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야구선수, 이런 투수 계속 나와야"…132승·2000이닝 레전드, 찬사 받고 떠난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나는 항상 (장)원준이를 최고의 야구선수라고 생각했다."
두산 베어스 베테랑 유격수 김재호(38)가 은퇴를 선언한 동갑내기 좌완 레전드 장원준(38)에게 남긴 말이다. 장원준은 28일 구단을 통해 은퇴 소식을 알렸다. 장원준은 올 시즌을 마무리한 뒤 구단을 찾아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 구단은 은퇴식 등 관련 행사는 장원준과 추후 협의해 진행할 예정이다.
장원준은 2004년 부산고를 졸업하고 롯데 자이언츠에 1차지명으로 입단한 기대주였다. 롯데에서 2014년까지 좌완 에이스로 활약하다 2015년 시즌을 앞두고 두산과 4년 84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하고 이적했다. 그리고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복덩이'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에는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21승), 마이클 보우덴(18승), 유희관(15승) 등과 함께 강력한 선발진을 구축하며 '판타스틱4'로 불렸다. 장원준은 그해 15승을 달성했고, 선발 4명이 무려 69승을 합작하면서 장원준도 두산도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장원준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5년 동안 긴 슬럼프에 빠지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21년부터는 불펜으로 전환해 보직 변화를 시도했지만, 장원준에게 딱 맞는 그림은 아니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올해 부임하면서 장원준에게 다시 선발을 맡기겠다고 했다. 대신 선발진에 구멍이 났을 때 언제든지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대체선발투수로 힘을 보태주길 기대했다.
장원준은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올해 11경기(구원 1경기)에 등판해 3승5패, 41이닝, 평균자책점 5.27을 기록했다. 지난 5월 23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5이닝 70구 7피안타 무4사구 4탈삼진 4실점을 기록하면서 꿈에 그리던 130승 고지를 밟았고, 두산의 올해 정규시즌 최종전이었던 지난 17일 인천 SSG 랜더스전에 선발 등판해 4⅓이닝 5실점을 기록했다. 패전을 떠안긴 했지만, 개인 통산 2000이닝을 달성하며 기나긴 프로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프로 통산 성적은 446경기, 132승119패, 1세이브, 14홀드, 2000이닝, 평균자책점 4.28이다.
마무리가 화려하진 않았어도 KBO리그 역대급 좌완투수로 이름을 남겼다. KBO 역대 11번째, 좌완 역대 4번째로 130승을 달성한 투수로 이름을 남겼다. 나이 37세9개월22일로 역대 최고령 130승 좌완 투수가 됐다. 우완까지 통틀면 KIA 임창용(2018년 9월 29일 광주 한화전, 42세3개월25일) 다음인 2위다. 2000이닝 역시 KBO리그 역사상 장원준 포함 9명밖에 달성하지 못한 진기록이다. '장꾸준'이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은 기록들을 남기고 홀가분하게 유니폼을 벗었다.
김재호는 장원준의 전성기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선수였다. 동갑내기이기도 했고, 유격수로 장원준의 뒤를 든든히 지키며 함께 전성기를 보냈다. 2015년과 2016년, 2019년까지 3차례 우승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리면서 왕조의 주역으로 같이 활약했다. 김재호 역시 올 시즌을 끝으로 FA 계약이 끝나 현역 연장의 갈림길에 섰는데, 일단 한 시즌 더 뛰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 와중에 친구 장원준의 은퇴 소식을 접해 아쉬운 마음이 컸다.
김재호는 "동기 가운데 정말 가장 좋은 성적을 이룬 선수인 것 같다. 친구로서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한 업적도 이뤘다. 마지막에 힘든 시간도 있었으나 나는 항상 원준이를 최고의 야구 선수라고 생각했다. 장원준 같은 투수가 앞으로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야구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장원준이 됐으면 좋겠다"고 찬사를 보내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덧붙였다.
김재호가 장원준에게 엄지를 든 건 단순히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장원준은 유니폼을 벗기 직전까지 두산 투수조에서 가장 훈련을 열심히 하는 선수로 꼽혔다. 야수 가운데 대표적 연습벌레가 김재환이라면, 투수는 장원준으로 정리가 됐다.
두산이 장원준이 무려 5년 동안 슬럼프를 겪어도 계속 기회를 준 이유는 이런 성실한 태도 때문이었다. 겨울에도 매일같이 경기장에 나와 훈련을 하고, 누구보다 철저히 몸을 만들면서 시즌을 준비하는데도 결과가 안 나올 때는 구단이 더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장원준은 올 시즌을 앞두고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투심패스트볼을 장착하면서 3승을 더 챙길 수 있었고, 그렇게 끝까지 최선을 다한 덕분에 미련없이 마운드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김재호 외에도 두산 왕조를 함께했던 포수 양의지와 주장 허경민도 장원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양의지는 "앞으로 원준이 형의 인생을 응원하겠다. 그동안 고생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싶고, 좋은 날 함께해서 축하한다는 말도 하고 싶다. 은퇴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발표가 되니 뭉클하고 그렇다. 원준이 형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고,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 다시 팀에 돌아와서 원준이 형이 이루고 싶었던 기록을 같이 이룰 수 있어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허경민은 "선수단이 최근 잠시 모여서 조촐하게나마 원준이 형에게 고생했다고 이야기했다. 누구나 다 야구는 그만두는 건데, 우리 팀에 전성기를 함께한 선수라서 누구의 은퇴보다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너무 고생하셨다.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할 텐데, 원준이 형답게 꾸준히 무언가 해냈으면 좋겠다. 좋은 지도자가 되든 어떤 일을 하든 응원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두산은 이제 장원준의 뒤를 이을 좌완이 등장하길 기다리고 있다. 장원준에 앞서 두산 프랜차이즈 좌완 최초 100승(101승)을 달성한 유희관도 2021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왕조를 이끈 좌완 듀오가 모두 물러난 상황이라 다음 세대의 등장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최승용이 장원준의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승용은 올 시즌 34경기에서 3승6패, 1세이브, 111이닝, 평균자책점 3.97을 기록했다. 전반기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데, 후반기 내용이 좋았다. 후반기 15경기에서 47⅓이닝, 평균자책점 1.90으로 맹활약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 감독은 최승용을 다음 시즌 좌완 선발 0순위 후보로 보고 있다.
2022년 1차지명 강속구 좌완 이병헌은 내년에도 좌완 필승조로 나설 준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승용이 선발진에 들어가면 왼손 불펜이 부족한 상황이라, 내년에는 이병헌이 힘을 보태줘야 한다. 올 시즌 기록은 36경기, 5홀드, 27이닝, 평균자책점 4.67이었다. 두산은 최승용과 이병헌이 장원준과 같은 대선수로 성장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장원준은 정든 유니폼을 벗으면서 "FA 계약으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하게 해주시고, 부상으로 힘들 때 기회를 더 주신 박정원 구단주님께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 세웠던 마지막 목표들을 이뤘기 때문에 후련한 마음"이라면서도 "다만 후배들을 생각하면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팀에는 유능한 후배들이 많으니 성실하게 훈련해 팀 도약을 이끌어 주길 응원하겠다”고 당부 섞인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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