가 인구·경제 여건 구조 변화를 고려해 국민연금 개혁에 자동안정화장치(자동조정장치)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
자동안정화장치란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같은 모수(母數)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규칙이다.
이 장치는 연금 정책에서 도입된 중요한 혁신 중 하나로 꼽힌다. 인구 통계적, 경제적 변화에 대응해 연금제도가 가진 미래 불확실성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와 자본시장, 연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제도를 도입할 경우 그러잖아도 적은 연금액이 더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정부 "자동안정화장치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 시작"
29일 정부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27일 2023년도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 의결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공개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당일 브리핑에서 "미래 준비를 위해 재정 방식 개선 등 공론화 과제를 포함했다"며 "인구·경제 여건의 급속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안정화장치의 도입 또는 확정기여 방식으로의 전환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한 공적연금 제도 개혁 방안 모색' 보고서를 보면 2021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호주, 캐나다, 핀란드, 독일, 일본 등 약 3분의 2가 이 장치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과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등은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외부의 환경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으로부터 연금제도를 보호하고, 반복적인 개혁 논의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며 "임의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보다 규칙적이고 투명하며,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고 자동조정장치의 장점을 부각했다.
다만, 이를 도입하는 데 정치적 마찰이 강할 수 있고, 한국 사정에 적합한지 논의된 적이 없으므로 적용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향후 본격적으로 장치 도입 방안을 모색할 때는 재정 안정성 제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급여 수준이 크게 하락하지 않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번 연구의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달성하려면 보험료율을 최소한 21.33%까지 인상해야 하지만, 제약 요인이 상당하다"며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해 보험료 인상과 함께 다소 약한 정도의 자동안정장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시민단체 "현행 소득대체율 40%, 더 줄이는 방향 맞지 않아"
문제는 한국의 현실에서 자동안정화장치 도입이 결국 보장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연금 수령액이 줄어든다는 우려다.
최근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1'에 따르면 2063년 기준 한국 저소득(평균 근로자 소득의 절반)자의 총 상대적 연금 수준은 21.5다.
비교 가능한 21개 국가 가운데 리투아니아(15.7), 폴란드(15.9), 칠레(20.9) 다음으로 낮은 값이다.
미래 총 연금대체율 역시 한국의 저소득자(남성)는 43.1%로, 38개국 중 네 번째로 낮다.
전문가들은 아직은 자동조정장치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우리나라는 실질이든 명목이든 소득대체율이 40% 수준"이라며 "대부분 자동안정화장치는 (급여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는데, 40%도 안 되는 소득대체율을 줄이는 방향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다미 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도 "장치를 도입한 국가들은 연금 제도가 성숙했다"며 "(장치를 도입하면) 일단 급여가 많이 깎일 텐데,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약간 이른 감이 있는 것 같다"고 동의했다.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306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다른 나라의 연금이 감자나 고구마 크기라고 했을 때 우리는 호두나 참깨 크기밖에 안 된다"며 "자동안정화장치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면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제도 취지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이 충분히 노인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며 "연금으로 요트를 타자고 하는 게 아니다. 좀 더 싼 쌀이 어떤 건지 찾아야 하는 우리 노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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