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 위탁 배송기사도 ‘근로자’…산재보험 대상” [민경진의 판례 읽기]

2023. 10. 2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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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근로기준법상 배송기사 근로자성 첫 인정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마켓컬리 홈페이지 캡처



새벽배송 전문업체 컬리의 배송 업무를 대신하는 배송기사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처음 나왔다.

고용계약이 아니라 위탁계약을 맺었더라도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았다면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관련 업계는 이번 판결이 유통기업의 인력 관리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판결 내용을 파악하고 대응 방침 마련에 분주하다.

 

 회사가 사실상 업무 지휘·감독

서울행정법원 행정10단독은 지난 7월 20일 배송기사 A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컬리넥스트마일에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A 씨는 컬리의 배송 자회사인 컬리넥스트마일과 화물운송 위탁계약을 맺은 배송기사다. 그는 2020년 12월 22일 새벽 담당 배송지역인 인천 서구에서 배송업무를 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그는 “컬리넥스트마일 소속 근로자로서 업무상 재해를 당했다”며 회사에 최초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요양불승인을 결정했다. A 씨는 별도 사업자로 등록하고 회사와 위탁계약을 체결했으므로 산재보험법 적용 대상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A 씨의 업무시간은 배송 완료 때까지였으며 배송물량에 따라 운송료를 지급받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운송차량도 직접 소유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런 이유를 들어 A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택배기사는 산재보험법 제125조가 정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서 산재보험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조사를 통해 ‘새벽배송’만을 담당하는 A 씨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사고 당시 컬리넥스트마일에는 고용 및 산재보호법에서 정한 집화 과정이 없었고, 수도권과 지방 등에서 물류 수송 과정 없이 소비자가 주문한 물품을 운송하는 업무만 수행했기 때문에 택배사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불복한 A 씨는 공단에 심사청구를 했으나 기각됐고, 2022년 9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컬리넥스트마일이 사실상 A 씨의 업무를 지휘·감독했다고 판단했다. A 씨는 사고 당시 화물 상차부터 배송 완료까지 모든 업무 과정을 회사가 제공한 모바일 앱에 입력했다. 회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 대화방을 통해 A 씨에게 업무 내용을 지시했고, 배송지역 조정·계약해지 등의 처분을 내릴 수도 있었다.

재판부는 또 A 씨가 근무일 오후 10시까지 화물 상차를 위해 서브터미널로 출근해야 했던 점과 담당배송지역이 특정된 점, 지정된 시간(다음 날 오전 7시) 이내에 화물을 배송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해 A 씨가 사용자인 컬리넥스트마일이 지정한 근무시간과 장소에 구속됐다고 봤다.

A 씨가 회사로부터 운송료 등 명목으로 매월 480만원의 고정급을 받은 것도 재판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은 근거가 됐다.

 

 유통기업 비용부담 커지나

법률에서 근로자의 개념은 크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상 근로자’로 구분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주로 근로계약에 기초한 개별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데 적용된다. 노조법상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규정되는데,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할 목적으로 주로 쓰인다.

배송기사의 근로자성을 다투는 사건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인정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법원은 배송기사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쟁점인 사건에서 배송기사 측 손을 들어주면서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을 사용해왔다. 교섭권이 주로 소송 쟁점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와 위탁계약을 맺은 서진물류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재심결정 취소 청구’ 소송이 대표적이다.

앞서 서진물류의 일부 배송기사로 구성된 노동조합은 “회사가 교섭요구 사실을 사업장에 공고하지 않았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 신청을 해 인용 결정을 받았다. 중노위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에 서진물류 측은 소송을 걸었지만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법조계 등에선 이번 판결로 위탁계약을 맺은 배송기사도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퇴직금, 각종 수당 등을 요구하는 일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유통기업의 인력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앱에 업무 과정 등을 입력하는 것이 ‘상당한 지휘·감독’이라고 보는 것은 기술 발전에 따른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며 “도급업무를 할 때 꼭 필요한 내용까지 근로자로 판단하는 요소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CJ대한통운은 올해 1월 택배기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1심 판결 이후 “불필요한 혼란으로 현장 갈등이 증폭되지 않도록 서울고등법원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돋보기]

 

 “월급 받는 페이닥터도 근로자”

산재보호법은 이 법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를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로 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근로자가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계약의 형식이 도급 또는 위탁 계약이더라도 사용자와 근로자의 실질적인 관계가 종속적인 관계에 해당한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종속적인 관계인지 여부는 우선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여부를 가늠해 판단한다.

또 사용자가 근로 시간과 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받는지,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에 대한 대가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등도 따져볼 수 있다.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과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취업 규칙과 고정급,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여부 등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고 보고, 이런 점들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근로자가 아니라고 쉽게 단정해선 안 된다는 기준도 판례를 통해 마련됐다.

이런 기준에 따라 근로자인지 여부가 재판에서 엇갈리는 사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대법원 1부는 최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원 원장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B 씨는 2017년 8월부터 약 2년간 ‘페이닥터(봉직의)’로 일한 C 씨의 퇴직금 1400만원을 “근로자가 아니다”는 이유로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C 씨가 매월 고정급을 받고, 근무 장소 및 시간이 제한됐으며 매월 진료 실적을 B 씨에게 보고한 점 등을 근거로 C 씨를 근로자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C 씨를 근로자로 보지 않아 B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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