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유입된 나방, 40년 전 사라졌던 빈대도 돌아왔다
인천, 대구, 부천 등에서 빈대 신고 잇따라
기후변화·코로나19 이후 관광객 증가 영향
유충 제거·방역 등 방제법 한계...대책 시급
“으악, 징그러워! 이게 다 송충이야, 뭐야?”
지난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양화한강공원 곳곳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책로와 잔디밭 가릴 것 없이 송충이를 닮은 벌레가 수십 마리씩 발견된 탓이다. 모처럼 나들이를 즐기던 시민들은 텐트와 돗자리를 기어오르는 벌레들을 쫓느라 바빴다. 벌레를 피해 공원을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강공원을 습격한 이 벌레의 정체는 해충으로 분류되는 미국흰불나방 유충이었다. 이날 공원을 찾은 한 시민은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 벌어져 너무 무서웠다"라며 "뭔가 환경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물었던 해충들이 곳곳에 출몰하고 있다. 최근 서울 한강공원에서 미국흰불나방 유충이 떼로 발견된 데 이어 자취를 감춘 줄 알았던 '흡혈 해충'인 빈대마저 잇따라 발견됐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제 교류가 활발해진 영향인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향후 다양한 외래종 해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해충 방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9월 고온에 번식 늘어난 미국흰불나방
최근 한강공원을 습격한 미국흰불나방은 1958년 미군을 통해 국내에 처음 유입됐다. 송충이와 닮은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몸길이가 약 30㎜로 가로수 등 나뭇잎 등을 갉아먹는 유충이다. 수목에 피해를 입히지만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체에 닿을 경우 가려움이나 따가움 등의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미국흰불나방은 올해 유독 개체 수가 늘어났다. 미국흰불나방이 자주 출몰한 원인으로는 평년보다 높았던 9월 기온이 꼽혔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전국 평균 온도는 22.6도로 평년에 비해 2.1도 높았다. 미국흰불나방은 1년에 2, 3번 부화해 활동한다. 5월 중순에서 6월 사이 성충이 나타나고, 7월 하순과 8월 중순 사이 2세대 성충이 나타난다. 올해는 9월 기온이 오르면서 3세대 성충이 출몰하게 됐다는 게 산림청 설명이다.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미국흰불나방 발생은) 2019년 이후 점진적으로 줄었으나, 고온 다습한 날씨가 지속되는 등 기후변화 영향으로 유충 생존기간과 활동량이 늘면서 예년의 통상적인 수준보다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태 주기도 개체 수 증가에 영향을 줬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미국흰불나방은 2, 3년간 돌발적으로 대발생했다가 과하게 번식되면 먹이가 모자라서 자체적으로 사그라드는 패턴을 반복한다"며 "이번에도 주기적으로 찾아온 대발생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관광객 영향? 빈대, 흰개미도 잇달아 발견
1980년대 자취를 감췄던 빈대도 다시 돌아왔다. 이달 중순 인천 서구의 한 사우나에서 빈대 성충과 유충이 발견된 데 이어 대구의 한 사립대 신축 기숙사에서도 빈대에 물린 학생들의 신고가 여러 건 접수됐다. 부천의 한 고시원에서도 빈대가 나타났다.
납작한 타원형 몸통에 크기 6~9㎜의 빈대는 동물의 피를 빨아 먹는다. 모기와 비교하면 7~10배 많은 피를 빨 수 있다. 사람이 빈대에 물리면 피부가 부어오르고, 가려움을 동반한 두드러기가 생긴다. 심한 경우 빈혈과 고열을 동반한 염증이 수반된다.
실내 서식형 해충인 빈대는 빛을 피해 주간에는 주로 침대 옆이나 서랍 틈새 등에 숨어 있다 야간에 나타난다. 따뜻하고 습한 곳을 선호한다. 국내에서는 1960년대 새마을 운동과 1970년대 살충제 도입 등으로 개체 수가 크게 줄면서 사실상 없어졌다.
빈대의 잦은 출몰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해외 관광객 유입 등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올해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등 유럽에서 빈대가 기승을 부리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이승환 서울대 응용생물학과 교수는 "미국·유럽의 주요 대도시에서 여행객이 투숙하는 호텔을 중심으로 빈대 문제가 나타났다"며 "우리나라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외 여행객이 많아지면서 그 영향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최근 국내에 나타난 빈대는 모두 해외에서 유입된 개체로, 출몰 장소도 모두 외국인이 머무른 곳"이라며 "이 장소를 이용한 다른 사람의 여행용 가방 등 물품을 통해 집 안으로 유입되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아열대 서식 해충인 마른나무흰개미도 올해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5월 서울 강남구의 한 주택가에서 마른나무흰개미가 발견된 데 이어 9월 경남 창원시의 한 주택가에서도 마른나무흰개미 군체가 잇따라 출몰했다. 크기가 1㎝ 안팎인 마른나무흰개미는 인체에 큰 해는 없지만, 목재를 갉아먹어 파괴력이 강한 해충이다. 군체로 발견될 경우 목재 문화재나 목조 건물 등을 붕괴시킬 정도로 피해가 크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이 같은 해충 증가를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배연재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해충은 대체로 온도가 높아지면 발육이 빨라지는 특성이 있다"며 "모기만 봐도 온도가 20도일 땐 1년에 3, 4세대가 생겨나는데, 25~30도로 오르면 5, 6세대 그 이상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방제가 해충 증가 속도 못 따라가"...대책 시급
외래 해충 출몰이 빈발하고 있지만 방제 방법은 턱없이 부족하다. 방역 작업을 맡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주로 인력을 투입해 막대기 등으로 해충의 알을 직접 긁어내거나, 이미 성충이 돼 사방으로 퍼진 해충을 향해 약을 뿌리는 공중 방제 정도다. 두 방법 모두 방제 인력이 독성에 노출되거나 과도한 약품 비용이 드는 등 부작용이 크다.
인력에 기반한 방역 작업도 한계가 있다. 배연재 교수는 "방역 조치는 해충이 발생한 상황을 임시로 억제할 뿐 향후 해충이 발생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며 "해충 발생을 제대로 막으려면 자연 생태계가 보존돼 천적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했다.
방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양영철 교수는 "독나방과의 경우 흔적이 발견된 나뭇가지를 잘라 소각하면 비교적 친환경적이고 안전하게 방제할 수 있는데 국내에 이런 방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각 해충의 생애주기 특성을 파악해 그에 맞는 방제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장기적으로 병해충 전문가를 육성해 효과적인 방제 지침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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