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잡자고 금리 인상?”… 이례적 발언한 이창용 속내는
한국은행 기준금리 3.5% 동결 후 가계부채 증가
전문가들 “실제 금리 인상 어려워...부동산 규제 정책 중요성 강조”
“먼저 (부동산) 규제 정책을 다시 타이트하게 조정하고, 그래도 가계부채 늘어나는 속도가 잡히지 않으면, 그때는 심각하게 금리 인상을 고려하겠다.”
지난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장. 기준금리 6회 동결 이후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을 두고,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책임을 묻는 질의가 쏟아지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같이 답변했다.

일각에서는 가계부채가 한은이 금리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근거로 쓰이기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이 총재의 말을 종합해보면, 가계부채 늘어난다고 해서 통화정책을 조정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통화정책이 가계부채 조정 수단이 되면, 잃을 게 더 많다는 게 이 총재의 일관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이 총재는 한국은행의 최우선 정책 목표가 ‘물가 안정’이라고 일관되게 밝혔다.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배경 역시 그간 급등했던 물가가 예상 경로대로 잡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물가 안정에 이어 ‘금융 안정’을 고려해 현재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올해 초까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지난 2021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기준금리를 총 10차례, 연 0.5%에서 3.5%로 3%포인트(P) 인상했다. 실제 지난해 7월 소비자물가지수가 6.3%로 정점을 찍은 후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고, 올해 6월에는 2.7%까지 떨어져 물가 안정 목표치(2%)에 수렴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물가가 잡히는 사이 늘어난 가계부채가 문제가 됐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분위기가 형성되면, 매수 심리가 강해지고 빚을 내 집을 사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기엔 앞으로 갚아야 하는 원리금보다 집값 상승이 더 클 것이란 기대감이 내포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더는 올리지 않을 것이며, 곧 금리 인하로 통화정책을 바꿀 것이란 기대감이 되살아난 영향도 가계부채 증가의 한 원인이 됐다.
실제 기준금리를 6연속 동결한 이후 가계부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서서히 줄어들던 가계부채는 4월(2조3000억원), 5월(4조2000억원), 6월(5조8000억원), 7월(5조9000억원), 8월(6조9000억원), 9월(4조9000억원) 등으로 증가했다. 9월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총 1079조8000억원 규모다.
물론 가계부채가 늘어난 배경에는 금리 인하 기대감보다는 돈을 빌릴 수 있는 정책자금 창구가 열린 영향이 컸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가 취약계층, 청년층을 지원하다는 이유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고, 특례보금자리론을 완화한 것이 가계부채가 늘어난 주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서울 일부 지역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반등한 점도 매수 심리를 부추겼다.
이 총재도 “금리 동결이 가계부채 증가 시그널이 됐을 수도 있지만, 대출 완화 등과 엮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은의 통화정책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엇박자’를 내는 건 아니며 ‘공조’하고 있다는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환자가 적절한 약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미세한 조정을 통해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 과정에 있다고도 비유했다.
이 총재는 이어 “가계부채가 최근 1~2년 사이 급격하게 늘어난 게 아니”라며 “지난 10년을 통해서 늘어났고 특히 부동산 가격이 많이 증폭될 때 굉장히 많이 늘었다”라고도 강조했다. 즉 추세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가계부채가 늘어났기에 ‘집값이 오른다’는 분위기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금융안정도 중요한 고려 요소라고 짚었다. 만약 금리를 올려 가계대출을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에 따라 금융 불안정이 발생하면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가 있다. 금리가 올라가면, 레버리지를 이용하는 부동산 PF는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실제 지난 2022년 춘천 레고랜드발 채무불이행 사태 당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었고, 금융당국은 자금 경색을 막기 위해 각종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내놓기도 했다.
한은은 최근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 과정이라고 평가한다. 부동산 PF 구조조정이 순항하고 있으며, 주택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걸 막았다는 진단에서다. 한은 내부에서 여러 모형으로 계산했을 때, 부동산 가격이 고점 대비 30% 이상 떨어지면 금융시장에 문제가 생긴다고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규제를 강화해도 가계부채가 늘면 금리인상을 고려하겠다”는 발언은 “만약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가계부채가 는다면 이는 비정상적인 상황”임을 경고한 발언인 셈이다.
실제 이 총재는 취임 초부터 가계부채에 대해 강하게 경고한 바 있다. 10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레버리지를 이용해 부동산에 투자하고, 단기간에 자본이익을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다시 경고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도마 위에 오른 와중에 아예 반대 질문도 나왔다. 현재 금리 수준이 너무 높아 소상공인, 서민의 대출이자 부담이 큰 상황인데, 한은이 이를 외면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이 총재는 “만약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면, 물가가 뛰어 전 국민의 후생을 저해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은 입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처해있다는 걸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는 사이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로 불확실성이 커져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고 이 총재는 토로했다. 국제 유가,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물가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기엔 저성장, 금융 불안정 우려가 발목을 잡는다.
전문가들 역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통화정책이 아니라 부동산 규제 정책이 먼저라고 짚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저금리 시대에는 통화정책이 가계부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현재 단계에서는 통화정책이 가계부채를 좌지우지하기 어렵다”면서 “DSR,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부동산 정책이 가계부채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라고 진단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 PF 시장이 불안한 상황이어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올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기 위해 이런 발언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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